클라이언트의 존엄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면
클라이언트의 존엄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면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29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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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를 효과적으로 돕기 위한 비에스텍의 관계 형성 7가지 원칙 中 '수용의 원칙'

펠릭스 비에스텍(Felix Biestek)은 그의 저서 「케이스워크 관계(casework relationship)」(1957)에서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 간의 원조 관계 기본 원칙 7가지(개별화, 의도적인 감정표현, 통제된 정서적 관여, 수용, 비심판적 태도, 자기결정권, 비밀보장)를 설정하였습니다.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와 관계를 형성하는 목적은 클라이언트의 다양한 욕구를 잘 이해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이미 우리는 사회복지실천론과 사회복지실천기술론 등을 통해 7가지 원칙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괴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앞으로 7회에 걸쳐 7가지 원칙을 어떻게 현장에 적용해 보았는지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첫 번째, 수용의 원칙입니다.

저는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80대 후반의 김씨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치매 환자이십니다. 망상증세가 있었는데 특히 환시(幻視)로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되는 손녀가 매일 자신을 따라 다닌다며, 밥도 줘야 하고 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당신이 할 수 없으니 늘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물론 할머니 눈에만 보이는, 현실에 없는 손녀입니다.

“엄마, 정신 좀 차려봐. 여기 여자아이가 어디 있어?”
자녀들은 매일 겪는 일에 지쳐 화도 내고, 차근차근 설명도 하고, 못 들은 척 무시도 해봤지만 할머니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보청기로도 소리 듣는 것이 어려운 할머니셨기에 자녀들이 왜 이렇게 매일 자신에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센터에 오신 첫날부터 아무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늘 자신의 곁에 있는 손녀 걱정에 프로그램 참여도, 식사도 제대로 하시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할머니의 손녀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이고 이쁜 아가야, 너도 같이 밥 먹자, 이리 앉아 봐”
할머니 옆에 자리를 마련하고 밥도 챙겨 주었습니다. 할머니 눈이 반짝였습니다. 우리 손녀 밥 굶지 않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오후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때 즈음, 예쁜 손녀 학교에 가야 하니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센터 문 밖으로 데려가 차에 태우는 시늉을 했고 저와 할머니는 손을 흔들며 배웅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이렇게 손녀가 있는 것처럼 연기했습니다. 점차 손녀 이야기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손녀의 점심식사는 챙겨주지 않아도 되었고, 어쩌다 손녀를 찾으시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면 더 이상 찾지 않으셨습니다.

3~4개월 지난 후 할머니는 손녀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같은 테이블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시고(물론 잘 못 들으시기에 가끔 오해가 생기지만), 오전 오후 활동에 제일 열심히 참여하셨습니다. 가족들이 매우 고마워했습니다. 어머니와 이제 싸울 일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할머니의 표정이 달라진 것이 매우 기뻤습니다. 늘 초조한 눈빛과 안절부절 불안했지만 이젠 표정이 환해지고 행동도 가벼워지셨습니다.

관계의 시작,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클라이언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바로 수용의 원칙입니다.

물론 클라이언트의 잘못된 가치관, 습관, 신념 등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한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하고 만남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가치 있는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김씨 할머니도 마찬가지셨습니다. 내 눈에는 멀쩡하게 보이는 손녀가 다른 가족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니, 자신보고 정신 차리라니 할머니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입니다. 치매 환자인 할머니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상황을 인지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할머니가 걱정하는 그 손녀를 함께 걱정하는 것으로 우리는 시작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진다고 생각되면 경계를 풀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 층 더 깊게 꺼낼 수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존엄성을 손상시키지 않을 때 클라이언트는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이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며칠 전, 후배가 찾아와 망상으로 힘들어하는 조현병을 가진 클라이언트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병원치료도 해 보았으나 잘 해결되지 않았고, 정신건강과 관련된 기관에 의뢰했지만 개입이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합니다. 클라이언트를 위해 몇 년간 고생한 후배가 안쓰러웠습니다.

최근 지붕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자기를 괴롭히려고 해서 너무 힘들다고 찾아온 클라이언트에게 후배는 당신이 지금 보고 듣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는 식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다음에 만나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섭게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냐고, 그래도 잘 버티는 00 씨가 대단하세요”라고 말해보기를 권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오랫동안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인정 받아 온 적이 없었을테니 그 첫 시작을 후배가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후배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물론 당장의 증상을 없앨 수는 없어도 최소한 클라이언트가 안정감을 얻지는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