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0주년 맞은 '장애인의 날' 의미
올해 40주년 맞은 '장애인의 날' 의미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09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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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코로나19로 국가적인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개최될지 불투명하지만 우리나라는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하고 있다.

이는 UN이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제정·시행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심신장애인복지법(현재 장애인복지법)’을 제정·시행하였고, 명실공히 오늘날의 법적인 ‘장애인의 날’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UN은 1992년 이래로 매년 12월 3일을 ‘세계 장애인의 날’로 지키고 있다.

일본은 국제장애인 권리선언을 선포한 1975년 12월 9일을 ‘장해자의 날’로, 중국은 장애인보장법이 공포된 5월 15일을 그들이 말하는 ‘잔질인의 날’로 지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스웨덴 등 소위 복지국가에서는 별도의 장애인의 날을 지키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의 날을 만들어 거창하게 보내지 않지만 매년 9월 3번째 주를 통상적으로 재활주간으로 지킨다. 해당 주간에는 각종 세미나를 비롯해 특별하게 대통령이 장애인 재활과 복지,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이것의 실행방안을 알리고 선도하는 기간으로 지키고 있다.

때로는 장애인 재활이나 복지 그리고 인권신장에 공이 큰 인사들에 대한 표창과 격려하는 시간도 갖지만 떠들썩한 일회성 기념식이나 반짝하는 선심 행사는 하지 않는다. 이것의 근본적인 목적은 지정된 장애인의 날을 하루만 특별한 날로 지키자는 것이 아닌, 365일이 장애인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장애인은 어떤 조건으로 인해 지원이나 복지수혜를 받아서는 안 된다. 인간은 천부로부터 부여받은 존엄성이 있기에 무조건적으로 대우받고 존경받으며 인권의 주체로 인식돼야 한다는 그런 논리이다. 즉 장애인의 날을 별도로 지정하여 기념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라는 조건부 애정이나 사랑, 그리고 배려이기에 비장애인의 날이 별도로 없듯이 장애인의 날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김종인나사렛대 휴먼재활학부 / 교수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 이사장
김종인
나사렛대 휴먼재활학부 교수 /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이사장

다만 바람직한 복지정책이나 재활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절히 보급하는 것은 완전한 참여나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배려일 뿐 시혜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네의 실정과는 차이가 있다. 여전히 인권이나 권리적인 측면에서는 미흡한 한국의 재활복지 현실 여건 속에서 ‘장애인의 날’만이라도 지키면서 국가적이고 범국민적으로 장애인복지를 생각하고 장애인 문제의 종합적인 대책은 물론 한 생명에 대한 전인적인 (Holistic)접근 방안을 강구하는 한 방안이라 하겠다. 이날을 계기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앞다투어 선심성, 시혜성 혹은 모금성 행사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복지를 포장하는 것은 복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다시금 인식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20년 전 미국에 있을 때 재활주간에 열린 특수올림픽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특수올림픽이라는 명칭이 붙어 거창한 운동경기, 요란한 행사가 아니라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 여러 유형의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고 저마다 1년간 닦은 기량을 뽐내는 것이다. 1등, 2등, 3등 그리고 최우수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우승한 그런 축제이며 잔치였다. 가장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한 개별 장애인이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량의 향상을 가졌느냐 하는 평가가 눈길을 끌었다.

 다시 말해 1년 동안 재활의 땀과 혼을 이날 정리해 보고 격려를 받는 그런 자리이다. 올해로 만 40주년을 맞는 장애인의 날이 과연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