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으나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있다.
그분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학생들을 추기경께서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아직도 군화 발밑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경찰에게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먼저 밟고 지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서슬 퍼런 시절이었지만 추기경의 이 한마디에 경찰은 철수했다. 또 추기경께서 벌인 ‘내 탓이오’ 운동은 자기기만과 좌절에 빠져있던 한국사회를 일으켜 세웠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하던 시절에 먼저 자기 가슴을 치자고 했다. 생명의 회복을 말씀하셨다. 추기경님의 미소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법정 스님도 입적하신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곁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욕심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삶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스님은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셔서 본인이 깨달은 삶의 지혜를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평이한 문체로 남겨 놓으셨다.
스님의 책은 발간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일깨웠다. 스님은 생전에 무소유를 설명하시면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특별히 ‘비우지 않으면 새 것이 들어설 수 없다’고 강조하셨다. 많은 이의 삶을 새롭게 깨우는 말씀들이다.
이 아침에 돌아가신 두 분의 말씀과 흔적을 열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두 분은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우리 삶에 청명한 가르침을 주고 계신다.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증거다. 호흡은 멈추었지만, 두 분의 생기가 우리 곁에 함께 있다. 단순히 마음속이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생생한 목소리로 살아 계시는 것이다.
반면에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 있다. 숨도 쉬고 몸도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이다. 죽음의 세력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이다. 이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거짓의 언어와 어둠의 기운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특정한 분의 거룩한 삶을 그대로 따라 살 수는 없다. 다만 삶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은 바르게 설정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할 것은 ‘방식이 아니라 방향’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방식은 수단을 뜻하고, 방향은 가치를 말한다. 복잡한 개념을 떠올릴 것 없이, 생명의 기운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살아 있으나 죽어버린 사람처럼 어둠의 기운을 택할 것인지만 결정하면 된다.
희망을 건네는 사람이 될 것인지, 거짓과 어둠을 건네는 사람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면, 방식과 방법은 저절로 솟아난다.
생명의 기운을 건네는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