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물리치료사는 인공위성이다!!
소아물리치료사는 인공위성이다!!
  • 이우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11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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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물리치료사는 '축'과 같은 역할

“사회복지사는 우주다”

지난 2016년 서사협의 ‘사회복지사는 대세다’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사회복지사는 OO다’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했던 말이에요. 사회복지사들 하나하나가 제가 보기엔 우주와도 같고, 그게 각자의 사업에 녹아들어 고유한 세계관을 갖는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를 우주에 빗대었다면, 소아물리치료사는 무엇일까요. 

“소아물리치료사는 인공위성이다”

인공위성이란, 행성의 둘레를 공전하는 인공적인 물체라고 합니다. 지구에는 수많은 인공위성이 있지요. 치료가 필요한 아이를 지구라고 했을 때,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아동은 보호자의 케어가 필수적이라는 가정하에) 부모를 포함한 보호자는 달과 같은 위성이라고 볼 수 있고, 소아물리치료사는 필요에 의해 띄운 인공위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아물리치료사는 한 아이를 만나게 되면 그의 운동발달과 성장을 함께 하게 됩니다.
그 아이의 주변을 돌면서(관찰하면서) 흔히 ‘정상발달’이라고 하는 전형적 발달단계에서 벗어나고 있진 않은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아이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동작하는지를 평가합니다.

한 아이의 삶(발달)에 원하고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체크하며, 그것을 하려면 어떤 부분의 강화가 필요한지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다양한 물리적 요법을 통해 아이와 함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그렇게 강화되었을 때 아이가 원했던 그것을 할 수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할 수 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한 다음 단계의 욕구를 목표로 하게 되고, 그럼에도 하지 못한다면 다시 평가를 통해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치료하는 아이의 원하는 것을 돕게 되지요.

짧게 풀어낸 소아물리치료사의 치료 과정입니다.
아이와 가정의 성장에 따라 만나는 기간동안 그 아이의 주변을 돌면서(관찰하면서) 운동기능학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직접 혹은 간접적 치료 행위를 하는 것이죠. 마치 인공위성처럼요.

우주에 빗댄 인공위성. 조금 이해가 되셨나요? 제가 생각하는 소아물리치료사에 대해 조금 더 내어 볼게요.

"이우철 선생님께. 선생님, 6살 ooo 엄마입니다."
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1년을 치료한 후 종결하면서 받은 편지 속 내용 중 일부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소아재활을 시켜야 하는 아이의 부모는 수도 없이 방향을 잃고 흔들립니다. 어디에 목표를 두고, 어떤 도움이 되어야 할지, 아이의 몸상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얻게 되는 것들을 늘 수백 번의 연습으로 얻어가는 아이의 고단함을 지켜봐야 하는 시간들 속에서 감성적이거나 소극적이지 않으려 애쓰곤 하지만, 늘 강하게 내 아이를 지켜내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곤 합니다."

모든 장애아동의 보호자들이 느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온전히 그 감정에 공감하진 못하겠지만, 가장 가까이 그들을 만나는 저희는 이 감정의 흔들림을 공감해주기도, 또 잡아주기도 하는 ‘축’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이 한 아이와 가정의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고, 그게 나비효과가 되어 그 아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는 생각에 소아물리치료사들은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치료 수가 문제, 적은 수익 등의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물리치료사들에게 소아물리치료 분야는 기본적인 치료지식에 더하여 아이의 정상발달까지 공부해야 하고, 아이의 동기부여에 대한 어려움과 보호자와의 관계 등을 이유로 기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아물리치료사의 숫자도 절대적으로 적죠.

그렇지만 아이의 첫 걸음을 떼는 순간을 함께 하고, 힘든 운동을 마치고 웃는 아이를 볼 때, 그리고 편지처럼 진심어린 보호자들의 마음을 느꼈을 때를 경험하면 그 보람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치료 종결이란 말이 그 단어의 의미 이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단한 지지대를 잃는 느낌이 듭니다."

소아물리치료사는 '축'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축’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축은 다른 말로 하면 ‘기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인간의 모든 움직임엔 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은 태어나면 지극히 일부의 기능만 할 수 있을 뿐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태어난 아기는 12개월 무렵 걷기 시작할 때까지 폭발적인 운동발달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은 신체, 조금 더 세분하면 각 관절들의 축을 세우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장애가 있거나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은 이 축을 세우는 게 어렵기 때문에 물리치료를 통한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죠.

운동학적인 축만 있는 게 아니죠. 심리적인 지지대로서의 축도 중요합니다.

양육자에 대한 든든한 안정감을 시작으로 사람과 사물, 환경과 사회에 대한 본인만의 심리적 축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치료사는 아이와 라포를 형성하면서 관계 안에서의 축을 만들어 그것이 치료의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 뿐만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우리는 아이의 운동학적인 발달에 있어 혼란스럽지 않도록 든든한 ‘축’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각각의 상황에서 치료사 나름대로의 관점을 기반으로 한 축을 만들어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아이와 가족구성원이 긍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리의 ‘축’으로서의 역할입니다.

소아물리치료사인 나의 치료적 관점은?

한 유명한 학자는 장애아동의 재활치료에는 6개의 ‘F-words’를 고려해야 한다고 합니다.
Function(기능)
Family(가족)
Fitness(건강)
Fun(재미)
Friends(친구들)
Future(미래)
이 6개의 단어들을 기준으로 사례를 들어 치료 과정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편지 속의 아이는 세살 많은 형아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중 형아가 심취한 킥보드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다리가 불편해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를 하는 아이에게 킥보드는 잡을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우리의 치료 목표는 ‘킥보드를 혼자 타기’였고, 너무나도 그걸 원했던 아이는 꽤 강도가 쎘던 한발서기 훈련을 보란듯이 이겨냈습니다(fitness). 그리고는 실내라는 한정된 환경이었지만 결국 킥보드를 스스로 탈 수 있었죠. 그 자체가 아이에겐 너무 큰 성취감으로 느껴졌습니다(function). 아이는 안전한 실내 환경에서의 성공을 형아와 함께 하는 놀이터와 공원으로 옮겨갔고, 서툴지만 조금씩 킥보드를 즐기게 되었습니다(family, fun).

물론 아이의 킥보드를 타는 모습(자세)은 삐뚤어져있고, 어딘가 어설픕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에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킥보드를 탄다! 스스로, 즐겁게!(fun, function)’가 중요했죠.

"킥보드는 그저 킥보드가 아니라, 형이 하는 것을 자기도 할 수 있고, OO이 스스로 큰 것을 해낸 성취감을 느낀 것 뿐만 아니라 엄마인 제게도 망치로 한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두발점프를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는 다른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26주 조산아로, 너무 어릴때부터 치료를 수도 없이 받아왔는데 그 힘든 재활치료들을 견뎌내느라 마음의 문이 많이 닫혀있었습니다. '운동은 힘들다'라는 사실은 아이를 능동적으로 재활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됩니다.

이 아이는 축구를 좋아했고, 한 복지관 축구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축구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이에게는 최대 목표가 되었습니다.

치료시간, 아이에게 축구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힘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눈은 반짝반짝 해졌고, 점프스쿼트를 10회씩 3세트, 3m의 거리안에서 사이드 스텝 훈련을 쉬지 않고 3분 동안 하게 됩니다.

치료사인 제가 아이와 모든 동작을 함께 하는데, 성인이 하기에도 힘든 수준의 운동입니다.

"야, 안 힘드냐? 난 힘들어 죽겠다."라고 하면 숨을 헐떡이며 "안 힘들어."(얜 나한테 죽어도 반말을 해야하겠다길래 그러라고 했습니다) 라고 합니다.

편마비인 아이의 자세는 그 운동을 하는 도중 쉽게 무너지고, 때로는 많이 틀어집니다.

그런데 아이는 두발점프를 해서 작은 허들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 운동들이 자신의 축구 실력을 높여줄 거라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결국 아이는 치료 종결하는 날, 두발점프로 2개층의 계단을 두발점프로 올라가게 되었지요(function, fitness, fun).

또 다른 어떤 친구는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입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그 친구의 고민은 점점 휘어지고 있는 척추에 대함입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허리를 바르게 펼 수 있으면 좋겠고, 그게 되면 예쁜 외모를 가지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더 친밀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friend, future). 그 친구의 목표는 ‘정상적’인 신체 정렬을 위해 부족한 근력을 강화하고, 짧아진 근육을 스트레칭하고, ‘바른’자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미 많은 성장을 한 친구의 척추가 다른 비장애 친구들처럼 펴지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더 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세우는 목표가 됩니다.

소아물리치료사의 궁긍적 목표는 아동의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 것

이처럼 소아물리치료사의 궁긍적 목표는 아동의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서 기능의 개선을 끌어내는 것이죠.

기능이란 사전적 의미로 생물체의 조직 기관 등이나 기계의 각 부분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능력이나 작용을 뜻합니다. 그러나 ICF(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개념 내에서 정의한 기능이란 사전적 의미보다 더 좁으면서도 넓습니다. 인간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에서는 더 좁지만, 이 개념이 신체 기능과 신체 구조, 사람이 하는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해야 하는 혹은 하고자 하는 역할을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훨씬 넓습니다.

결국 아이의 기능이란 단순히 신체 구조적 기능의 개선이나, 비장애인처럼 움직임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 아동의 넓은 의미로의 욕구와 삶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위의 아이들의 경우 과거였다면 킥보드보다는 더 예쁘게 서고 걷기를 목표로 했을 것이고, 두발점프보다는 불편한 팔다리를 더 ‘정상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애를 극복하고 고치는 관점으로 치료를 했겠지만 지금은 삶의 일부로서 사회에 참여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짧지 않게 풀어쓴 이유는 치료사가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면서 느낀 어려움 중 하나는 ‘서로에 대한 이해’였기 때문입니다. 직종 간 개념과 언어의 다름으로부터 오는 장벽을 느낄 때면 참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터놓고 얘기하다 보니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알면 서로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되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되고, 그게 일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틈만 나면 하려고 합니다.

사회복지사, 치료사 간 이해 필요해

우주에 빗대었기 때문에 인공위성이라고 했지만, 이 글을 쓰며 우리 소아물리치료사들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딱히 적당한 말을 떠올리기가 어렵네요. 제가 사회복지사를 우주라고 빗대었듯, 누군가가 소아물리치료사를 뭐라고 비유해주면 좋겠다고 막연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높아진것이기 때문일테니까요.

글을 마치며, 오히려 제가 힘을 받고 이 직업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해준 편지 속 어머님의 마지막 말을 전하며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편지 속의 그 아이와,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과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리면서요!

"엄마인 저에게도, OO이에게도, 가장 힘들 수 있는 시간을 선생님과 함께 지나왔습니다. 또 그 어수선하고 힘든 시간 속에서 가장 방향성을 잃지 않고 OO이를 이끌어주셨습니다. 내내 감사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