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언트가 마음을 쏟아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세요
클라이언트가 마음을 쏟아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세요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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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를 효과적으로 돕기 위한 비에스텍의 관계 형성 7가지 원칙 中 '의도적 감정표현’
출처 : 응답하라 1988 4회 中
출처 : 응답하라 1988 4회 中

위 사진은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입니다. 바둑 기사 택이(박보검)가 연달아 바둑 경기에 패하며 슬럼프에 빠집니다.
동네 어른들은 그저 모른 척하는 것이 택이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 방에 모인 친구들은 택이에게 이럴 때 욕을 하는 거라 알려줍니다.

신나게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른 택이의 표정이 개운합니다. 그렇게 택이는 슬럼프에서 빠져나옵니다.

 

출처 : 네이버 책 소개 이미지 中
출처 : 네이버 책 소개 이미지 中

이태석 신부님의 책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를 보면 아프리카 톤즈의 소년병 마뉴알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 댓살 정도 된 마뉴알이 다리에 총상을 입고 신부님이 계신 병원으로 실려옵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춘기 소년에게 살기가 느껴집니다. 입원한 두 달 동안 마음을 열지 않았던 마뉴알이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신부님께 찾아옵니다. 야단을 치고 싶었지만 가만히 둡니다. 아이는 울기 시작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아홉 살 때 군대에 끌려와 적군을 죽이기 시작한 마뉴알이 톤즈 학교에서 공부하는 제 또래를 보며 자신의 삶을 생각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신부님은 그저 마뉴알이 그칠 때까지 등을 토닥거려줍니다. 울음을 그친 마뉴알은 밀린 월급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군대를 나와 자동차 정비 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출처 : 유튜브 드림웹스 ‘독일의 희망마을 하우스할에 가다’ 中
출처 : 유튜브 드림웹스 ‘독일의 희망마을 하우스할에 가다’ 中

독일의 장애인시설 하우스 할’ 에는 장애인분들이 일하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장애인보호작업장입니다. 일을 하던 한 장애인이 별도의 공간으로 들어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옷을 벗으려고 시도를 합니다. 선생님은 그저 바깥에서 기다립니다.

작업장 내에서는 규칙에 따라 일을 해야 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이 생기면 별도의 공간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자기의 감정을 쏟아낸 후 다시 선생님과 작업장으로 돌아옵니다.

택이와 마뉴알과 장애인시설의 당사자분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속상함, 억울함, 부정적 감정을 쏟아낼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욕을 하며 깔깔 거렸던 친구들, 술에 취해 울면서 횡설수설해도 등을 토닥이는 신부님, 소통이 잘되지 않아도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맘껏 환기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선생님.

엄마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면서 저는 수시로 가족들과 상담합니다.
치매 환자인 친정 엄마를 오랫동안 모시고 산 딸은 요즘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합니다. 밥을 잘 드시지 않고 누워있기만 하는 엄마, 새벽에는 온 집안을 배회하다 넘어져 다치는 엄마를 보며 화가 나고 불쌍하고 속이 상합니다. 언제까지 자신이 수발을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합니다.

참다 참다 저에게 전화를 주셔서 힘든 이야기들을 털어놓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면 처음의 흥분했던 목소리가 점차 가라앉습니다. 들어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정말 제가 한 일은 들어준 일 밖에 없는데 연신 감사 인사를 합니다.

클라이언트와 관계 맺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대단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부터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속상함, 고통, 분노, 걱정, 두려움 등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쏟아낼 수 있도록 택이의 친구들처럼, 이태석 신부님처럼, 하우스할 담당자처럼 시작해보시길 추천합니다.

홀가분해진 클라이언트의 저 깊은 내면에서 서서히 회복력이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