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임금' 관리자가 무능한 직원을 만든다
'벌거숭이 임금' 관리자가 무능한 직원을 만든다
  • 전진호 기자
  • 승인 2019.06.12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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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웰페어이슈에 연재 중인 이경구 소장의 연재를 읽다보면 자꾸 관리자들이 떠오른다.

'사업계획서-실적-보고서'에 이르는 일련의 실무자를 위한 교습서같은 글인데 왜 관리자 얼굴들을 생각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이 소장이 전제로 삼은 리더와 현실에서 목격해온 관리자 간의 간극때문일 것이다.   

그런 관리자들은 대체로 비슷한 특징이 있는데, 십수년간 변화없는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일하다 보니 자신만의 확고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여기에 (과거) 이것 저것 해봤다는 경험과 자신감, 누가 뭐래도 자신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자아의식과 최고관리자 등에게 어필하고 싶은 욕구들이 강하다. 여기에 이런 것들이 다른 직원들을 힘들게 한다는걸 아무리 이야기해도 '벽창호'마냥 받아들이지 않는 옹졸한 마음까지 결합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수준이다. 

벌거벗은 임금이 된 관리자

직장생활을 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하겠지만, 관리자가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이를 드러내어 문제제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압적이고 상명하달 식의 구습에 익숙한 관리자는 윗 사람과 아랫 사람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윗 사람에게 자신이 하는 것처럼 자신의 부하 직원도 그렇게 하기를 은연 중 강요한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고, 사람들 인식이 바뀐건 안중에도 없고 자기 방식만 고수하지만 이미 단단한 벽을 쌓은 권위에 누구도 노골적으로 대들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벌거벗은 임금'이 돼 버렸고, 그 누구도 그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혹자는 아무리 관리자라도 잘못하는 게 있으면 지적하고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진짜 말일 뿐이다. 현실에선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단순히 들볶이거나 찍히고 난 후의 후폭풍이 두렵기때문만은 아니다. 관리자가 작정하고 무능한 직원으로 만들어 버리면(아다시피 관리자가 작정하고 무능한 직원을 만드는 비법은 수백가지도 넘는다) 회복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오랫동안 겪은 중간관리자는 적당히 비위를 맞추고, 그가 싫어하지 않을 수준으로만 일을 하게된다. 

이 '벌거벗은 임금'은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관점(심지어 기분)에 맞지 않으면 몽니 부리거나 속칭 '죠지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면 아무리 건전한 관점과 자기 소신, 심지어 경험까지 갖춘 직원이라 하더라도 오늘과 내일이 다른 입맛을 맞추기 어려워 하고, 슈퍼비전 대신 비약가득한 훈계에 지쳐간다. 이렇게 무참히 깨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다보면 스스로 무능력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결국 뭔가 해보겠다는 열정은 꺾인채 조직에 순응하거나 경쟁력 있는 이는 배울 것 없는 조직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온다. 

그나마 최고관리자가 위험 시그널을 잘 캐치해 돌려놓으면 괜찮지만 알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바깥 활동이 많은데다 의도하지 않는 이상 직원들과 직접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결제권까지 틀어쥐고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 최고관리자는 그야말로 '결제하는 기계'로 전락한다. 게다가 제한된 임기만 머무는 '갈 사람'이라 여기는 경우까지 겹치면 관리자에게 많은 문제가 있어도 '살아있을 권력'의 문제를 최고관리자에게 말한다는건 보통의 일이 아니다.   

전조는 있으나 캐치하는건 어려워

물론 망조는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한꺼번에 많은 이들이 퇴사하기 시작하는데 그 원인을 못 찾는다. 이런 과정은 주기적으로 무한 반복할 것이고, 어느순간에는 망각에 빠진다. 그렇게 또 몇년이 흐르고, 어느 날 되돌아 보면 뭔가 할 수 없는 조직이 됐다 느끼지만 그때는 뭘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나라 예산으로 운영되니 침몰할 일은 없지만 그야말로 심폐소생 기계로 연명이나 하는 꼴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기업이라도 이런 이가 리더군에 속해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회복지를 업으로 하며 전문가이자 철학가라고 자긍심을 갖는 이가 그나마 남아있는 주변 사람들이 '이제는 제발 그러지 말라.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충고해줘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귓등으로 흘린다면 지역으로 나가서 소통하고 관계 맺으라는 말은 관념과 잔지식, 권위에 가득찬 헛소리에 불과하다.

협의와 조정, 룰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사업계획서가 의미없는 조직은 어떻게 해야할까. 소통은 소통이되 자기 중심의 소통이 안이뤄지면 판을 깨는 '벌거벗은 임금'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