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만난 비극
가정의 달에 만난 비극
  • 나눔과나눔 기자
  • 승인 2021.06.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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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5월 장례이야기
(직접 써온 조사를 낭독하는 고인의 누나)
(직접 써온 조사를 낭독하는 고인의 누나)

“살아있을 때는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는데, 죽고 나서 부고는 알려주네요….”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많은 이들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맞아 서로 안부도 묻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이런 가정의 달에 생전에 만나지 못하고 죽고 난 후에야 재회한 가족들의 장례가 수 차례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체되곤 합니다. 가족 간의 불화가 이유일 수도 있고, 돈이 얽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거리가 멀어지며 자연히 관계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나눔과나눔이 5월에 만난 고인은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며 가족들과 단절된 분이었습니다.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는 자신이 다른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 봐 스스로 연락을 끊고 오랜 시간을 홀로 살아온 고인의 장례엔 가족들이 함께했습니다. 안타까움을 가득 안고 수 십년 만에 재회한 가족들은 살아서 만나지 못했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생이 연락을 끊어버려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어요. 하지만 영정이라도 올리고 싶어서 주민센터에 신분증의 증명사진이라도 찍어달라 부탁했는데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거절당했어요. 결국 영정 없이 장례를 치르네요.”

오랜 단절의 시간도 동생을 향한 마음과 그리움을 퇴색시키지 못했는지 고인의 누나는 살아서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아쉬움을 전했습니다. 비록 영정은 올리지 못했지만 직접 적어온 조사를 읽으며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내 동생이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언제 가장 힘들었는지, 언제 가장 아팠는지, 힘들 때 누가 곁에 있어 주기는 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해서 동생에게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우리가 행복했던 시간을 네가 기억해주면 좋겠어.”

(의료법 제17조 진단서 발급에 관한 항목)
(의료법 제17조 진단서 발급에 관한 항목)

 

“형제가 장례를 치르겠다는데 왜 그걸 막는지….“

‘ㄱ’ 님의 장례 일정이 확정되어 시신 위임서에 적힌 고인의 형제에게 부고를 알리려던 때의 일입니다. 번호를 입력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이미 문자를 보낸 이력이 있는 번호라는 표시가 떴습니다. 나눔과나눔의 활동가는 실수로 다른 번호를 입력한 것인가 싶어 확인해 보았지만,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전에 받았던 공문을 뒤져보니 같은 번호가 나왔습니다. 올해 1월에 장례를 치렀던 다른 고인의 공문 속 시신 위임서의 연락처와 일치했습니다. 당시 장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활동가의 머릿속을 스쳐 갔습니다. 다섯 형제 중 맏형이 장례에 참여했고, 바로 아래의 동생 빼곤 모두 죽어서 이제 남은 형제는 하나뿐이라고 했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결국 하나 남은 바로 아래의 동생이 자살로 세상을 떠났고 무연고사망자가 되었습니다. 4개월의 간격을 두고 맏형이 동생 두 명을 무연고로 떠나보낸 것입니다.

장례 현장엔 정말 많은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고인의 전 직장동료들이 스무 분가량 참여해 운구를 도왔고, 관이 화로로 들어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습니다. 짧은 애도의 시간이 지나고 1월에 이미 만났던 고인의 형제와 씁쓸한 인사를 나눴습니다. 설마 다시 공영장례 빈소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고인의 형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잠시 어색한 적막이 흐르고 어렵게 입을 뗀 고인의 형제는 마지막 남은 동생도 무연고로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ㄱ’ 님과 1월에 장례를 치른 고인은 공공이 장례를 치를 이유가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돈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동생 둘의 장례를 직접 치르려고 했습니다. 근데 동생들에게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끝까지 사망진단서를 안 주더라고요. 자식들은 연락도 안 되고 위임서도 다 썼는데 왜 나한테 사망진단서를 안 주는지…. 그래서 굳이 동생들을 무연고로 보내게 만드는 지금의 상황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됩니다.“

장사법에 따르면 형제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구성원 중 가장 마지막 순위의 연고자입니다. 형제는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가족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법에서는 형제에게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경우를 다른 직계가족이 없는 경우로 제한합니다. 이 법안에서 이야기하는 ‘없는 경우’라는 것이 시신을 위임한 경우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없으므로 이런 경우 병원은 사망진단서 발급을 거부합니다. 사망진단서가 없으면 발인을 하지 못하고 화장도 불가능합니다. 장사법과 의료법의 충돌 탓에 형제가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맏형은 제도적인 구멍 때문에 동생들을 무연고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효율 면에서도 최악인 결과를 마주하며 하루 빨리 법안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에도 같은 이유로 형제를 무연고로 보낸 분이 있었는데, 이번엔 한 사람이 그런 비극을 두 차례나 겪어야 했습니다. 다섯 형제 모두를 잃은 맏형은 나지막하게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가도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동생들이 이렇게 다 먼저 가버렸네….“

(서울 도심 속에 위치한 어느 여관)
(서울 도심 속에 위치한 어느 여관)

고립사가 일상인 어느 곳

5월 한 달간 나눔과나눔이 장례를 지원한 쉰다섯 분의 무연고사망자 중 고립사한 분은 열일곱 분입니다. 많은 분이 사시던 곳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하고, 수일이 지난 후에 발견되고 있습니다. 무연의 도시 서울에서 이제 고립사는 일상의 풍경입니다. 그리고 서울 도심 한복판의 몇몇 장소에서 그 일상의 풍경은 점점 더 잦고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장례를 위해 공문을 받아들고 혹시 모를 고인의 삶의 조각을 모으던 때였습니다. 따로 시신위임서나 제적등본, 경찰조사서등이 첨부되어 있지 않았기에 별다른 특이사항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심히 다른 공문으로 눈을 돌리려던 순간 고인의 사망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주소에 인터넷 지도의 거리뷰를 켰습니다. 사진이 비추는 곳은 번화가 한 가운데에 위치한 여관이었습니다. 한낮에도 볕이 들어오지 않는 그 여관은 이미 여러 번 보았던 곳입니다. 나눔과나눔은 그곳에서 고립사한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이미 네 번이나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 여관은 사실상 쪽방의 형태로 운영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마 투숙객 대부분은 잠시 머무는 게 아닌 달방으로 장기투숙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좁은 여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 안의 사람들은 옆 방 혹은 앞방의 누군가가 죽고 사라지는 경험을 겪었을 겁니다. 반복되는 죽음 들을 지켜보며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순간도 그러리라 예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중 몇몇은 무연고 공영장례를 통해 결국 나눔과나눔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무연의 도시 서울은, 어쩌면 생각보다 더 단단한 고립의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애도

애도의 방법은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애도는 이래야 한다’는 어떤 상(像)을 가지고 장례를 치르지 않습니다. 5월에는 장례에 참여하신 분들이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인을 애도했습니다.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친어머니에게 미안해 차마 새어머니의 장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분, 고인을 위해 직접 적어온 조사를 읽었던 분, 공영장례 전에 고인이 안치된 장례식장에서 빈소를 대여하고 식사를 올렸던 분 모두 결과 형태는 다르지만, 고인을 떠나보내며 나름의 이별을 했습니다. 공영장례는 그 이별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애도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형식의 원칙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보내며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의 그루잠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5월 무연고 사망자(기초생활수급자 41명 포함)

박범진, 이병구, 정추자, 유한근, 손경식, 전진국, 나선희, 전진용, 허정, 강인성, 이준규, 김기태, 정선우, 정광자, 김경애, 오영득, 박헌수, 박연순, 김영철, 홍명자, 변순자, 장신구, 이영구, 정진식, 박성실, 이원철, 김옥수, 배귀남, 국정명, 장종석, 정명수, 이재석, 정운홍, 박승일, 윤병우, 정동희, 이정원, 장성현, 박경수, 이원석, 김우익, 현정순, 전명자, 박호영, 이하승, 이귀덕, 이한수, 정문선, 김창환, 이영기, 이희룡, 안정희, 정희윤, 오응훈, 권영구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쉰다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