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가 내 삶의 전부는 아냐...주민들과 함께 재미와 의미를 찾는 지금의 경험이 내 삶에 큰 자산될 것
급여가 내 삶의 전부는 아냐...주민들과 함께 재미와 의미를 찾는 지금의 경험이 내 삶에 큰 자산될 것
  • 전진호 기자
  • 승인 2019.06.12 2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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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회사업가 김석 인터뷰

- 자기 소개와 하는 일 부탁드린다.

“마을사회사업가 김석입니다. 저는 지금 마을에서 논다 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좀 더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이 행복한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민들께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 더 잘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거나, 마을에서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복지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아니면 어려운 이웃들이 있으면 지역 주민들이 함께 도울 수 있도록 그런 계기나 자리를 마련한다거나 하는 일들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 마을에서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지.

“네. 마을 주민들하고 처음 제가 했던 건 주민들 간의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는 일을 했었고요, 그래서 처음에 마을에 제가 들어가서 1년 정도는 뭔가 사업을 벌이거나 일을 한 게 아니라 주민들을 만나서 인사드리고 소통을 하는 일을 했었고, 그분들이 저를 알게끔 하고 제가 주민들을 아는 작업을 먼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주민들이 제가 뭔가 요청 드리고, 부탁드리면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늘어난 거 같습니다.

- 누구의 아들이기 때문에 도와주시는 것 아닌가.

“누구누구 아들이나 이런 느낌은 아닌 거 같고요, 생각해보면 저랑 같이 뭔가를 하면 즐거움이 있고 본인들도 뭔가 얻는 것들이 있다 라고 하는 생각이 드니까 참여를 하시는 거 같습니다. 왜냐면 어차피 제가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건 아니고요, 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 마을에 처음 발을 디디기 시작했고, 그래서 전혀 저를 모르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관계 맺기 시작하고 하면서 일을 추진 한 거기 때문에 이게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요.

누구나 다 그런 거 같습니다. 본인한테 뭔가 돌아오는 게 있다. 그게 재미있거나, 아니면 경제적 이익이 됐든 즐거움이 됐든 아니면 뭔가 의미들이 됐든 이런 것들이 본인 스스로가 느끼는 것도 있다 보니주민들이 좀 더 참여 하시려는 것 같고, 지금은 또 언제쯤 뭔가를 하는지도 물어보기도 하시고, 이렇게 같이 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 소통이라는게 말처럼 쉬운게 아닌데,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

“제 친숙한 얼굴로 다가간 게 처음인 거 같고, 고급진 표현으로 사교성이 좀 있다 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넉살이 좋다라고 할 수 있는데요, 경로당을 찾아 다니면서 그냥 배고프니까 밥 좀 달라고 말씀드리기도 하고, 놀러 왔다고 얘기 좀 해 달라고 말씀드리기도 하고, 이렇게 다가가는 것들이 시골에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을 보기가 흔치 않은데 그렇게 친숙하게 다가와 주니까 손자처럼 아니면 아들처럼 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가 개인적인 뭔가 경조사가 있거나 뭔가 좋은 일이 있으면 제가 떡을 해서 주민들께 나누기도 하고, 뭔가 제가 먹을 게 있다고 하면 같이 나누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소통과 관계를 확장 시킨 것 같습니다.

뭔가 주고받는 것들, 그게 뭐 물질적인 건 아니더라도 마음과 웃음과 재미와 즐거움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것들로 천천히 하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소통이 더 확장되는 계기들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여전히 사회복지 현장은 기관이나 시설에서 일하지 않으면 백수 취급을 하거나 사회복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복지관에서 나와 마을에서 일하겠다 결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뭔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가지 상황 등을 고려해야 되고 그에 따른 선택과 결정을 하는 상황에서 여러 갈등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내부적인 것도 그렇고, 가족과도 그렇고, 저를 아는 다른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일 거 같고요. 하지만 저는 거기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내 자신이 좀더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게 뭔가라는 것을 제일 우선순위로 결정합니다.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을 하고 할 때도 물론 즐거움이 있었고, 재밌었지만 제 성향 자체가 좀 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안에서 함께 뭔가를 이루고 함께 하는 것들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걸 선택하는데 주안점을 뒀기 때문에 지긍의 활동들이 저한테 좀더 즐거움으로 다가올 수 있어서 결정을 했던 거 같고요, 그렇게 마음먹음으로 인해서 갈등하고, 고민했던 지점들은 좀 뒤로 접어뒀던 거 같습니다.

- 혹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그런 생각도 많이 하죠. 솔직히 정기적인 월급을 받고 안정적이라고 하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과 마을에서 불확실하고 불안전한 상황에서 계속 제가 활동하고 일한다는 게 큰 차이가 있는 거 같긴 합니다.

그래서 수없이 고민하고, 지금도 내가 굳이 이렇게 계속 해야 되나 라는 생각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지금 하는 활동들, 그리고 저에게 의미 있는 것들이 (지금 활동이) 좀 더 낫다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향후 몇 년 정도는 계속해서 이렇게 활동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기관에서 나왔다 돌아가기 어려운 것 중 하나를 호봉을 꼽기도 한다.

“그런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호봉이 어차피 깎인다라고 하더라도 급여가 제 삶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저의 이런 경험과 이제까지 했던 실천들이 만약에 (복지관)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제 현장에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부족한 급여나 이런 것들은 다른 것들을 해서 좀 채워야겠죠. 저도 가장이기 때문에.”

- 지금의 활동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고 있는듯 하다. 그런데 이런 활동을 왜 복지관에서는 하지 못할까.

“복지관에서 이렇게 주민들과 하는 게 쉽지 않은 건 우선 주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예전에 복지적인 관점이 아직도 많이 강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지관에서는 주민들과 함께 해야 되고 그분들을 주체적으로 세우고 그분들 할 수 있는 거를 거들어 준다라고 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직까지도 뭔가 주민을 수혜대상이거나 아니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온전히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함께 하는 것들은 아직은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복지관에서는 아무래도 실적이라고 하는 것과 보조금을 받는 입장에서 그것들을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되는 것들이 있다 보니 주민들의 요구나 필요가 앞서기 보다 복지관에 정책이나 복지관에서 서비스 중심의 활동들이 진행이 되다 보니까 그것들과 주민들이 맞지 않는 지점들이 생기는 거 같고요 그런 측면에서 좀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라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복지관에서는 해보지 못했으나 마을에 나와 새롭게 시도한 사업 중 성공, 실폐사례에 대해 소개해 달라.

“다들 아시겠지만 농촌 마을은 아무래도 주민들 대부분이 어르신들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뭐 지방소멸 얘기하기로 하고, 그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지역이 어떻게 될까 라고 하는 고민들을 많이 하는데 아무래도 연세가 많고, 나이가 많으시다보니 주민들이 예전에 즐겁게 했던 활동들 아니면 공동으로 모여서 뭔가 했던 것들이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인 거 같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마을에 잔치나 축제들이 많이 없어진것 같고요, 요즘은 그런 마을에 잔치나 축제도 다 예식장이나 이런 데서 해결을 하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뭔가 할 수 있는 거리들이 약해진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조금 더 살려 봤으면 좋겠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 가운데서도 주민들이 모여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하는 것들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축제를 기획해서 진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축제라기보다 우선은 주민들이 행복한 축제를 좀 만들어 보자고 동네잔치라는 이름으로 마을축제를 진행했구요, 그 마을 축제는 누군가가 뚝딱 만들어서 어르신들한테 즐거운 걸 보여주거나 공연을 보여주거나 이런 걸로 기획 한건 아니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그 축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을 했고요.

그래서 주민들과 함께 같이 패션쇼를 하기도 하고, 일바지라고 하는 예전 말로 몸빼라고 하는데 일바지 패션쇼를 하기도 하고, 2회때는 웨딩 패션쇼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했었고요, 지역에서 나는 음식물을 가지고 주민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과정 안에서 관계가 좀 더 넓어지고 주민들이 함께 만나서 얘기 나누고 같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주민들이 직접 지역에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마당극을 꾸며서 공연 올릴 수 있도록 같이 연습하고 모여서 그런 것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느꼈던 건 주민들이 이제까지 계기가 부족해서 못 만난 것들이 더 많다 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계기를 마련해주니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지고, 모임이 만들어지는 가운데서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거리들이 또 생겨나고, 이런 것들을 경험하게 됐고요.

물론 뭐 이게 지속적으로 가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선 그 순간 순간을 재미있게 즐기다 보면 그 재미를 통해서 좀 더 나은 의미들과 좀 더 지속 가능한 것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실험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실패했던 경험이라고 하면 제가 마을에 경로당들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것들을 주민들과 함께 하면 주민들이 좀 더 재밌게 참여하거나 의미 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할 생각으로 주민들께 여쭸더니 많이 얘기 하셨던 게 한글 모르는 것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한 경로당을 대상으로 우리 한글교육을 해 보자 이렇게 해서 강사도 섭외하고, 일정도 맞춰서 한글교육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한두 번은 어르신들께서 잘 참여하셨는데 어르신들이 갑자기 경로당에 계시다가도 한글 교육 시간이 되면 다시 나가시고 그래서 처음에는 열명 넘게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한두 명만 남아 계신 상황이 발생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럴까 라고 하는 것들을 생각해 봤더니 주민들이 한글을 모르고도 이제까지 사셨는데 갑자기 그것을 공부라고 하는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하니까 재미가 없고, 내가 이걸 배워서 뭐해라는 마음이 드셨던 거 같아요.

그 전에 한글 교육 말고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교육들은 그 순간을 즐기는 거였다면 한글이라고 하는 건 어느 순간 공부로 접근이 되다 보니 그런 것들에 대해서 조금 어려움들이 있으셨던 거 같고요. 그래서 그 경로당에서 하던 프로그램은 중단을 하고 그나마 한글에 대한 욕구가 좀 더 있으시고 배움에 대한 요구가 있으신 마을로 옮겨서 지금은 다른 마을에서 그 한글 교육 프로그램들을 하고 있는데 그 옮긴 마을은 기존에 어느정도 한글을 아셨던 분들도 꽤 많이 계시고, 교육을 통해 손자나 자녀들 하고 좀 더 얘기하고 하는 거리들이 늘어나니까 그 마을에서는 또 잘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 쪽에서 얘기하는 욕구조사 라고 하는 측면에 있어서 제가 하나의 단편적 측면만 바라보지 않았나 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앞으로는 주민들 하고 조금 더 그렇게 방법적인 것들이 라든지 좀 더 필요한 것들을 더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계기들이 된 거 같습니다.

-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게 있다면.

“미래를 위해서는 항상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건 우선 공동체가 유지 살려면 아무래도 거기에 필요한 인적이라든지 물적이라든지 관련된 자원들, 편하게 얘기하면 사람과 돈이 필요한 게 사실이기 때문에 지금 마을에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마을주민들이 행복한 활동들을 지속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과 관련해서 돈을 좀 마련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을사업을 하면서 센터를 지었는데요, 마을회관 개념이긴한데 거기에서 우선 주민들이 행복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거지만 그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종잣돈은 그 센터에 워크숍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아니면 외부에서 참여할 수 있는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서 운영하려고 계획하고 있고요, 그래서 하반기부터는 그 안에서 교육이나 워크숍이나 아니면 저희 자체적으로 농촌과 관련한 프로그램들을 좀 만들어서 외부에 홍보하고 그것들로 수익을 얻는 활동을 좀 계획하고 있고요.

개인적인 측면으로는 마을에서 하는 활동과 개인 수익을 좀 분리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뭐 마을에서 엄청난 수익이나 급여를 받는 건 아니지만 이게 마을에서 돈을 받고 활동하기 시작하면 지금은 아무래도 저의 정체성이나 생각을 가지고 접근 하는 것들이 더 큰데 돈을 받는 순간 직원이나 뭔가 거기에 따른 마땅한 일을 해야 되는 그냥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향이 있을 것 같아서 그것들을 좀 분리해서 개인적으로 수익을 마련할 수 있는 다양한 거리들을 좀 준비하려고 하고요, 그게 뭐 강의가 지금하고 있는 강의를 지속하는 거일 수도 있고 또 하나의 사업들을 벌리는 것일 수도 있고 뭐 이런 거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차츰 지금 해나가려고 계획하고 궁리하고 있습니다.

- 10년 전 김석으로 돌아간다면.

“10년 전 저한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10년 후에 네 모습은 네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것이기 때문에 네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지금하는 것처럼 열심히 하면 좋겠다라고 해 줄 것 같고요, 너를 믿어라 라고 얘기해 줄 것 같습니다.”

- 복지관이나 시설이 아닌 현장으로 나와 사회사업에 도전해보려고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먼저 나온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배라기 보다 같은 사회복지 현장에 나온다라고 하면, 지금 마을도 사회복지현장에 일원이라고 한다면 그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만큼 본인의 역량과 본인의 그런 가능성들을 펼쳐내는 것들을 좀 했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걸 하려면 우선적으로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어떤 것들을 원하는지라고 하는 본인에 대한 성찰과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는 너무 무모하게는 도전하거나 뭔가 시도하기보다 우선 주변의 선배라든지 아니면 기존에 했던 여러 어른들이라든지 그분의 말씀도 수용하고, 그런 것들을 잘 조절해서 했으면 좋겠다 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