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寶物)과 퇴물(退物) 사이
보물(寶物)과 퇴물(退物) 사이
  •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1.06.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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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스님 한 분과 통화했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간 뒤,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퇴물이 다 된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무슨 말이냐면서 ‘회장님은 퇴물이 아니라 보물’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라서 감사한 마음이 앞섰다. 다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은퇴가 몇 개월 앞으로 다가와 있는 터라 잡다한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무엇보다 어깨의 무게가 야릇하다. 뭔가 벗어지는 느낌도 있고, 무언가가 새로 들씌워지는 느낌도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은 아주 시원하기도 했다가 어떤 날은 허전한 느낌에 가슴이 싸리하기도 하다.

주변에 은퇴한 지인들이 많다.
나름대로 분주하게 열심히들 살고 있다. 학교에서 은퇴한 친구들은 이제야 구속을 벗었다면서 자유를 만끽하며 지낸다. 코로나로 온 세계가 멈춰서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기업체의 고위간부로 있다가 은퇴한 친구는 전국의 골프코스를 순례하고 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라서 멋진 사진을 많이 보내온다. 하나같이 그림 같은 초원을 배경으로 밝은 얼굴이 담긴 사진들이다. 그러나 멋진 소식만 오가는 것은 아니다. 건강하게 은퇴한 친구가 믿을 수 없는 병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느닷없는 비보에 망연자실한 적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는 내가 물러날 나이가 되었다. 문자 그대로 ‘퇴물’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일상을 살아야 한다.

35년을 숨 가쁘게 달려왔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 또 은퇴 이후에 두 가지 큰 계획이 있다.
하나는 여행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공부를 하는 일이다. 그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것이어서 지루할 걱정은 없다. 하지만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조금 아쉽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사람들이 어겨서는 안 될 금칙(禁則)이 있다고 들었다. 이 금칙을 어기는 순간 꼰대가 되고 역겨운 퇴물이 된다고 했다. 그것은 ‘들어가고 나가는 시점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퇴물이 될 것인지, 보물이 될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퇴물의 특징은 ‘쓸데없는 참견’이다. 원로목사와 후임목사가 다투는 가장 큰 이유도 참견과 배제 때문이다. 원로목사는 끼어들고 싶고, 후임목사는 배제하려다 보면 갈등이 생긴다. 간혹은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물러나는 사람이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결단코 나서지 않는 것’이다.

쓸데없는 참견은 잘 되던 일도 어그러지게 만든다. 참견하고 끼어드는 순간부터 퇴물이 아니라 흉물이 된다.

‘보물’이 되려면 ‘말은 줄일 것, 얼른 일어날 것, 지갑을 자주 열 것’에 익숙해지라는 선배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당장 오늘부터 실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