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대신장례’를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
‘가족대신장례’를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
  • 나눔과나눔 기자
  • 승인 2021.07.0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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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6월 장례이야기
(무연고 사망자의 화로 앞에 놓인 국화꽃)

쉴 틈 없이 지나간 한 해의 절반, 아직 갈 길이 먼 ‘가족대신장례’

어느덧 2021년도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한 해의 절반이 가는 동안 공영장례 빈소에는 사백 한 명의 무연고사망자분들의 위패가 모셔졌습니다. 작년 상반기 동안 장례를 치렀던 무연고사망자분들이 삼백 두 명이었으니 백 명이 더 늘어난 것입니다. 이는 수급자 무연고사망자분들의 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지만, 이 증가 폭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아마 2021년에는 서울시에서만 팔백 분이 훌쩍 넘는 무연고사망자분들의 장례를 치르게 될 것 같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지침을 토대로 ‘가족대신장례’가 가능해진 후로 많은 분이 장례주관자나 연고자 지정을 받아 사랑하는 이의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6월에만 네 번의 연고자 지정과 한 번의 장례주관자 지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지침이 마련됐는데도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이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족대신장례’를 둘러싼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 그리고 만들어진 지침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된 안내 때문입니다. 6월에 장례를 치른 무연고사망자 두 분이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ㄱ’ 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가족과 교회공동체)

무연고는 일주일, 연고자 지정은 한달?

‘ㄱ’ 님은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 배우자의 아들도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 ‘ㄱ’ 님에겐 가족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설마 본인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ㄱ’ 님의 임종 후 혈연으로 묶인 가족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망진단서 발급이 거부되었고, 그제야 아들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구청에서 ‘가족대신장례’ 지침을 안내받았고 그렇게 어머니의 장례는 잘 마무리되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ㄱ’ 님은 끝내 무연고사망자 공영장례로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빈소에 찾아온 아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그간의 일들을 쏟아냈습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기 때문에 따로 서류를 증빙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정 서류가 없다면 인우보증도 가능하다기에 그걸 받아 장례를 치르려고 했다고 합니다. 장례를 치르기 전 해당 구청의 주무관과 통화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서류가 아무것도 없다면 인우보증서도 보건복지부 지침에 적힌 증빙서류 중 하나라는 활동가의 말에 주무관은 “인우보증을 허위로 서면 어떻게 해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알고 보니 주무관은 무연고로 행정처리를 하면 일주일 안에 장례를 치를 수 있지만, 인우보증을 통해 연고자 지정을 받는다면 3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고 안내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구청에선 하루 만에 심의를 마치고 지정을 하고 있는데 왜 3달이나 소요된다고 안내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차가운 안치실에 3달이나 모실 수 없었기에 아들은 눈물을 머금고 ‘ㄱ’ 님의 장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관 속에서 부패되는게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럼 무연고로 장례를 치르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어머니 장례 앞두고 큰 소리 나는 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제가 구청에 장례 다 끝나고 보자고 했어요. 일단 어머니 보내드리고 보자고요.”

‘ㄱ’ 님의 장례에는 아들과 며느리, 조카가 함께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무연고로 보냈다는 죄책감에 자책하며 괴로워했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여장부이자 신여성’으로 이모를 회상하던 조카는 장사법상 연고자는 아니지만, 친족으로 인정받아 유골을 반환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어쩔 수 없이 무연고로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의 마음속에 이날의 상처는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화로에 들어가는 ‘ㄴ’ 님의 관을 지켜보는 친구들)

내 친구를 무연고로 보낼 줄은 몰랐어요…

‘ㄴ’ 님도 위의 ‘ㄱ’ 님 처럼 무연고로 장례를 치를 이유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ㄴ’ 님에겐 장례를 치르고자 희망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ㄴ’ 님이 대장암 진단을 받고 건강이 악화되자 친구들은 돌아가며 병원 치료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다 같이 돈을 모아 수술을 도왔고,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이후엔 TV를 비롯한 기본적인 가전제품들을 구매해 전셋집의 살림 세간을 함께 꾸렸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ㄴ’ 님을 친구들은 돌아가며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죽 사달라고 하면 이 친구가, 빵과 우유를 먹고 싶다고 하면 내가 사다 줬어요.” 친구들에게 험한 소리 한 번 한 적 없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고 친구들은 ‘ㄴ’ 님에 대해 입을 모아 이야기했습니다. 제삼자인 활동가의 눈에도 친구들은 끈끈한 우정으로 묶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집에서 고립사 한 채 ‘ㄴ’ 님이 발견되었을 때, 친구들은 당연히 본인들이 장례를 치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장, 병원, 심지어 경찰에서도 가족이 아니면 절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합니다. 정 방법이 없을까 싶어 찾아갔던 구청에서는 16가지의 증빙서류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16가지의 서류 중 한가지만 갖춰져도 ‘가족대신장례’를 진행하는데 문제가 없는데 왜 그렇게 안내했는지 의문입니다. 결국 친구의 시신을 화장하는 것은 포기하더라도 안치되어 있는 장례식장에서 빈소를 마련해 장례식만이라도 하자고 친구들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찰이 반대하며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재산을 탐해 장례를 치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였습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ㄴ’ 님은 다른 친구들에게 부고를 알릴 수도 없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부고만이라도 알리고 싶다는 친구들의 요청은 차갑게 거절됐습니다. 다 함께 꾸렸던 살림 세간이 있는 전셋집에도 들어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집에 친구와 추억이 깃든 유품들이 있어요. 그 추억들은 같이 정리해야 할 것 아닙니까…” 라고 말하는 친구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습니다.

 

(쪽방 주민들에게 ‘가족대신장례’를 설명하고 있는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

‘가족대신장례’를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

‘가족대신장례’ 지침이 생겼지만, 가족이 아닌 이가 장례를 치르는 것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여전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운영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는 잘못된 편견은 이렇습니다. 첫째, 가족이 아닌 이가 장례를 치른다면 범죄은닉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둘째, 재산을 노리고 장례를 치르는 파렴치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셋째, 내연관계의 사람이 배우자 대신 장례를 치르려고 할 것이다.

이 세 가지 편견은 모두 사실상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씩 반박을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경찰의 조사가 들어갑니다. 따라서 범죄은닉을 위한 방법으로 ‘가족대신장례’를 이용하는 것은 어리석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둘째, 재산 상속과 장례를 치르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입니다. 상속은 민법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설령 연고자로 지정받아 장례를 치르더라도 고인의 유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셋째, 가족이 아닌 이가 장례를 치르기 위해선 고인이 무연고사망자로 확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연관계의 사람은 배우자가 장례를 포기했을 때만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됩니다.

‘ㄱ’ 님과 ‘ㄴ’ 님의 장례는 안타까움과 의문의 연속이었습니다. 장례식장, 병원, 경찰이 무작정 가족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지침을 안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 인우보증을 받아 연고자로 지정받는데 왜 3개월이나 시간이 소요된다고 안내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습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가족대신장례’를 바라보며 이 제도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려는 그저 실체 없는 기우에 불과합니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가능할 수 있도록 이제는 사회의 오해와 편견이 사라져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의 그루잠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6월 무연고 사망자(기초생활수급자 38명 포함)

불상, 불상, 박동기, 김용환, 김홍석, 이익종, 조상훈, 최본수, 고창욱, 김희인, 유운식, 박정인, 배제우, 이영환, 이화자, 이상균, 고병태, 김달수, 전세국, 전선범, 윤주명, 김미진, 이숙자, 김태규, 한정민, 조병래, 한태동, 김순화, 정원옥, 조천호, 빈재근, 김장호, 정경은, 박래정, 차영자, 이철용, 최병규, 이상복, 배회용, 양동권, 서동문, 최만근, 김영남, 고민주, 변정(중국), 윤두석, 방성도, 루영청(중국), 최용권(중국), 김선희, 이준엽, 윤필선, 장상호, 이기종, 김선웅, 김동배, 백은식, 신충균, 강효창(중국), 박거복, 허광철(중국), 강임선, 김태구, 양인수

※6월에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고인 한 분에게 나눔과나눔이 자체예산으로 직접 장례지원 했습니다.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예순 네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