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내동댕이쳐진 보육원 청년들, 친구 죽음으로 희망 찾다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보육원 청년들, 친구 죽음으로 희망 찾다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1.07.21 07: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9일 과천시 법무부 청사 앞에서 한국청소년보호협회 노동조합 등이 주재한 기자회견 현장에 고(故) 백동민씨를 추모하는 제단이 설치됐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동민씨가 죽음을 맞이한 것에 협회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 뉴스1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그동안 이번 생 살아가느라 많이 힘들었지? 세상이 참 많이 차가웠지? 누구 하나 형 편에 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지?"

지난달 9일 과천시 법무부 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백문현씨(가명·21)는 먼저 세상을 떠난 고(故) 백동민씨(가명·24)를 추모하는 편지를 읽어 나갔다. 동민씨와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던 문현씨는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동민씨를 생전에 위로해 주지 못한 아쉬움을 추모의 편지에 담았다.

이날 기자회견은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상처를 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동민씨를 추모하고 그의 죽음의 책임을 묻기 위해 열렸다. 기자회견을 연 한국소년보호협회 노동조합은 협회가 동민씨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협회가 운영하는 화성청소년창업비전센터에서 수학했던 동민씨가 최근 비전센터의 교육제도 변경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후관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동민씨가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비전센터였지만 학과 담임제가 폐지되면서 사후관리 주체가 모호해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협회 측은 교육제도 변경으로 오히려 사후관리를 강화했다고 반박했다. 또 협회는 동민씨의 죽음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센터를 나간 지 5년째가 되는 동민씨가 사후관리의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책임 공방 속에도 동민씨의 죽음은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기자회견으로 이름 붙여진 행사였으나 이후 관련 보도를 내보낸 언론사는 두 곳뿐이었다. 언론의 무관심은 동민씨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닮았다.

가족이 없이 보육원에 맡겨져 자란 동민씨는 유년 시절 학대를 경험했다. 동민씨가 머물렀던 보육원의 학대사건은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사건 이후에도 피해자인 아동들에 대한 사후 치료·관리는 없었다. 동민씨와 같은 보육원 출신의 친구들은 학대 사건 이후 다른 시설로 이전 조치 된 것 이후에 별다른 치료나 관리를 받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동민씨와 같은 보육원 출신의 백상훈씨(가명·23)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학대에 대한 기억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학대도 있었고 욕먹는 것도 있고 어릴 때부터 밥을 굶기고 이러다 보니 트라우마로 남은 사람도 있다"라며 "다들 상처도 크다. 보육원에서 그렇게 가르쳐서 이런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상훈씨는 "그런 학대를 당하고 그러니까 동민이 형의 성격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라고 밝혔다. 실제 상훈씨는 동민씨의 죽음 이후 오랜만에 만난 보육원 친구들 중에서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고민했었다는 고백을 하는 이도 있었다고 전했다.

직접적인 학대에 더해 사회적 낙인과 차별적 시선도 이들이 늘 짊어져야 하는 짐이었다. 보육원은 이름도 없이 버려진 아이들에게 창립자의 성씨인 '백씨'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동일한 주소지 때문에 대부분 같은 학교에 가게 됐고 성씨는 아이들에게 '부모 없음'을 알리는 낙인의 역할을 했다.

'백씨들은 다 고아야'라는 이야기가 교내 아이들의 뒷이야기 속에서 돌았고 보육원 출신이 아닌 다른 백씨 아이들이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전부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됐다. 보육원 출신의 청년들은 제천 시내에서 '백씨'라고 밝히면 '문제아'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나마 성인이 되기 전까지 시설에서 살아갈 때는 최소한의 보호막이라도 있었다. 의·식·주의 문제는 큰 고민거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만 18세를 넘겨 '보호종료아동'이 되면 시설을 나오게 되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이때의 심정에 대해 보육원 출신 청년들은 아무런 방비 없이 사회에 던져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백민경씨(가명·24·여)는 "퇴소를 하고 나가면 디딤씨앗통장에 몇백만원 돈을 주는 데 그게 끝이었다"며 "저는 대학에 진학을 했는데 등록금을 내고 집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민경씨는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까. 우리가 왜 고아가 됐을까 생각을 많이 한다, 부모도 원망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벌이에 나섰던 백세봄씨(가명·24·여)는 자립한 이후 휴대폰 가개통 사기로 돈을 잃고 빚도 지게 되자 우울증을 겪었다. 친하던 친구들과도 자주 다투게 되자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세봄씨는 "사는 게 너무나 힘들어서 자살을 시도했었다"라며 "(친구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을 것 같다. 이틀 뒤에 다행히 깨어났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 5월18일 백동민씨의 장례를 마친 보육원 출신 청년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청년들은 앞으로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 연락하고 돕자는 약속을 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특히 보육원 출신 청년들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것에 낙담했다. 이들은 도움을 주는 곳을 알게 돼도 편하게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없어 망설여진다고 했다.

정부는 보호종료아동의 지원을 위해 만 15세가 되면 자립 계획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고 자립 이후에도 5년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자립지원전담요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동민씨의 친구들은 이 제도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문현씨의 경우에는 '자립지원전담요원'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그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고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오히려 문현씨는 먼저 세상을 저버린 동민씨에게 세상을 사는 조언을 들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세상에 어떻게 도움을 구할지 몰랐던 보육원 출신 청년들은 동민씨의 죽음과 이후로 서로 도우며 더이상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동민씨를 기억하는 20여명의 청년들은 보육원을 나온 뒤 처음으로 단체 SNS 대화방을 만들었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공유하고 혹시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힘을 모으기로 했다.

문현씨는 힘을 모으기로 마음을 모은 형, 누나, 친구들을 보며 동민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형이 아니었다면 평생 연락도 없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른 채 내 인생을 살아갔을 거야. 나 예전에는 내가 시설에 살고 있다는 거 자체가 너무 창피했어. 근데 요즘은 하나도 안 부끄럽더라. 형들, 누나들, 친구들, 동생들은 내 가족이라는 건 변함없어. 비록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우린 언제나 늘 함께였고, 언제나 우리는 함께였잖아."


*문현씨가 동민씨에게 남긴 편지 전문(이름은 가명으로 변경)
-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별이 된 동민이형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