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디딤돌] 아이가 한창 시도하고, 도전하고, 즐기는 순간에는 잠시 피드백을 멈춰 주세요. #3
[재활디딤돌] 아이가 한창 시도하고, 도전하고, 즐기는 순간에는 잠시 피드백을 멈춰 주세요. #3
  • 이우철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23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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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보다 동그라미를
장애보다 아이가
치료보다 성장을
재활디딤돌.

한살 터울의 형아가 있는 5살 아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양하지마비 뇌성마비아동입니다.

전문가들은 중등도의 양측성 강직형 뇌성마비, 대운동기능분류 3단계로 이야기하기도 하죠.

​아이는 원래 움직임에 대한 욕구도 높고, 놀고 싶은 마음이 아주아주 큰 아이이죠. 또래들처럼요. 그러나 특히 형아와의 놀이에서 따라가기 힘들어 속도 많이 상하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치료를 싫어합니다.
조산으로 태어나 아주 어릴때부터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아왔는데, 그때부터 싫어했다고 하네요. 지금도 많이 운다고 합니다.

​이런 친구들은 보통 보호자(대개는 엄마)가 같이 있으면 치료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눈치 백단이라, 어떤 상황인지, 자기가 비빌 수 있는 구석이 있는지 없는지 기가 막히게 알고 있고, 그래서 엄마가 옆에 있으면 집중도도 떨어지며, 어리광도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치료실에서 치료를 시작할 때 보호자에게 꼭 하는 말이  "치료시간에 같이 하시겠어요?" 혹은 "어머님, 치료시간에 같이 계시죠!" 입니다.
아이의 치료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며 정보를 드리기도, 얻기도 하는 시간이 참 중요하죠.

이용기간이 정해져 있는 본관 개별치료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은 치료로 기능을 향상시키도록 지원하는 것 외에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재활', 혹은 '치료'라는 부분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일입니다.

아이의 미래에 대해 하나하나씩 이야기하다 보면, 보호자와 가족의 모습이 그려지고, 중요시하는 가치와 철학들이 보이기도 하지요.

1년 동안 그렇게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종결할때쯤엔 많은 부분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서 이해하고, 또 가까운 미래에 대한 준비도 나름으로는 하고 계시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죠.

그래서 제가 보호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치료사들을 만나면 많이 물어보시고, 많이 들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많이 들은 정보들을 하나하나 모아 어머님 아버님 아이의 가족에 삶에 맞게 선택하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치료사들이 선택해주지 못하니까요." 입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이 아이들은 같이 계시자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로 상담을 길게 하는 편이죠.

​그런데 집에서 진행되는 재활프로그램은 어떨까요?
'집'이라는 공간은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만의 공간입니다. 그래서 힘든 운동을 시키는 물리치료를 할 경우 아이들이 더 힘들어하기도 하죠.

​우리는 재활이 살아가는 삶터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나 내용이 단순하게 '장소'만 바뀌는 거라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집이지만, 방 한곳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치료실에서 하는 힘든 운동을 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오히려 더 스트레스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이의 경우 재활코칭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어머님과 약속한 게 하나있죠.
"어머님, 되든 안되든 저희는 앞으로 주 1회 40분 동안은 무조건 같이 노는 겁니다." 
집 안에 있는 놀잇감으로 놀고, 또 틈틈히 교육하고, 또 놀고.. 그러면서 수업이 진행되죠.

"와~ 잘한다! 멋진데?"
주로 제가 하는 말이고요.

"허리펴~ 손가락펴~ 다리똑바로~ 아빠다리~"
주로 어머님이 하는 말입니다.

아이가 어떤 놀이가 재밌고, 그래서 막 시도하고 도전해보려고 하면 많은 경우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님이 던지는 말은 '자세를 똑바로 하라'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려고 시도하던 아이의 몸은 움츠려들고 소극적이 되어 버리곤 했죠. 어머님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치료사인 저와 함께 놀다 보니, 당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온다고 하시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이가 힘든 만큼, 어머님도 힘들죠. 지금까지 고된 치료과정에서 어느샌가 몸에 익어버린 습관인 것을요.

제가 드린 말씀은 "어머님, 아이가 한창 시도하고, 도전하고, 즐기는 순간에는 잠시 피드백을 멈춰 주세요. 순간마다 하는 피드백도 효과적일 수 있지만, 모든 동작을 해보고 난 후 주는 피드백이 더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그 후의 피드백은 긍정의 용어로 하면 훨씬 좋습니다.

OO아, 이런걸 하다니 정말 멋진데~? 그렇지만 아까 손으로 바닥을 짚을 때 손가락을 조금만 더 폈으면 공을 더 멀리 던질 수 있었을꺼야. 다음에는 그렇게 해볼까? 라는 식이면 아이도 긍정의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날따라 아이가 집중도도 짧고, 어리광이 심해 힘들었던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님도, 저도, 실습생선생님도, 무엇보다 아이도 헥헥 힘들었죠.

​서로 긍정의 지지를 해줄 수 있는 관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번 더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재밌게 놀기 vs 치료사로서 보다 효율적인 움직임과 기능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순간마다 어느쪽에 무게추를 올려야하는지 판단해야 함이 부담스럽기도 했네요.

​그렇지만 돌아오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이가 성장한다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우리 아들과 아빠인 내 삶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