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사회복지사가 주체'...사회가 인정해줘야 한다
'복지는 사회복지사가 주체'...사회가 인정해줘야 한다
  • 승근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18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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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문제를 가져와야 권력을 위임해줘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임을 잊지 말아야

2014년 3월, 우리들에게 편지가 도착한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송파 세모녀 사건은 대한민국의 사각지대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언론에서 매일같이 관련 기사를 송출하였으며 정부와 국회 역시도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문제의 원인과 대안을 마련했다.

당시 문제의 원인과 대안으로 꼽은 것은 두 가지이다.
문제는 ‘그들은 복지서비스가 이렇게 많은데 왜 신청을 안했는가?’와 ‘주민센터의 공무원들은 왜 몰랐는가?’였다. 문제의 원인을 제도가 아니라 사람에게 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매우 발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제도적 차원에서의 법령보완을 서둘러 이른바 ‘송파 세모녀 3법’이 제개정 됐다. ‘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이 개정되었고 ‘사회보장급여 수급권자의 발굴 지원법’이 제정되었지만, 제개정법에 의하더라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는 되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다.

또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인력 확충에 힘을 모았다.
당시 언론과 사회는 사회보장전달체계 중 공공 전달체계에만 관심을 두었다. 6천개가 넘는 사회서비스가 있으나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고, 일일이 사회적 약자가 정보를 확인하고 신청하는 ‘신청주의 복지’에서는 누군가가 그것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하 전담공무원)의 인력확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찾아가는 동주민센터가 탄력을 받았다.

‘송파 세모녀’ 사건, ‘우리가 주체다’ 사과했더라면

여기서 당시의 사회복지현장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송파 세모녀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사회복지 현장은 수동적 반응이었다. 한 마디로 움츠리고 있었다.

일례로 구글에서 ‘송파 세모녀’와 ‘사회복지사’는 연관검색어로 단 하나도 검색되지 않는다. 반면 앞서 열거한 ‘복지 3법’과 ‘전담공무원’만이 검색될 뿐이다.

당시 언론의 지탄은 전담공무원과 법령의 미비였다. 그리고 전담공무원 집단은 그 비판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사회는 ‘사각 지대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는 주체는 전담공무원’ 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탄을 받았지만 이 사건의 여파로 전담공무원들이 충원된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에게 주어진 기존의 정보권력과 함께 인력이 충원되면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사례관리가 민간에서 공공영역으로 이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례관리는 민간 사회복지현장의 영역이었다. 때문에 공공영역에서 사례관리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공공’이라는 말을 붙여서 사용했었다. 민간 사회복지현장에서도 사례관리는 민간의 영역이라 자부했기 때문에 공공 영역에서 사례관리라는 말을 사용하면 눈총을 주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의 정책 디자인을 보면 ‘찾동 사례관리’라고 되어 있고(공공이라는 단어가 생략됨), 민간 사회복지현장은 ‘자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실제로 민간은 정보권에 접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력 충원도 미비해 공공의 사례관리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 결정적인 시작은 바로 송파 세모녀 사건이다.

만약 그 당시 민간 사회복지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이 ‘죄송합니다. 사각 지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복지사인 우리들이 주체입니다. 우리의 잘못입니다’고 나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물론 엄청난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비록 시민사회는 사회복지사들을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주체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주체입니다’ 하고 나섰다면 시민사회의 인식은 달라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비록 비난을 받았을 지언정 ‘우리가 주체이지만 인력이 부족합니다. 잘 할 수 있도록 사람을 더 주십시오’ 라고 했으면 인력을 줬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주체이지만 정보권이 없습니다. 정보권을 주십시오’라고 했으면 정보권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간 사회복지 현장, 그리고 사회복지사들은 송파 세모녀 사건을 안타까워는 했지만 기피하고 회피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사회복지사, 주체로 설 수 있을까

2019년 6월 14일, 사회복지사 5천여 명이 모인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오승환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은 사회복지복지정책대회 대회사를 이렇게 시작한다. “새로운 복지국가를 만드는데, 우리 사회복지사들이 ‘주체’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2019 사회복지정책대회의 4대 의제는 OECD국가 평균 사회복지예산확보, 사회복지종사자 근로환경 개선, 사회복지종사자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수준 급여 현실화, 사회복지사업 민관협치 강화이다. 중요한 것은 4대 의제 이전에 밝힌 오승환 회장의 전제 조건이다.

즉 “우리가 ‘주체’다.”
오승환 회장의 선언은 이렇게 풀이된다.
“복지국가를 만다는 것은 우리가 ‘주체’이니, 이전에도 ‘주체’였고 앞으로도 ‘주체’역할을 할 것이니, 걱정 말고 사회복지예산을 편성하고, 걱정 없이 일하도록 ‘주체’들의 환경과 처우를 개선하고, 관은 지배하려 하지 말고 ‘주체’들과 협치하라.”는 당당한 요구인 것이다.

문제를 가져오는 집단에게 시민사회는 권력을 위임한다. 그리고 그 권력이 집단을 생존하게 한다. 아무리 처우개선을 요구해도 사회가 어려워하고 해결하였으면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시민사회는 권력을 주지 않는다.

어려운 문제를 가져오면 가져올수록, 그것을 해결해 낼수록 시민사회는 그 집단에게 권력을 주게 되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처우가 개선되는 것이다.

의사, 간호사, 변호사, 노무사 등 모든 집단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한다. 민간 사회복지사 집단도 역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회피와 기피의 ‘객체’가 아닌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 사회문제를 우리의 것으로 가져와 당당하게 해결해 내어야 한다.

특히 ’복지 사각지대‘, ’소외와 자살‘, ’격차에 의한 갈등‘은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 우리의 영역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운동'은 2012년부터 시작되어 복지국가 촛불운동이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광화문 파이낸스 건물 앞에서 열린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운동, 어린이 병원비 무상의료 5152 운동은 사회복지사들이 사회문제를 우리의 것으로 가져온 좋은 예이다. 가난한 노인들의 빈곤과 기초연금의 위헌성, 가난한 아이들이 병원비를 위해 가난을 증명하여야 하는 문제에 대해 ‘주체’가 되어 해결하고자 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주체’이기에 당당하다.

우리가 “주체”이다. 그래서 당당한 것이다.

부디 많은 민간 사회복지사들이 ‘우리가 주체’임을 고백하고 사회의 문제를 우리의 것으로 가져오고 그것을 해결해 내기를 바란다. 스스로 외치는 전문성이 아닌 사회가 인정하는 전문가 집단이 되기를 바란다.

처우개선은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복지국가도 그렇게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