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에 대해 기억해야 할 3가지
시청각장애인에 대해 기억해야 할 3가지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2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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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애인복지 분야에서 주목 되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 이는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나 관련 분야의 종사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시청각장애인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작은 책자를 출간했으나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그래서 책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전자책이었다. 그러다 60페이지가 넘는 책자보다는 한 편의 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개의 경우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때면 용어의 정의에서부터 통계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기억했으면 하는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시청각장애인을 이해하는 관점에 관하여, 둘째는 같은 장애인임에도 다른 장애처럼 보이는 시청각장애인의 다양성에 대하여, 끝으로 시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먼저,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청각장애인을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중복으로 가진 사람으로 생각한다. 신체적·정신적으로 한 가지 기능이 손상된 상태를 장애로 보는 관점에서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감각이 손상되었으므로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중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손상은 말 그대로 손상이고, 그로 인해 생활 속에서 제약을 받는 상태를 장애라 할 때 시청각장애는 시각 및 청각 기능이 동시에 손상되었을 때만 경험하게 되는 상태이므로 시각장애와 청각장애의 중복이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장애이다.

이는 마치 보라색과도 같다. 보라는 빨강과 파랑이 혼합하여 만들어진 색이지만, 보라를 가리켜 ‘빨강파랑혼합색’이라 부르진 않는다. 색이 만들어지는 원리야 어찌 되었든 우리 눈에 보라는 분명 빨강, 파랑과 다른 빛깔을 가진 색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청각장애인은 시각 손상과 청각 손상이 중복된 사람이지만, 두 감각 기능의 손상으로 시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과 다른 생활 속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편 시청각장애인은 같은 유형의 장애인임에도 서로 다른 장애인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로 다른 두 감각의 손상 정도에 따라 겉으로 보이는 특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시청각장애인을 감각의 손상 정도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손상 정도가 가장 심한 유형으로 실생활에서 시각과 청각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농맹인이다. 전혀 보지 못하고 전혀 듣지 못하는 이 유형의 시청각장애인에게 세상을 접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방법은 촉각이다. 따라서 농맹인은 점화, 촉수어, 손바닥필담과 같이 서로 손이 닿은 상태에서 소통하는 촉각 언어를 사용한다.

다음으로 청각은 완전히 손상되었지만 시각 기능은 일부를 사용할 수 있는 농저시력인이다. 이 유형의 상당수는 수어를 근거리에서 보는 근접수어나 상대의 손 위치는 손으로 만지면서 눈으로 그 동작을 읽는 추적수어를 사용한다. 반대로 시각은 완전히 손상되었지만 청각은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맹난청인은 근접한 거리에서 음성으로 소통하되 촉각 언어로 보완하는 경우가 많다.

끝으로 시청각장애인 중 가장 경증에 해당되는 저시력난청인은 시각 및 청각 기능 모두 잔존하므로 시각, 청각, 촉각을 사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한다.

그런데 같은 유형의 시청각장애인이라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정도에 차이가 있어 이러한 분류가 큰 이미를 갖진 않는다. 그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또한 시청각장애인은 장애의 발생 시기와 순서, 성장배경 등에 따라 소통 방식부터 생활환경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편의상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기보다는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해야 하는 집단이다.

마지막으로 시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건 고장 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고장 난 텔레비전의 화면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하며 잡음 섞인 소리가 흘러나와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 그런 상태로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짜증스럽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다. 시청각장애인은 늘상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이다. 물론 농맹인은 아예 전원이 꺼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심정일 것이다.

조원석 대표 / 한국시청각장애인협회
조원석 대표
(한국시청각장애인협회)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동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시청각장애인은 늘 이런 상태에 있음을 기억하고, 특히 시청각장애인의 가족이나 지인이라면 이러한 상태에 있는 시청각장애인이 고장 난 텔레비전 앞에 마냥 방치되어 있지 않도록 손길을 뻗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 손길이 시청각장애인에게는 일시적으로나마 텔레비전에 전원이 완전히 들어오는 순간이다.

매우 간략하게 썼지만 이 글로나마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면 더 없이 기쁘겠다. 우리 사회가 시청각장애인은 보라색이며, 같아도 같지 않은 장애 유형이며, 늘상 고장 난 텔레비전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나라 시청각장애인의 삶에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헬렌켈러는 100여년 전 미국에서 살았던 허구의 인물처럼 느껴지는 막연한 역사인물이 아니라 우리 주변, 우리 중에 있음을 기억해준다면 그 또한 한국 시청각장애인의 삶에 분명 밝은 빛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