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를 전하러 왔습니다
부고를 전하러 왔습니다
  • 나눔과나눔 기자
  • 승인 2021.08.1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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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7월 장례이야기
(활동가가 직접 전달한 부고가 꽂혀 있는 문)

 

부고를 전하러 왔습니다

부고를 알리는 것은 장례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 입니다. 누구에게 알릴 것인지, 어떤 내용을 적을 것인지, 어떻게 알릴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혹시 모를 오탈자와 비문을 찾아 수정을 거듭하게 됩니다. 부고에서 실수가 나오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작성이 완료 되었다면 알리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이동통신망과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 덕분에 전송, 게시 버튼을 누르는 것 만으로 순식간에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부고를 알릴 수 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부고도 그렇게 문자나 언론의 부고란을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ㄱ’ 님의 부고를 알리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꼭 장례에 참여 해서 둘째 형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겠다고 강력하게 요청한 동생이 있었는데, 이 분에겐 전화기도, 핸드폰도, 그 흔한 메신저, SNS 계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ㄱ’ 님의 형에게 동생의 연락처를 여쭤봤지만 연락이 끊기고 단절된 지 오래라 본인도 공중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약속을 잡고 만났다며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구청의 주무관은 나눔과나눔의 활동가에게 반드시 부고를 알려 장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며 유일하게 알고 있는 정보인 주소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우체국을 통해 빠른 등기우편을 보낼까 생각해 보았지만 바로 다음날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직원의 말에 활동가는 부고를 봉투에 챙겨 직접 찾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ㄱ’ 님의 동생은 서울 시내에 거주하고 있었고 지하철 역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의 한적한 골목에서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소에는 호수가 적혀있지 않았기에 대문의 초인종을 눌렀고, 활동가는 ‘ㄱ’ 님의 동생 대신 집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형제가 있대요? 나는 한국인이 아닌줄 알았어요. 생긴 것도, 말하는 것도 다 외국인 같아서. 아까 바리바리 짐 싸들고 나갔는데 노상에서 장사하는 것 같아요. 문 열어줄 테니까 저기 문 앞에 꽂아 두세요.”

집주인이 데려간 곳은 다세대 주택 건물 옆의 구석진 자리에 놓인 불법 증축된 것으로 보이는 작은 쪽방이었습니다. 반지하 방인가 싶어 옆으로 둘러보아도 계단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평 내지 두 평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공간이 ‘ㄱ’ 님의 동생의 집이었습니다. 활동가는 그 집의 문에 부고를 끼워 넣고 집주인에게 꼭 이야기를 전해달라 다시 한 번 당부했습니다.

 

(‘ㄱ’ 님의 지방을 소지하는 의전업체 관계자)

 

장례 당일이 되자 ‘ㄱ’ 님의 형이 일찍부터 빈소에 도착해 고인예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동생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운구 시간은 점점 가까워졌고, 어쩔 수 없이 고인예식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인예식을 모두 마치고 ‘ㄱ’ 님의 형은 형제를 둘러싼 가족사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둘째(‘ㄱ’ 님)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빔 추락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어요. 몸이 망가지니까 그 다음은 정신이 망가지더라고요. 조울증, 피해망상 뭐 그런 게 생겼고 결국은 살고 있던 아파트도 경매로 날아가버렸어요. 그 이후로는 모텔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저도 건설 일을 하는데 지금은 일 하다 다친 허리랑 코로나 때문에 일을 못해서 수입이 없습니다. 지금은 여관에서 살고 있고요. 저는 둘째가 죽은 것 보다 막내를 만난 게 가장 충격이었어요. 둘째 장례 때문에 공중전화로 저한테 연락을 해서 만났는데,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처럼 남루한 행색에 상태도 너무 안 좋아 보였어요. 상태를 보니 둘째 다음은 동생일 것 같고, 저도 오래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수원시에 사는데 거기도 이렇게 무연고자 장례를 치러주는지 모르겠네요. 우리 삼형제는 다 무연고로 세상을 떠나게 될 겁니다.”

‘ㄱ’ 님의 동생은 장례를 모두 마친 후에야 나타났습니다. 뒤늦게 한 자리에 모인 형제는 ‘ㄱ’ 님의 유골을 유택동산에 뿌렸습니다.

 

(서울시 ‘그리다’ 공영장례 빈소)

 

아버지가 서울 시민이 아니어서 술도  올리는 건가요?

장례에 가기 위해 이동중인 활동가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무연고 사망자로 오늘 승화원에서 화장 될 예정인데 어디로 이동하면 되냐는 연락이었습니다. 그 날 공영장례로 장례가 치러질 고인 두 분 모두 가족이 참여 예정이었기에 정확한 안내를 위해 활동가는 고인의 존함을 여쭤보았습니다. 하지만 들려온 이름은 너무나도 생소했습니다.

“아버지 이름은 ‘ㄴ’ 이고요. 오늘 12시로 화장이 예약되어 있대요.”

그 날 장례가 치러질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분들은 모두 11시에 화장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데이터 베이스에 검색해 보아도 ‘ㄴ’ 이라는 이름으로는 공문을 받은 바가 없었습니다. 활동가는 당황스러웠지만 혹시나 싶어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가 맞는지 물었습니다.

“아니요. 아버지는 파주시 분이세요. 검색해 보니까 서울시립승화원에 공영장례 빈소가 있다는데…. 거기서 무연고자 분들 장례도 치러진다고 봤고요. 아닌가요?”

서울시립승화원은 고양시민과 파주시민들도 이용하는 화장장이고 거기에 마련된 공영장례빈소니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오해였습니다. 하지만 ‘그리다 공영장례빈소’는 서울시의 공영장례를 위한 공간이고 나눔과나눔은 현재 서울시의 공영장례를 지원하고 있기에 파주시를 비롯한 타 시군구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는 상담으로만 지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활동가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내담자는 울먹이며 물었습니다.

“공영장례빈소가 있다고 하길래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을 사왔어요. 서울 시민이 아니라서 저는 아버지에게 술 한 잔 올리지도 못하는 건가요? 운구하시는 기사님은 운구만 끝나면 바로 가실 거래요. 저는 화장장이 처음이라 어디서 기다리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도 몰라요. 지금이라도 장례를 신청하면 안될까요?”

‘ㄴ’ 님의 화장은 12시고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분들은 11시였기에 시간이 겹치지 않았습니다. 활동가는 공영장례빈소에서 고인예식을 진행하자고 이야기 한 뒤 현장의 실무자들에게 해당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다행히 모두가 그렇게 하자고 동의 했고, 의전업체는 앞선 고인예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제물상을 다시 차려주겠다고 답했습니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시민들의 선의로 장례는 준비되었습니다.

 

(산골하기 전 ‘ㄴ’ 님에게 육포와 소주, 꽃다발을 올린 자녀들)

 

활동가가 집례를 하고 자원봉사자가 사회를 보며 장례가 진행되었습니다. 운구부터 유택동산에 유골을 뿌리는 순간까지 함께 동행했고 장례는 무사히 마쳐졌습니다. 내담자는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식사와 술을 올리며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실무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선의로 다행히 ‘ㄴ’ 님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지만 마냥 기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동시에 많은 고민과 과제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경기도에서는 도 차원의 공영장례 조례를 만들어 시행한다며 많은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했고, 많은 지자체는 여전히 무빈소 직장으로 시신을 ‘처리’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선의가 아니었다면 ‘ㄴ’ 님은 애도를 위한 시간과 공간 없이 안치실에서 바로 화장되어 ‘처리’ 되었을 것 입니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야만 가능하지 않도록, 공영장례의 전국적인 제도화가 시급합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의 그루잠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7월 무연고 사망자(기초생활수급자 42명 포함)

최한조, 김문교, 이금용, 김범준, 조문구, 김종순, 노정관, 김이도, 한상균, 전용국, 김공석, 김동욱, 박정국, 리송봉(중국), 송정심, 이기석, 김만호, 송인모, 정원철, 홍범표, 이명근, 이기범, 김종철, 김차진, 박양수, 김진호, 김미라, 이원욱, 정문수, 정호정, 김은주, 김용태, 장금용, 황병수, 최용웅, 박춘희, 김장진, 정영남, 방정희, 양재일, 김송호(중국), 이해옥(중국), 장문철, 용홍중, 이은형, 양정주, 이금숙, 박영국, 윤영태, 김세웅(중국), 정희석, 김철호, 사경일, 최병순, 송영식, 이광봉, 이용기, 김광모, 홍순하, 이창용, 노덕선, 김동연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 했던 예순 두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