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에 탈시설의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에 탈시설의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1.08.2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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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주교회 사회복지위원회가 주최한 보건복지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분석과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부쳐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에 관한 일반논평 5호(2017)’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역사적으로 장애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개인의 선택과 통제의 권리를 부정당해 왔다. 많은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한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지원 제도는 이용할 수 없거나 특정 거주 조건에 묶여 있고, 지역사회 인프라는 보편적으로 설계되지 않는다. 자원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의 개발이 아니라 시설에 투자된다. 이는 유기, 가족에의 의존, 시설화, 고립, 분리로 이어졌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이번 토론회에서 주장한 주된 내용은 탈시설에 대한 이해와 성찰, ‘당사자 이익’에 우선하지 않고, 거주시설 전달체계의 존립에만 우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거주시설 전달체계 이익을 최우선에 둔 천주교 사회복지위원회의 주장은 유엔에서 깊이 반성하고 있는 방향, 즉, 장애인정책이 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이어짐으로써, 장애인이 유기, 가족에의 의존, 시설화, 고립, 분리되어 온 역사를 다시금 반복하게 할 우려가 큽니다.

‘탈시설’이란, 장애인의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을 목표로, 시설 폐쇄와 시설화 요인을 제거하고, 자신의 삶에 관한 실질적인 선택과 통제가 가능하도록 모든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이는 ‘선택의 권리’가 아닌,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권리임을 국제인권기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탈시설의 개념은 명료하며 혼재적이지 않습니다. 단지 거주시설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의도에 따라 혼재적인 것으로 왜곡되고 선동될 따름입니다. 

즉, 최중증·발달장애인의 하루 24시간 지역사회 지원체계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며, 거주시설 존립의 제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 당시 오웅진 신부가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서 지난 38년 동안을 살아왔습니다. 꽃동네는 세계로, 세계는 꽃동네로! (...)"라고 발언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활동은 자선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선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진 않습니다. (...) 그리하여 모든 이가 저마다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신의 가정을 보살피는 일의 품위에서 나오는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은 교회의 역할이 "굶어죽는 사람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굶어죽는 사람이 없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시설 수용 중심의 국가정책을 반성하고, 국제인권기준을 준수하여 장애인의 권리보장체계를 재정비해야 할 시기입니다. 
시혜적 복지에서 권리적 복지로 전환되어야 하며, 그 중심에 탈시설정책이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또한 이러한 역사 흐름에 함께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직도 많은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일부 성직자들은 이와 같은 의심을 이제는 거두십시오. 그리고 믿으십시오.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마르코복음 11:23)”

2021. 8. 25.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본 성명서/논평은 웰페어이슈의 편집 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성명서/논평을 작성한 정보 제공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