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팡테옹과 시각장애인의 가이드러너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팡테옹과 시각장애인의 가이드러너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1.10.0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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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팡테옹의 2015년 전경. 새로 안장된 레지스탕스 4인의 초상화를 걸어놓았다. 조성관 작가 제공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제법 차다. 벌써 지난여름의 열기가 아득하기만 하다. 2020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없었다면 지난여름은 얼마나 끔찍했을 것인가. 올림픽에 환호하다 보니 칠팔월의 폭염을 조금은 망각하지 않았나 싶다.

패럴림픽은 모든 종목의 출전 선수들이 인간승리의 스토리텔러다. 2020 패럴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의 하나는 여자 200m 달리기에서 벌어졌다. 주인공은 여자 육상 200m에서 메달을 딴 선수가 아니라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아프리카 섬나라 카포베르데의 페레이라 세메도.

시각장애인 육상선수는 가이드러너(guide runner)가 필요하다. 옆에서 함께 달려주는 사람. 시각장애인 육상선수와 가이드러너 사이에는 짧은 플라스틱 줄이 서로의 손가락에 연결되어 있다.

'가이드러너가 없는 시각장애 육상선수?' 상상할 수도 없다. 두 눈을 뜨고 달려도 트랙 한가운데를 똑바로 달리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양팔을 앞뒤로 흔드는 것부터 들숨과 날숨의 간격까지 가이드러너는 선수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야만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 땀과 눈물을 흘려야만 이게 가능할까.

경기가 끝났을 때다. 가이드러너가 세메도를 트랙에 세워놓은 채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리고 뭔가를 가지고 왔다. 가이드러너는 무릎을 꿇고 세메도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청혼을 했다.

"당신 옆에서 평생을 가이드러너가 되어주고 싶다. 나와 결혼해달라."

세메도는 얼굴을 감싸안으면서 그 자리에서 "예스"라고 답했다.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소름이 돋았다. 사랑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세메도와 가이드러너의 프로퍼즈 모습. 유튜브 채널 'Paralympic Games' 캡처

 

 



시각장애인의 가이드러너

세메도는 언젠가 육상을 그만두게 된다. 그다음부터는 시각장애인의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순간 남편이 된 가이드러너가 그림자처럼 페레이라를 안전하게 인도할 것이다.

내가 TV광고에서 유심히 보는 것 중 하나가 LG U+에서 개발한 AI음성 검색 시스템이다. 시각장애인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 조현영씨 이야기가 나온다. 30초짜리 짧은 광고를 보면서 시각장애인의 육아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CF를 접하기 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였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나 공공시설물, 상가건물에는 대부분 점자(點字)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손끝으로 여러 가지 정보를 얻는다. 점자를 읽으려면 점자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점자 교육을 받지 않으면 누구도 도돌도돌한 감촉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한다.

나는 오래전 성북구의 한 장애인복지기관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점자 교육책을 보고 만져보았다. 점자는 두꺼운 종이에 마치 함석에 송곳으로 돌기를 만든 것처럼 점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런 교육기관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아야만 점자책과 점자 안내판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시각 정보에 의지한다. 그다음이 청각 정보와 후각 정보다. 책, 신문, 스마트폰, 인터넷을 보는 것은 모두 시각을 통한 정보 습득 행위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정보 습득 행위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LG U+에서 개발한 AI 음성 검색 시스템은 장애의 벽을 허무는 첨단 테크놀로지다.

정보 습득과 지식의 저장은 읽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눈으로 읽어낸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여과 과정을 거쳐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게 지식이다. 지금까지 시각장애인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유일한 길은 점자책을 통해서였다.

 

 

 

 

 

 

 

팡테옹 1층 로비 모습. 조성관 작가 제공

 

 



왜 팡테옹 안장이 뉴스가 될까?

모든 국가는 국립묘지가 있다. 여러 분야의 국가 영웅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국립묘지 안장은 망자와 유족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지구상에서 국립묘지 안장 결정이 뉴스가 되는 나라는 아마도 프랑스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신문 피플 면에서 이따금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에 누가 들어간다는 뉴스를 접한다.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Phanteon). 팡테옹은 라틴어로 만신전(萬神殿)이라는 뜻.

프랑스는 소프트파워 강국이다. 영국과 1위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팡테옹 안장 결정이 세계적 뉴스로 대접받는 사실에서 우리는 소프트파워 강국의 프랑스의 위상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최근 팡테옹에 아주 특별한 이력의 인물이 안장되었다. 1930년대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재즈 가수로 활동하던 조제핀 베이커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재즈가 몽마르트르에서 절정을 구가하던 시대를 다뤘다. 바로 조제핀 베이커가 활동하던 1920~1930년대, 이른바 '벨 에포크'라 불리던 시대다.

조제핀 베이커는 1940년 파리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레지스탕스가 되어 독일군과 싸웠다. 조제핀 베이커는 팡테옹에 안장되는 최초의 흑인 여성이다. 팡테옹 안장이 글로벌 뉴스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안장 심의위원회가 그 권위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어떤 권력도 개입할 수 없는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가 역사와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결과다.

나는 2015년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을 취재하면서 팡테옹에서 여러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포석이 깔린 팡테옹 마당에 서면 삼각형 지붕 아래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관람객을 맞는다.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팡테옹에는 프랑스 정부가 인정하는 국가 영웅들이 잠들어 있다. 작가, 시인, 예술가, 과학자, 기업가, 사상가, 정치가, 군인, 레지스탕스 등이 팡테옹의 주인공들이다. 알만한 이름을 특정하면 장 자크 루소, 볼테르, 알렉상드르 뒤마,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마리 퀴리 등이다.

나는 그때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를 만나려 팡테옹을 찾았다. 가는 길에 볼테르와 루소의 묘소에 들러 묵례를 하는 예를 갖췄다. 다행인 것은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가 알렉상드르 뒤마와 함께 한 방에서 영면한다는 사실이다. 이 방은 팡테옹에서 찾는 이가 가장 많은 곳. 세 사람은 두런거리며 영원의 시간을 사는 것 같았다.

 

 

 

 

 

 

 

루이 브라유 흉상. 조성관 작가 제공

 

 


그런데 이 방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방에도 몇 사람이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누굴까? 어떤 인물이길래.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 1809~1852). 시각장애인용 알파벳을 개발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보인다. 아, 이 사람이 점자를 만든 사람이구나.

루이 브라유는 파리에서 30㎞ 정도 떨어진 시골마을 수쁘레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 마구(馬具) 제작소를 운영했다. 루이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이 마구제작소는 어린 아들의 놀이터였다. 세 살 때였다. 루이가 마구제작소에서 놀다가 도구를 잘못 만져 한쪽 눈에 찔리는 사고를 당한다. 루이는 피를 흘렸고, 부모는 마차를 타고 파리의 의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파리의 의사도 실명을 막지 못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소년이 다른 쪽 눈이 감염된 상태로 몇 주 동안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다섯 살 때 다른 눈마저 시력을 잃고 만다. 장애가 뭔지를 모르는 어린 루이는 부모에게 묻곤 했다.

"왜 항상 어둡나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팡이를 짚고 동네를 걷고 시골길을 다니는 법을 가르쳤다. 루이는 커가면서 서서히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게 된다. 19세기에는 사람이 눈이 멀면 직업 교육을 받지 못해 대부분 거지로 전락했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그랬다.

브라유의 타고난 밝은 성격과 총명함이 교사와 사제들을 감동했다. 열 살 때 인생의 전기가 찾아온다. 브라유는 사제들의 추천을 받아 파리왕립시각장애인학교에 입학한다.

이곳은 발렝텡 아우이가 세운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학교다. 아우이는 시각장애인이 아니었지만 일생을 맹인 교육을 위해 헌신한 인물. 이 학교에서 학생들은 아우이가 만든 '아우이 문자'로 읽는 법을 배웠다. 알파벳을 볼록하게 만든 형태였다. 하지만 브라유는 '아우이 문자'가 깊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낙심한다. 이때 브라유는 12개의 점으로 소리를 표기한 군대에서 사용하는 '야간 문자'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점 문자의 장점을 깨달은 브라유는 '야간 문자'의 결점을 보완해 읽기 쉽고 쓰기가 가능한 점자를 만들기로 한다. 어둠 속에서 홀로 연구와 연구를 거듭해 여섯 개의 점으로 글자, 숫자, 기호, 악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게 1824년이다.

브라유는 자신이 개발한 점자를 학교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한다. 이 점자가 공인을 받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833년 브라유는 시각장애인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에게 역사, 산수, 기하학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나머지 시간을 점자 시스템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 쏟아부었다.

브라유는 1852년 마흔세 살에 폐결핵으로 눈을 감았다. 2년 뒤 프랑스 정부는 그의 점자를 공식 채택하기로 결정한다. '브라유 점자'가 30년 만에 세상 빛을 보았다. 이어 1882년 유럽회의는 '브라유 점자'를 통일 점자로 채택하기에 이른다.

 

 

 

 

 

 

 

100주기인 1952년 안장된 루이 브라유 묘. 조성관 작가 제공

 

 


이후 '브라유 점자'는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 점자 개발의 기본 점자가 된다. 그로부터 69년 뒤인 1923년 조선의 교육자 박두성은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점자연구회를 만든다. 그리고 1925년 한글 점자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1952년 브라유 사망 100주기에 맞춰 고향에 묻혀 있던 유해가 팡테옹에 봉안되었다.

팡테옹에서 브라유를 만난 것은 우연이다. 그런데 이 우연한 경험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언젠가 브라유 이야기를 한번 써야지···. 하지만 좀처럼 적절한 계기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20패럴림픽에서 세메도와 가이드러너의 감동 스토리를 접하자 팡테옹의 루이 브라유가 내 눈앞에 가상현실로 나타났다.

'브라유 점자'는 이 세상 모든 시각장애인의 가이드러너다. 1992년세계천문학회는 소행성9969에 '9969브라유'라는 이름을 붙였다. 브라유는 세상을 비추는 길잡이별로 밤하늘에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