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데자뷰(deja vu)
어떤 데자뷰(deja vu)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1.11.1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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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최근의 정치일정을 보면서, 느닷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능력없는 인물과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부정한 커넥션이 생각났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함량미달의 인물이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있고, 그를 이용해서 온 나라를 나락의 구렁텅이에 빠트린 최순실이라는 여자가 있었다는 기이한 구도가 난데없이 떠오른 스토리의 핵심이다. 천문학적인 국민세금의 유용, 대책 없는 개성공단의 폐쇄, 무기도입의 과정에서 갑작스런 기종 변경, 굴욕적인 대일본 외교, 대우조선이나 한진해운 등의 파산에서 보는 것과 같은 국민경제의 파탄, 정치윤리의 타락과 실종 등이 이들의 손에서 이루어진 일로 나중에 확인되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가능성은 이전에도 다양하게 거론되었다. 권력내부의 소식에 밝은 일부 정치인들마저 만류도 하고, 누차 경고도 했었다. 그 때마다 박 대통령은 강력하게 부인했다. 국민들은 설마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부인하는데 사실이 아니겠지라고 믿었다. 그런데 취임식 전에 벌어진 무속적 퍼포먼스, 영혼 없는 연설, 정윤회의 국정개입, 세월호 사건 당시의 미스테리한 행적, 유가족에 대한 냉정한 눈초리 등 열거하기조차 민망한 일련의 태도를 모아보면 대통령의 눈에서 국민은 사라지고 최순실만 어른거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세 수석들과 문고리 3인방의 전횡에는 ‘찌라시 같은 이야기’라고 딱 잡아 땠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시의 여당은 드러난 사실마저 감추기에 바빴고, 친여성향의 보수언론들은 국민을 속이기에 급급했다. 종교인들마저 특정 신앙을 가지지 않은 대통령을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논리로 칭송하기에 분주했다. 개신교의 보수적 목사들은 예수님이 재림한 것 같다는 말로 혹세무민에 앞장섰고, 다른 종교의 지도자급 인사들도 얼토당토 않은 찬가를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징조를 외면하고 시대를 분간하지 못한 것이다. 성경에 보면, ‘구름과 바람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나기가 온다거나 심히 더울 것을 알면서 왜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란다. 모두 넋 빠진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결정적인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천지의 기상은 분간해내면서도 대통령은 정신 나간 사람을 뽑았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얼도 빠지고 간도 빠지고 쓸개도 내다버린 정치인들, 박근혜 찬가를 불러대던 무당보다도 못한 종교인들, 쓰레기 같은 언론인들, 시류에 올라타서 한 건 하려던 문화예술인들, 곡학아세를 마다하지 않은 교수들이 합세해서 온 나라를 속속들이 말아먹었다.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집단적으로 시대를 광기의 수렁으로 끌고 갔다. 안타까운 것은, 그 날의 분위기와 비슷한 일들이 2021년 11월에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양상이 재판(再版)보다도 훨씬 고약한 수준이어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