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언트의 고유한 색을 살리는 개성있는 현장으로 만들려면...
클라이언트의 고유한 색을 살리는 개성있는 현장으로 만들려면...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16 1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에스텍의 '개별화 원칙'으로 살펴보는 사회복지 실천 이야기

몇 년 전, 개별화에 대해 팀원들과 공부하다가 ‘우리는 지금 개별화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가?’ 자문하며 사례관리로 만나고 있는 독거노인분들 중 무작위로 열 분의 개입 계획서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놀랍게도 열 분의 개입 목표에는 공통적인 목표 2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첫째, 정서적 지지

둘째, 푸드뱅크 연계를 통한 경제적 지원

어르신들은 성별, 나이, 성격, 경제적 상황, 사회적 관계 등 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의 개입 방법은 모두 같았습니다.

나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서적 지지를 원한다고 욕구를 표현한 분들이 아니셨지만 이미 우리 머릿속에 독거노인은 외로울 거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고 이는 독거노인 카테고리에 편입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개입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푸드뱅크 연계 역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 중 (당시 기관 입장에서) 가장 수월하게 연계할 수 있는 협력 자원이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 머릿속에 입력된 그간의 ‘경험’으로, 우리 기관이 가장 쉽게 ‘줄 수’ 있는 그것에 집중했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개입은 목표를 달성하고, 흔히 말하는 성공사례라 불리며 종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다시 우리를 찾아오는 어르신을 만나게 됩니다. 클라이언트의 진정한 욕구에 주목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독거노인은 개별적인 욕구가 사라진 채, 고유의 색을 모두 섞어버린 회색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클라이언트를 모두 회색으로 만들고 있진 않는지...출처 : 픽사베이
우리는 클라이언트를 모두 회색으로 만들고 있진 않는지. 출처 pixabay

비에스텍은 개별화를 ‘각 개인은 독특한 차이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클라이언트가 겪는 어려움과 고통이 다른 사람과 비슷해 보여도 이들에 대한 조사, 사정, 개입은 모두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정의합니다. 사람은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그가 처한 상황에서의 욕구도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이렇게 개별화의 원칙이 잘 지켜진다면 최소한 우리 마음대로 클라이언트를 평가하거나 같은 문제로 또다시 우리를 찾게 만드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현장에 개별화 원칙이 살아나도록 할 수 있을까요?     

먼저 내 안에 선입견과 편견이 자리하고 있는지 수시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영화 ‘나 홀로 집에’ 주인공 케빈은 도둑들과 용감히 싸우는 친구이지만 웬일인지 옆집 할아버지와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도망가느라 바쁩니다. 할아버지는 무섭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라고 형이 늘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케빈은 단 한 번도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거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만 이미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영화 후반부에 이러한 오해가 풀리며 할아버지와 친구가 됩니다. 선입견이 편견으로 이어지면 관계가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회복지사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직종입니다.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장애인 가정 등 그동안 만나온 클라이언트를 우리는 카테고리로 쉽게 묶어 버립니다. 이전의 경험과 개입 방법을 고스란히 현재 만나는 같은 카테고리 안의 클라이언트에게 적용합니다.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선입견은 인지적 차원을 넘어 정서적 차원에서 부정적 마음을 품게 되는 편견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당연히 획일적인 개입이 되고 맙니다. 의식적으로 내 마음속 자리 잡은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시로 살펴야 합니다.     

두 번째,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욕구를 구별하여 파악하도록 노력합니다. 

두 딸을 키우는 정신장애를 가진 엄마가 있었습니다. 집안에 쓰레기가 가득하고 정리되지 않아 주거개선이 필요했습니다. 엄마는 엄두가 나지 않는 쓰레기를 치워달라고 했습니다(요구). 그러나 그 이면에 비록 자신이 정신장애가 있어도 두 딸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욕구)을 발견했습니다. 주거개선은 시작일 뿐 진정한 그분의 욕구에 맞추어 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 딸들의 머리를 단정히 묶어주는 방법,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 등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그분의 진정한 욕구를 해결해 갈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주거개선이 필요한 가정이라는 카테고리, 그 영역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어도 클라이언트의 진정한 욕구를 파악한다면 주거개선 개입 계획의 목표와 풀어나가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단순한 요구가 아닌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욕구에 주목하시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클라이언트의 삶을 존중하며 그가 가진 강점을 궁금해하는 자세를 가집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잘 견뎌올 수 있었는지, 그동안 어떤 방법으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애써왔는지 존경의 마음을 담은 애정 어린 질문은 클라이언트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힘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나 기관이 가진 자원을 우선시하기보다 질문을 통해 진정으로 클라이언트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저마다의 고유한 색을 찾아가도록. 출처 pixabay
저마다의 고유한 색을 찾아가도록. 출처 pixabay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선명한 색이 아니더라도, 밝은 색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빛깔로 삶을 꾸려갑니다. 우리의 섣부른 판단이, 우리의 축적된 경험이 클라이언트의 고유한 색을 회색으로 통일해 버리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우리를 통해 클라이언트의 고유한 색이 잘 드러나는 개성 있는 현장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