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비틀즈, BTS 그리고 소통
바벨탑, 비틀즈, BTS 그리고 소통
  • 승근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02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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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은 왜 무너졌을까?
소통은 다양성의 인정이고 주인의식이고 민주주의이다
건강한 조직문화를 위한 받아들임과 경청의 자세가 필요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들이, 탑을 쌓아 하늘과 가까워지려 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신과 동등해지겠다’는 구약의 의미는 신의 계시를 받기보다는 인간의 뜻을 전하겠다는 인간적 욕망이지 않았을까?

서로가 메시지를 전하려고만 할 때 소통은 단절된다.
듣기보다 말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고자 하는 폭력과 다름이 없다. 그럼으로 소통은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하려 하기보다는 상대의 메시지를 받아들임이 더 중요하다.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설득하고 상대를 자신이 바라는 존재로 바꾸려고 하는 것, 이것이 인간사, 그리고 조직의 갈등요소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소통은 예상외로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다.
수렵생활 시대에는 소통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단순작업이기 때문이다. 농경시대에도 소통이 주목받지 못한 것은 수렵보다는 공정이 복잡해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시대의 소통도 역시 주목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매우 단순한 생산노동이었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테일러(Fredrick Winslow Taylor)의 과학적 관리론이었기 때문이다. 시간과 동작 속에 갇힌 기계적인 인간 말이다. 매뉴얼과 기능주의에 의해 기계적으로 일하다보니 소통과 생산성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메이요(George Elton Mayo)의 호손(Hawthorne)공장의 계전기 조립 실험, 면접실험, 관찰시험에서 소통의 중요성이 발견된다.

작업시간의 단축, 간식의 제공, 작업환경의 개선 등을 달리하여 실험집단과 통제집단을 비교하였더니 작업조건을 개선시킨 실험집단의 생산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개선시킨 변수를 제거했을 때도 실험집단의 생산성이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실험집단의 생산성이 증가한 원인은 자신들이 중요한 실험의 관찰대상이라는 동기부여가 작용되었기 때문이다.

호선공장에서의 실험을 통해 생산성에 관계된 비공식집단과 인간관계의 중요성, 그리고 마침내는 소통이 중요성이 제시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호손공장에서 밝혀진 호손효과 및 소통의 중요성은 그리 부각되지 못한다.
1920년대는 과학적 관리론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굳이 그런 것을 도입하지 않아도 노동자의 공급이 원활하고 빠르게 기계들이 돌아가며 생산성을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더욱 절실해지는 소통의 가치

오늘날 소통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내부 이슈들이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기보다는 복잡하고, 빠른 시대의 변화, 그리고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욕구를 가진 노동자들. 이러한 시장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가 바로 ‘소통’이다.

구성원들이 일사분란하게 과업을 해결하여 성과를 내는, 위대한 조직의 모습에서 소통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시장 상황 속에서 어느 조직보다 단연 돋보이게 높이 올라서려고 하지만 이내 조직은 무너져 내린다. 마치, 구약시대의 바벨탑처럼 말이다. 소통이 어렵고 조직이 무너지는 이유는 바벹탑과 같다. 상대의 메시지를 들으려 하기보다 전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바로 경청의 문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하기보다는 신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하는 그런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1960~70년의 비틀즈(The Beatles)에 대해, 당시의 기성세대는 4명의 멤버가 똑같은 검정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 스타일도 비슷해 보였다고 한다. 누가 누군지 몰랐으며 새로운 음악장르에 환호하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방탄소년단 7명의 멤버가 비슷해 보인다면 당신도 역시 1960년대의 영국 기성세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비틀즈의 let it be를 한번 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해석하자면 ‘그대로 놓아 두어라’ 정도이다. 의역하자면 ‘있는 그대로 인정’ 하라는 의미이다.

소통은 다양성과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나치게 통합된 조직, 통합되려고 하는 조직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비틀즈와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을 생소한 노래를 하는 ‘통합된 그룹’정도만 인정한다면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 각 개인을 고유하며 다양한 개별적 인격체로 인정할 때 드디어 노래가 귀에 들리고 그룹이 더 좋아지는 것이다. 자발적인 경청이 시작된다.

개별적인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나의 노래를 들어주는 ‘경청의 팬’이 있으니 동기부여는 자연스럽게 촉진되어 좋은 노래를 만든다. 그리고 그룹과 팬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시작된다.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인격적 요소가 인정될 때,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통은 주인의식을 제공한다. 주인의식이란, 주인이 갖는 의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인의식을 갖는 사람은 주인이기에 이야기를 경청할 수밖에 없다. 주인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종은 일감도 못 받거니와 적정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만약 조직이 구성원을 주인으로 인정한다면 조직은 구성원의 메시지를 경청할 것이다. 자신의 메시지가 경청받고 있다고 느끼는 구성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주인의식이 형성된다. 또한 자연히 동기부여가 촉진된다. 구성원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아니하고 명령하고 통제하는 조직은 구성원이 주인되기를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명령을 듣고 관리당하는 주인은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인정, 그리고 주인의식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다. 경청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득이든, 출신이든, 장애가 있든 없든, 국민 한 사람으로의 인격체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인으로 대우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조직민주주의란 구성원들의 개별적 다양성과 인격적 존중, 그리고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메시지를 조직이 경청하는 것이다.

바벨탑이 무너진 것은 언어의 혼잡이 아니다. 받아들임의 소통이 단절된 것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은 것이다. 상대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조직이 갈등하는 이유는 받아들임의 경청의 문화가 명령과 통제에 의해 단절되었기 때문이며 구성원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통이란 경청이다. 이것은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강요나 명령이 아닌 조직의 주인으로서 다양성과 인격체로 인정을 받는 것이야 말로 소통의 시작인 것이다. 동기부여는 그렇게 시작된다. 자발적이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구성원들과 일하고 싶다면 우선 그들의 말을 들으라. 당신의 구성원들이 어떠한 문제든 해결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가 되길 원한다면 역시 그들의 말을 들으라. 그리고 그들에게 요청하라.

‘What is your name? Speak yourself’(BTS Unicef 연설 中)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목소리를 내어 주세요.

요르단 강가에 바벨탑으로 닫혔던 신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