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1.27 0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길<br>(사회복지동행경영연구소 대표)
이종길
(사회복지동행경영연구소 대표)

어느 해인지 잘 모르겠지만 TV 다큐 인간극장을 보다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나의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으로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60대의 딸이 치매를 앓고 있는 80대의 친정엄마에게 커피 한잔을 건네고는 맛이 있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말은 하지 못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엄마를 바라보며 “그래도 입맛은 살아 있어가지고...”라고 중얼거린다. 만약, 엄마가 좀 더 젊었다면 그리고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듣는 사람에게 비수가 되고 인격을 말살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또 약한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의미로 한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고 상처로 기억될 수 있다.

올해 들어 첫 주 일간신문의 사회면을 크게 장식한 기사는 어느 요양원의 원장과 이곳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이 할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방바닥에 밀어 넘어뜨리는 사진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이 기사의 사진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이 요양원은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흔히 존재가치라는 말을 한다. 특정 사물이나 조직이 존재함으로써 개인 또는 사회에 미치는 중요성이나 쓸모를 말한다. 그러면 요양원이란 곳은 개인이나 사회에 어떤 쓸모나 유용성이 있을까?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한 책임자는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나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또 여기서 일하는 종사자들은 이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시설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리라.

비단 노인요양원 뿐만 아니라 장애인이용시설, 어린이집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이용하는 모든 시설과 이곳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기관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하여 자신이 갖추어야 할 행동 목표와 가치관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종종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잊어버리거나 인간존중에 대한 사명감이나 목표의식, 직업의식 없이 그저 호구지책으로 복지시설에 들어와서 아무런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행동하고 대처하는 로봇 인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도저히 약자를 보호하고 권익을 옹호하는 기관의 직원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아무런 개념 없이 행사한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므로 스스로 존재하는 가치를 안다」 일찍이 한 철학자는 가르쳤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중에 아무런 생각 없이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것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을 복지시설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사회복지분야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사회에서 가장 그늘지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훌륭한 분들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복지라는 것은 다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늘진 사각지대의 소수자들에게 참으로 사람의 향기와 온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머나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은 나침반을 가지고 배가 다다르고자 하는 곳을 늘 주시하며 방향을 수시로 확인한다. 먼 옛날, 나침반이 없던 시절에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방향을 찾았다.

오늘날 인생길을 항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늘 마음속에 나만의 별을 두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늘 가져야 한다.

최근 2~3년 사이에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 간의 직접 접촉이 멀어지고 각종 미디어나 디지털 시스템에 의한 비대면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4차 산업혁명의 실현이 점점 현실화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되면 가장 각광 받는 직업분야는 직접 대면을 통해 인간적인 온기를 전달하는 사회복지 분야가 될 것이라고 모두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따뜻한 온기가 아닌 비인간적인 폭력을 전달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그것은 사람을 만나는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업인들이 가져야 할 인권감수성이 낮거나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가 불안하면서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급증하고 이에 대비하지 못한 서비스 현장에서는 무자격자나 함량미달의 서비스 인력을 급조하여 공급함으로써 인권침해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메어서 쓰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존엄하고 고귀한 인권을 다루는 복지 서비스 현장에 제대로 된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인력이 양성되어 배치된다는 것은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정책 당국은 지금이라도 교육과정을 면밀히 검토하여 인성이나 적성을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기계적인 냉혈 로봇이 아닌 따뜻한 온기를 전달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회복지시설은 사회와도 점점 고립되고 보호자들과도 면회가 단절되면서 더욱 단절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종사자들이 심리적으로 업무와 이용인 보호에서 오는 중압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자신이 일하는 현장과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복지시설은 인권에 취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인권감수성에 민감해야 하며 시설장은 물론 종사자들이 항상 인권문제에 깨어 있도록 교육하고 감수성을 개발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설장이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 직원들이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말이나 행동을 함께 모여서 평가해보고 바꾸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오늘보다는 내일 더 달라지는 종사자와 시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며 이용인들 에게도 따뜻한 온기를 전달할 수 있는 서비스 원동력을 재생산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