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방향’을 잃었다
지금 우리는 ‘방향’을 잃었다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2.02.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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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한동안 ‘속도보다는 방향’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빨리빨리’와 ‘성과지상주의’가 불러들인 폐해들을 치유하자는 뜻이 담겨 있어서 공감의 폭이 매우 컸다.

실제로 우리들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틀에 갇혀서 사람답게 사는 일을 잊었던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 행태고, 그 밑에 깔려 있는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윤리적인 거리낌마저 없었다. 빠른 속도를 강조하는 세상이 만들어낸 비뚤어진 모양들이다. 속도보다는 방향을 바르게 하자는 주장은 무작정 달리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세상을 향해서 ‘잠깐의 멈춤’을 당부하는 뜻도 담겨 있다.

물론, 빠른 속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속도감 있게 일을 추진하는 사람을 보면 속이 다 후련할 때가 있다. 반면에 별것도 아닌 일에 매달려서 꾸물거리는 사람을 보면 답답한 생각에 원망이 먼저 튀어나온다. 속도가 붙어야 할 상황이면 당연히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성과가 약정된 경우라면 목표량을 채우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은 불가결하다.

문제는 과속이다. 과속은 가야 할 길이나 쉬어야 할 장소를 놓치게 한다. 멈추어 서야 할 지점을 지나치게 한다. 판단력과 집중력을 저해하기도 한다. 과속은 또 사고(事故)로 직결되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빠른 속도보다는 바른 방향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방향이나 길만 강조하는 것도 미욱하다. 오직 하나의 선(善)만 존재한다고 우기는 생각은 전체주의적인 망상이다.

우리는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부른다. 오직 하나의 진리만 존재한다고 강요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인간중심의 사고는 부정(不淨)한 생각으로 매도되었다. 중세를 몇 마디의 문장으로 규정하는 것은 분명히 무리가 있고, 중세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생각과 방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비극의 시대였다는 역사적 흔적은 차고 넘친다. 결국 새로운 시대정신에게 밀리는 처지가 되었다.

요즘의 대통령 선거판을 보면 속도보다는 방향을 바르게 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과격한 논평, 설익은 공약, 후보들의 동분서주 등은 대통령 선거판을 천박하게 만들고 있다. 비난하고 저주하는 일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정당들은 스스로 만든 알짜배기 약속들을 허접한 것으로 격하시킨다. 그러니 한쪽에서는 ‘형수’만 보이고 다른 쪽은 ‘건희’만 크게 보인다.

우리나라는 평화국가와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이 방향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런데도 후보들의 행태를 보면 혐오와 배제 일색이다.

대통령 선거판이 이런 수준이니 다른 영역들도 방향은 없고 소리만 요란하다. 두루두루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