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도
엄마의 기도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10 0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길<br>(복지동행경영연구소 대표)
이종길
(복지동행경영연구소 대표)

그러니까 내가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함께 자녀의 미래 문제를 걱정하며 자립준비 모임을 가지던 때니까 지금부터 약 40여 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정부에서 주도하는 장애인복지 정책이나 사업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관련법이나 제도는 물론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는 관련 자료나 책자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장애인복지에 관한 프로그램이나 자료를 구하려면 선진 국가들을 방문하여 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거나 자료를 번역하여 우리의 현실에 적용해보는 정도의 노력을 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80년대 초에만 해도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은 장애의 정도나 유형에 관계없이 정부의 장애인복지에 대한 비전이나 복지정책과 제도가 없는 암울한 현실 앞에 절망하고 희망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필자는 부모들과 함께 부모들의 힘으로 자녀의 미래를 계획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매월 모임을 가졌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00 부모회장은 모임 시작에 앞서 으레 기도를 하셨다. 매월 회의 때마다 듣는 기도의 끝부분은 이미 나의 귀에는 여러 번 들어서 저장되어 있는 주님 먼 훗날 저희가 주님 앞에 갔을 때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당당하게 잘 키워놓고 왔다고 대답할 수 있는 부모가 되게 하여 주세요.”라는 소망으로 마무리하셨다.

나는 이 기도를 들을 때마다 나의 신앙심은 부모회장보다 깊이가 없었지만 부모들이 하느님 앞에서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드려야 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이러한 나의 다짐이 어느덧 점점 나의 직업적인 사명감으로 굳어져 갔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러한 엄마들의 기도가 나에게는 간절하다 못해 처절하게 들렸다. 이 세상에 자녀보다 엄마가 더 오래 사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하느님이 이 기도를 들어줄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부모들의 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즈음, 필자는 이웃 나라 일본의 도쿄를 방문하여 일본의 발달장애인 부모회 활동상황을 돌아보고 부모회에서 발간하는 손을 마주 잡은 부모들이라는 월간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었다.

잡지에는 매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힘을 합해서 장애인끼리 모여서 살아가는 마을이나 공동체를 건설하고 그곳에 소규모의 작업장을 개설, 운영하면서 공동체에서 생산한 물건을 작은 매장을 열어서 판매하는 등의 자립 활동 상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번역하여 부모들에게 소개하고 일본의 후쿠오카 현에 있는 해바라기 마을을 부모들이 방문하여 부모들의 힘으로 건설한 자립 공동체를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8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서는 희망을 찾기 어려웠던 부모들이 일본의 공동체 마을 견학을 다녀온 후에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부모회에서 추진하려는 자녀들의 미래 자립에 대한 목표의식도 뚜렷해져 갔다. 그러고는 10여 년이 지난 1992년에 드디어 부모들이 만든 공동체를 이 세상에 우뚝 세웠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 어떤 사람이 되어 무슨 일을 할지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염원을 담아 기도한다.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수상한 선수들의 지나온 훈련과정을 추적해보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목표를 정해놓고 십수 년에 걸쳐서 목표를 이루려고 피땀을 흘리며 노력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지 반드시 이루려고 한다면 먼저 꿈을 가져야 하고 그 꿈을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낼 것인지 실천 계획을 세워서 꾸준히 노력하고 실천함으로써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것을 세상의 수많은 사례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힘이라고 믿고 싶다.

나는 가끔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나의 삶이 부모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하는 건방진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의 그런 어리석은 생각과 허영심을 나무라곤 한다.

오히려 나의 인생은 장애인 부모들로부터 세상을 바로 살아가는 것을 배웠고 인간에 대한 참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나에게 가르쳐줬고 나의 인생길을 바로 걸어가도록 힘을 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부모들과 함께 회합을 하고 일하면서 부모들의 지칠 줄 모르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집념, 그리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녀를 위해 바치는 희생정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직업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인권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한시라도 잊지 않는 자녀의 안전한 삶에 대한 미래를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이 느끼고 있다.

그 시절 회합 때마다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부모회장님은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게도 간절히 기도했던 주님 앞에서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왔노라고 당당하게 답했으리라... 그러고는 자녀들의 안전한 세상살이를 내려다보며 편히 안식을 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