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무너지는 자존감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무너지는 자존감
  • 김광이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활동가)
  • 승인 2019.07.04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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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존재이유는 자존감...예산 확보한 실질적 개인별 서비스로 전환해야

오전에 마실 톡방에 영화예매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 올라왔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동행인 포함 할인'
영화관에서 기존 방식대로라면 그는 매표소에 가서 이런 확인절차를 밟아야 할게다. 
“저는 예매를 했는데요, 표를 주세요.”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입니까? 확인증을 주세요.”

묘하게 종이짝 구겨지는 느낌! 
‘장애정도가 심한...장애정도가 심한...그럼 활동지원 시간을 더 주던가... 내가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인 건 아니고...’

내 집에서는 좀더 익숙하고, 전동휠체어로 평지와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를 이용해서는 혼자 다닐만 하지만, 환경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곳에 가려면 준비해둘 것이 많다. 

우선 밥과 물부터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화장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밥 먹을 곳은 있는지, 계단이 아닌 곳으로 출입이 가능한지,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체념하고 포기한 게 얼마나 많던가. 뒷받침해줄 것이 없으니 무언가를 해보려 의욕을 부릴수록 '모지리'가 되는 세월이었다.

나이 들어가는 장애인들은 혼자서 씩씩하게 해나가던 일상에 힘겨워진다고 한다. 사용근육의 균형이 다르니 비장애인들과는 다른 후유증을 겪는다. 점점 혼자 화장실에 가기 곤란해진다. 외출하면 하루 종일 화장실 한번을 안 가고 있다가 저녁에 집에 가서야 그 신호를 느끼고 고통을 풀어내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음식, 수분 섭취를 안 하려고 하니 점점 몸이 축난다.

그러니 대중교통 이용이 불가능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교육, 이동, 노동, 의료, 사람들과의 교제...어린 시절부터 평생이 어떠하겠는가. 
지역 차이 뿐만 아니라 장애유형이 같아도 장애의 특징들은 다르다. 손을 쓰는 사람은 다리를 대체할 것들이 필요하고, 발을 쓰는 사람은 발로 되지 않는 것들을 대체할 것들을 뽑아보아야 한다. 저시력 장애라고 증상이 똑같지 않고, 발달장애인은 또 얼마나 주변환경 혹은 태도에 민감하고,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있는가.

마실의 한 회원은 휠체어를 이용하면서 시야 각도가 좁아지고 있어서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그에 필요한 서비스를 판단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그는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라는 구별이 오히려 제약이 된다. 
더 심함과 심하지 않음이라는 몸을 기준으로 나누는 건 장애인 입장에서는 정책의 효용이 더 적다. 지금의 종합조사표는 오히려 장애인의 일상을 구겨넣으니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므로 가짜다.

낮에도 내일 이용할 기차표를 예약하려고 앱을 열어보니 예약자 카테고리가 바뀌었다. 전에는 '어른/어린이/유아/경로/전동휠체어/수동휠체어'로 구분했는데 7월 1일부터 장애인은 중증/경증이 먼저 나타난다.

장애등급제 완전폐지하고 개인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이유다. 
예산 막아놓고 장애등급제 폐지했다고 눈 가리고 포장할 일이 아니다. 중대한 사안을 한풀 꺽어놓겠다고 법정/비법정 가르며 숨어버리면 우리네 삶이 곤란해진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지 말자니까 희한하게 사람 급이 내려갔다.

개별 맞춤 서비스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자연증가분 예산만으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노라는 공약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청와대도 알고 국회도 알고 물론 복지부도 알 것이다.

존롤스의 정의론에서 '자존감'이 평등사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가. 중고를 구입해 다시 읽고 복지부 장관에게 그 대목을 표시해서 부쳐야겠다.

왜? 복지의 존재 이유는 사람의 '자존감' 때문이다.

#장애정도가심한장애인_실감
#복지의_존재이유는_자존감 #장애등급제완전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