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격차야, 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격차야, 이 바보야"
  • 승근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0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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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인 진정한 요구, 단순 급여 인상이 아냐...지역ㆍ학력ㆍ노동강도ㆍ소득의 격차 줄이는 것

걸프전 승리로 공화당 조지 부시(George W. Bush)의 재임을 찬성하는 여론이 52%에 달했던 미국 42대 대통령선거. 민주당의 빌 클린턴(Bill Clinton)후보는 보수지지층의 계속된 공격과 진보층의 이탈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역사에 남을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로 선거 프레임을 냉전에서 경제로 전환시켜 여유롭게 당선된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의 캐치프레이즈는 ‘녹색성장’이었고, 그 다음의 대통령은 ‘창조경제’였다. 사람들은 ‘경제’라는 단어에 환호하며 모든 문제의 해결을 경제에서 찾는다.

자살의 원인, 후원을 기피하는 원인, 출산율이 저조한 이유,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원인 모두 ‘경제’다. 대한민국이 1997년 국제구제금융(IMF)을 받은 이후로 죽었던 경제는 20여 년이 지나도록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사이 ‘경제’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버린, ‘성장’만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이 되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도, ‘경제부터 살려라’, 소득주도성장을 이야기해도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최저시급 1만원 달성을 주장하면 ‘경제를 망치는 원흉’으로 지목된다. 과연 대한민국의 어려움과 모든 난제는 ‘경제’가 해결되면 풀리는 것일까?

단언하건데, 시장경제의 한계에 다다른 국제경제 여건상, 대한민국의 동해바다에 원유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경제’는 살아나지 않는다. 설령 결코 살아날 수 없는 경제를 살렸다고 하더라도 자살이나, 빈곤, 양극화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은 경제가 아니라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격차

2019년 6월1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 6천여 명의 사회복지사들이 운집해 사회복지정책대회를 통해 4개의 의제를 발표한다. OECD 국가 평균 사회복지예산 확보. 사회복지종사자 근로환경 개선, 사회복지종사자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수준의 급여현실화, 그리고 사회복지사업 민관협치 강화이다.

4가지의 의제는 무엇이 해결되어야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의제의 흐름은 경제로 옮아가 버린다. 모든 것이 돈의 문제이고 이 난제를 해결하려면 경제부터 살아나야 한다. OECD 수준의 사회복지예산도,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돈의 문제이다. 사회복지사 등 처우에 관한 법률에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수준으로 ‘노력하여야 한다.’를 ‘하여야 한다.’로 개정하여야 한다는 모 정당의 원내대표의 발언도 결국에는 돈이다.

결국 사회복지정책대회를 마친 사회복지사들은 오늘도 일터로 나가, 대한민국의 경제가 나아지기를 희망하며 또 열심히 일을 해내야한다, 또 다시 그들은 ‘경제’라는 프레임에 갇힌 채, 4년에서 5년에 한번 씩 돌아오는 선거에서 경제를 살릴만한 지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6천여 명의 사회복지사들이 운집하여 4대 의제를 내건 이면에는 ‘격차’가 있다.

OECD 국가와 비교한 인간다운 삶의 수준에 대한 ‘격차’, 동종 및 타종 노동자들과의 ‘격차’, 전담공무원들과의 ‘격차’, 마지막으로 민관사이에 흐르는 힘의 ‘격차’. 그들이 그렇게 모인 것은 경제를 해결하라는 것이 아니라 ‘격차’를 해결하라는 의미이다.

특히 사회복지 재정의 지방분권화를 통해 빚어진 서울과 지방과의 격차, 복지관 유형과 소위 소규모 센터들과의 격차, 장기요양기관과 국고보조금지원 기관과의 격차, 노인시설과 아동시설과의 격차, 정규직과 전담직원과의 격차야 말로 사회복지사들이 모인 진정한 이유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 각 당 원내 대표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설은 매우 비공감적이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의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앞장서서 또 다른 이러저러한 것들을 시도할 것이다.’ ‘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는 연설의 내용은 산불과 태풍, 지진 피해와 청년층 실업 및 고용부진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 자리를 찾아온 지방 사회복지사들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랑을 들으러 온 것도, 방법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격차에 대한 위로와 함께 격차 해소의 의지를 듣고자 함이었다. 분명 연설의 내용들이 명백한 사실이라 해도 ‘격차’에 의해 희생되어 왔던 사회복지사들에게는 비공감적 메시지였다.

2020년 총선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지나면 대선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정책의 목적이 경제의 성장이 아니었으면 한다.

‘격차’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정책의 목표이고, 그들의 책무이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격차에 대해 송구해하며 그것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보겠다고 다짐하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희망해본다. 마침내는 그들의 캐치프레이즈가 ‘문제는 격차야, 이 바보야!’ 로 선정되기를 희망하여 본다. 그것이 진정한 사회복지 국가책임제의 실현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진정한 요구는 급여를 올려주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예산을 책정하고 법령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학력과 노동강도와 소득의 격차를 줄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복지사들이 진정으로 소원하는 복지국가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격차야, 이 바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