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장애인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02 12: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식 (사회정책학 박사)
김형식 (사회정책학 박사)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어느새 유월입니다. 참으로 빠른 게 세월이지요.

오늘은 주제를 '사람을 보라'로 정해 보았습니다. ‘사람 취급을 못 받는 다양한 인간사가 생각이 나서입니다.’

유명한 TV의 내담자 오프라 윈프리가 한번은 유명한 미국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를 인터뷰 중에 “그는 항상 ‘흑인’ 배우라는 명칭으로 불려진다!” 고 했지요. 평범한 사람, 유명 배우 포이티어가 아니라, 우선 ‘흑인’이라는 형용사가 따라붙는다는 것입니다.

혹시 장애인으로 사시면서 비슷한 경험을 해보신 적이 없는지요? 얼마 전 한 신문에서 장애를 이유로 목회현장실습을 거부함에 따라 목회자가 되는 길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한신대학교의 학생 유 모 씨의 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 후보이기 전에 그는 ‘장애인’이었던 것이 학업을 중단하게 만들었죠. 그는 ‘학생’이기 전에 ‘장애인’이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의하면 75억의 세계인구 중, 15억, 세계인구의 15%가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마치 ‘흑인’에 대한 인종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장애인을 하나같이 '문제 인간'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장애를 입은 사람은 병원을 떠나도 퇴원 환자라기보다 퇴원장애인이라 하고, 사회로 돌아왔어도 일반인이 아니라 비정상인 ‘장애인’ 입니다. '사람'이기 전에 장애인의 꼬리표는 평생 붙어 다닙니다. 비웃거나 놀리고 심지어는 괴롭히기까지 했고 왕따를 당했던 경험도 없지 않아 있었겠죠. 

왜 그런 것일까요? 

아마도 장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장애는 단순한 고통이나 어려움, 빈곤이 아니라 특수한 불행이며 비극으로 인식하여 누구나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외면하려 하고, 알려고 하기 보단 모르고 지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장애를 입는 사람은 많아도 장애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언제나 드뭅니다.

사람이 고통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아는 장애는 크게 과장되고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예로부터 온갖 거짓과 오해가 쌓이고 겹쳐 장애는 흔히 치명적이라 일컬어집니다. 사실상 '죽은 목숨'이라는 이야기죠.

장애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으로 돌려 한번 장애인은 죽을 때까지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이 일찍부터 뿌리내려졌습니다.
간혹 '장애를 극복'하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기억해 줍니다. 베토벤, 루즈벨트, 헬렌 켈러, 김기창(金基昶) 같은 크게 알려진 사람들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필자는 몇 년 전 장애인이었던 미국의 최초 4선 대통령 ‘희망의 대통령 루스벨트’라는 책을 출판한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 「차별금지법」, 「평등법」 등에 관한 기사가 지상에 자주 거론됩니다. 이 법은 한심하게도 이미 2007년부터 시작된 입법운동입니다. 민주당을 필두로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 의지도 드러냈습니다. 민주당은 그동안 보수 종교계 등을 의식해 법 제정을 미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 비대위원장은 “이제 차별의 벽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를 열어야 한다.”며 "지금까지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국회의 활발한 논의를 통해서 최대한 국민 공감대를 얻어 처리 하겠다."고 합니다. 

「차별금지법」, 「평등법」은 한마디로 ‘사람이 제대로 사람으로 인식되며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그런 사회가 올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앞섭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요.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고 부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장애인이기 전에 먼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