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언트의 비밀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클라이언트의 비밀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26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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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스텍의 '비밀보장원칙'으로 살펴보는 사회복지 실천 이야기

어느 날, 우리 센터의 A어르신과 B어르신은 우리 집 대문에 이게 붙여져 있었는데 여기 전화해서 원장님이 혼 좀 내줘요라고 하셨다.

어느 복지기관의 실무자가 어르신 댁을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하여 메모를 붙여두고 간 것인데 이 메모를 보신 어르신들이 무척 화가 나셨다.

실제 메모를 재구성 하였다.
실제 메모를 재구성 하였다.

어르신들이 분노하신 지점은 바로 독거노인이라고 명시한 메모를 대문에 붙인것이었다. 내가 혼자 사는 것을 왜 자기 마음대로 광고하느냐는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밤에 누군가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것 같은데(실제 그러지 않았다) 다 이 메모 때문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차마 기관에 전화하여 담당자를 혼낼 수없었다. 나부터 혼나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가정방문을 해도 만나지 못하거나 전화 통화가 되지 않는 클라이언트의 경우, 나 역시 제발 연락이 닿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대문에 메모를 붙여왔기 때문이다. 어르신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나의 간절함과는 상관없이 이것이 매우 불쾌한 일이 될 수 있겠구나 이해가 갔다. 혼자 산다는 것, 복지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 현재 빈 집이라는 것 등의 소중한 정보가 이 메모에 의해 낱낱이 노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사회복지관 평가지표 중 ‘D1. 비밀보장영역에는 이용자의 개인정보에 대한 비밀보장을 제도적 장치로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4가지 항목이 있다.

개인정보의 비밀보장 관련 규정이나 지침이 명문화되어 있는지, 개인정보 파일을 안전하게 보관, 관리하고 있는지, 개인정보 보호 관련 직원교육을 연 1회 이상 실시하는지 그리고 이용자 또는 가족에게 개인정보 수집 및 활동에 대해 사전에 동의하고 있는지가 그것이다. 2018년 평가 지침 중 개인정보의 제공은 공문에 의해 판단하고 조치한다는 항목이 빠진 것 외에 큰 틀은 동일하다. 이제 개인정보 보호는 사회복지 기관이라면 당연하다시피 여겨 이 지표의 평가 점수는 크게 염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설 평가에서 개인정보 보호 영역의 점수를 높게 받았다고 해서 정말 기관의 개인정보가 제대로 보호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비에스텍은 클라이언트의 비밀이 어떠한 성질의 것이든 그것은 클라이언트에게 신성한 것이라 말하며 사회복지사가 그것을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조사, 진단, 치료에 충분히 참여하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신성하게 여겨진다는 확신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비에스텍은 비밀이 보장되는 분위기가 클라이언트에게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다. , 명문화된 비밀보장 규정, 컴퓨터 내 클라이언트의 개별파일 암호화, 직원교육 외 평가지표를 뛰어넘는 확대된 비밀보장의 개념이 필요하는 것이다. 평가지표상의 비밀보장 항목은 사실 클라이언트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 대신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가 나의 비밀을 신성하게(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느끼는 순간 마음이 열리고 관계가 탄탄해지는 시작이 된다.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어려움을 하나씩 풀어가려는 용기가 클라이언트에게 생긴다.

클라이언트에게 보내는 우편물에 기관의 명칭을 지나치게 노출시키지 않기, 가정방문 때 기관의 자동차에 기관 명칭을 써 붙이지 않기, 대합실에서 클라이언트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지 않기 등의 방법 등으로 비에스텍은 이러한 비밀보장의 분위기를 조성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비에스텍의 예시가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닐까, 현장의 일상적인 모습을 과하게 우려하는 것은 아닐까 싶지만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거나 당연하다 여겨지는 것들을 다시 살펴보고, 비밀보장에 대한 내면적인 태도의 성숙함을 추구하자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통합사례관리를 진행하면서 우리 기관에 치매안심센터 실무자가 내방한 적이 있다. 통합사례관리 대상 어르신을 만나고 실무자가 돌아갔는데 이후 센터는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실무자가 타고 온 차량에 기관명이 붙어 있었는데 어르신들은 전체 기관명을 보시지 않고 치매라는 단어에 주목하셨다.

여기 누가 치매환자냐”, “왜 우리 학교에(어르신들은 주간보호센터를 이렇게 부르신다) 저 차가 온 것이냐

실무자에게 이 상황을 전했다. 센터 내방 시, 주차를 다른 공간에 해주십사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니 다른 어르신들을 방문할 때도 종종 일어나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치매안심센터 실무자로서 매우 고민되는 지점이었고, 그렇다고 차량에 붙은 기관명을 뗄 수 없어 멀찌감치 주차하고 기관이나 가정에 방문한다고 한다.

(앞으로 차량에 기관명을 붙이지 말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숨기고 싶은 나의 질환이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지는 것 자체가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차량에는 기관명이 붙어야 한다는 우리의 당연함이 누군가에게는 속상하고, 오해를 만들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클라이언트를 위한 비밀보장은 전문가로서의 윤리강령으로서만, 평가지표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기반으로 신뢰감 있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밀보장 규정을 지키는 것에서 내가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과 행동에서의 일치감 있는 비밀보장이 클라이언트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이제 클라이언트의 대문에 메모를 붙이는 대신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참고자료

케이스워크 관계론(Casework Relationship), 펠릭스 비에스텍(Felix Biestek), 1986, 홍익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