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包裝)보다는 내실(內實)을...!
포장(包裝)보다는 내실(內實)을...!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2.08.30 1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한동안 사회복지시설에서 ‘비전세우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미국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기독교계를 넘어서 전 사회적으로 큰 감화력을 보인 이후에 나타난 일종의 후광효과 같은 것이었다.

그 시기에 조금 선진적인 사회복지시설들은 멋들어진 비전을 세우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던 기억이 있다. 유행에 민감하지 못했던 나는 ‘뭐 그런 것이 필요하냐’며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그런 입장을 견지하게 된 이면에는, 많은 수의 사회복지시설들이 그럴싸한 영어 단어 몇 개를 엮어서 비전이라고 정해놓고는 기관운영이나 관리의 실상은 따로국밥인 모양이 싫어서였다.

기관의 정체성이나 과제를 농밀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권장할 일이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점검해서 과오나 취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극대화하면서 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련의 과정은 필요하다. 조직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고, 조직구성원의 역량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치열한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거나 사회복지조직의 특성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전문가의 주도적인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실을 다지는 과정이 되지 못하고, 포장하는 일에 방점이 찍힌 ‘자기만족의 과정’으로 주저앉는 형국이 잦았다.

모든 조직의 역동성은 구성원들의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이 책임감은 진정성 혹은 정직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부분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인 상태가 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어린왕자에 나오는 ‘치장하기를 몹시 좋아하는 꽃’이 되면 안 된다. 치장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본질과 존재이유를 잃어버리는 불행과 만나게 된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동일한 조건이라면 더 나은 쪽을 선택한다’는 의미이지, 겉모양이 우선이라는 뜻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들도 홍보문구나 포장 때문에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있는 제품의 높은 완성도와 탁월함이 구매력의 근본이유다.

포장이 중요하지만 내실을 앞지르지는 못한다. 포장이 내실을 견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산업이건 서비스건 간에 옳은 생각으로 보기 어렵다. 내가 아는 사회복지관은 요란한 구호 없이도 지역사회의 형편을 감당해내기 위하여 모든 직원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 복지관은 따로 정해 놓은 목표도 없다. 하지만 인근의 복지관들이 부러워하는 사업역량을 가지고 있다.

비전을 세우고 목표를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기관운영의 지표가 되고 사업을 펼치는 원리가 되어야지 공허한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시설은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 적합한 사업으로 내실을 채우고 키우는 일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