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2.11.0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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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정지아 작가의 소설이다.

소설을 구입해서 그날로 끝까지 다 읽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만큼 흡인력이 강했다. 작가는 아버지가 마주한 무겁고 고단한 현실을 때로는 웃음을 담아서 풀어내거나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귀엣말을 나누듯이 조곤조곤 써놓았다.

소설은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한다. 소설의 시작이자 결말인 이 문장은 왠지 버릇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건조하게 내뱉기는 했지만, 소설은 장례식장에서의 3일 동안에 빨치산 14연대장이었던 아버지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었다. 물론 아버지 때문에 겪은 자신의 고통도 담아 놓았다.

소설은 아버지가 오랫동안 교도소에 있다가 출소한 이후, 격변하는 우리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매우 인간적으로 묘사했다. 웃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재미있게 그려놓았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머니에 대해서도 시골 아낙의 모습과 빨치산 출신다운 면모를 함께 섞어서 감칠맛 나게 묘사했다.

이 소설의 전반부에는 ‘사회주의’라는 말과 ‘하염없이’라는 말 그리고 ‘오죽하면’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의도가 실린 말들이지만, 웃음이 터지는 장면을 유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착잡한 심경이 담긴 장면을 갈무리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작가의 글 솜씨가 도드라진 대목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아버지가 이생의 굴레를 벗은 모습을 ‘해방’이라고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만큼 아버지가 살아낸 현실은 궁핍했고 가혹하기도 했다. 동시에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해방도 그려냈다.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이었기에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소설의 말미에서 아버지와의 차분하고 묵직한 화해를 통해 그간의 묵은내 나는 마음들을 훌훌 털어냈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라’는 작가의 말이 그 흔적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얼굴이 생각났다. 교회만을 생각하며 사셨던 아버님의 모습이 곳곳에서 겹쳐졌다. 빈농(貧農)이었기에 늘 고단했던 아버님이 자나 깨나 교회만을 앞장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는 무던히도 아버님을 원망했었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에야 비로소 아버님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시작했고, 아버님의 소망이 곧 나의 소망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목사이면서 사회복지사의 길을 함께 걷게 된 것도 그런 깨달음의 결과다.

지금의 내 모습은 전적으로 아버님의 기도 덕분이다.

이번 주는 아버님의 묘소를 찾아야겠다. 좋은 책을 추천한 장재구 관장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