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 강간죄' 개정을 둘러싼 말바꾸기로 여성안전과 존엄을 파괴하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규탄한다
'비동의 강간죄' 개정을 둘러싼 말바꾸기로 여성안전과 존엄을 파괴하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규탄한다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3.01.30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6일, 여성가족부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에 대해서만 강간죄로 처벌하는 형법 제297조 조항을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하도록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바이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로 바뀌지 않은 현행 강간죄는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항거 여부에 따라 그 죄의 경중을 물어, 피해자에게 피해유발의 책임을 묻는 악법이며, 피해자에 대한 낙인을 법제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2019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66개 성폭력상담소에서 강간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성폭력 피해 사례 중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하는 성폭력 사례가 무려 71.4%에 이른다.

실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 등은 모두 폭행이나 협박을 수반하지 않아도 성폭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층적 위계나 성별 위계 또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오래된 사회적 낙인 등으로 '폭행과 협박'이 없이도 피해자가 성폭력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사례는 무수하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현행 강간죄는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 뿐만 아니라, 성폭력이 만연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2020년 대검찰청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강력범죄의 추이를 분석하여 발표한 바 있다. 대검찰청 분류로 강력범죄라고 하면 성폭력·강도·방화·살인을 의미한다. 이 강력범죄의 거의 90%가 성폭력 범죄이다. 이 통계가 시사하는 바는 국민 안전을 위한 핵심 고리에 성폭력 범죄 근절이 있다는 것이다.

'비동의 강간죄'는 성폭력 근절과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자 법적 안전망이다. 그동안 안전망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2017년부터 사회 각계에서 무수한 성폭력 미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이에 2018년 9월 6일 당시 여성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떠나 '비동의 강간죄'로의 형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바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의원을 비롯해서 정의당·민주당 의원들이 모두 참여했던 것은 오래된 여성계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동의 강간죄'는 이미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권고한 바 있는 법안으로, 국제형사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는 동의 여부에 따라 강간을 판단하고 있고, 독일·캐나다·영국·스웨덴 등에서도 이미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성폭력의 법적 구성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형식적으로 동의가 있었더라도, 실질적으로 위계나 위력이나 피해자의 취약한 상태를 이용한 경우로서 실질적으로 동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성폭력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법 체계까지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의 공식 발표가 있은 후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나 법무부의 관계자들은 여성가족부의 형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고, 그러자 불과 9시간 만에 여성가족부가 입장을 바꾸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여성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여가부의 이번 발표는 하루이틀 논의하여 정리된 내용이 아니며, 법 개정에 관한 것이니 마땅히 유관부처인 법무부와도 논의를 마쳤을 터인데, 이해할 수 없는 입장 변화라니? 여가부의 발표 자리에 법무부 관계자가 배석했다는 것은 이미 법무부와의 조율을 마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출입기자단에게 "반대 취지의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는 말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더냐? 법무부의 무책임한 처사에 여가부는 공식적으로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고, 법무부 관계자의 발언 혹은 압력을 그대로 수용하여 "제3차 기본계획에 포함된 비동의 간음죄 개정 검토와 관련해 정부는 개정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기자단에게 문자로 공지했다. 이 또한 해괴한 일이다.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을 행정부의 거수기로 만드는 데에 신이 난 권성동 의원의 경거망동한 행태에 대해서는 논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작년 9월 14일 신당역에서 있었던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서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반의사불벌죄가 갖는 법의 사각지대에 대해, 한동훈 법무장관은 즉각적으로 스토킹범죄처벌법에서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는 입법 발의를 했다. 스토킹 범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존 법 개정에 발 빠르게 대처했던 것과 달리 여가부에서 발표한 '비동의 강간죄' 개정발의와 관련해서는 논의된 바 없다며, 무책임한 의견을 흘리며 여가부의 발목을 잡은 법무부의 처신은 실망을 넘어 분노감을 느끼게 한다.

윤석열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63대 과제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구현'과 64대 과제 '범죄피해자 보호 시스템 확립' 과제의 수립 취지를 망각하고 있음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과제에서 언급하고 있는 '5대 폭력', 즉 권력형 성범죄·디지털성범죄·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범죄는 젠더 위계 기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해 행해지고 있는 젠더 기반 폭력 범죄이다. 그 중심에 있는 성폭력 범죄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성폭력 근절과 예방의 안전망이 될 수 있는 '비동의 강간죄'로 형법개정을 추진하는 여성가족부의 행보에 힘을 실어 주지는 못할 망정, 부처 간에 불협화음을 조장하고 여당의 국회의원이 여가부의 옆구리를 찌르는 경거망동을 방관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는 행태'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여가부를 쥐고 흔드는 행태를 반복함으로써 여가부 무용론을 현실화시키려는 얕은 수작에 실소를 금치 못하며, 동시에 여가부는 성차별과 성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부처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됨을 명심하길 바란다.

2023.01.27.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 본 성명서/논평은 웰페어이슈의 편집 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성명서/논평을 작성한 정보 제공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