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큰 사람이 사는 법
품 큰 사람이 사는 법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3.02.2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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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20년도 넘은 일이다. 당시 복지관을 운영하던 법인의 다른 산하시설에서 갑작스럽게 곤혹스런 일이 발생했다. 시설운영을 부정하게 한 것도 아닌데, 공무원의 눈에는 꼬투리가 몇 개 보였던 모양이다. 담당 공무원은 구체적인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시설의 존폐와 관련된 일이라고 요란을 떨었다. 날마다 시설운영과 관련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알고 보니,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이 제기한 악성민원 때문이었다. 민원인은 재력가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문제가 된 시설의 대표는 백방으로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뾰쪽한 출구를 찾지 못했다. 급기야 시설운영이 불안한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산하시설 운영의 총괄책임을 맡은 사람이 나섰다. 출중한 인맥을 가지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풀어낼 것으로 보였다.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해당 공무원과 직접 담판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더 꼬여갔다. 불현듯 한 분이 생각났다. 큰 법인을 운영하는 어른이었다. 운영하는 시설의 종류도 많았다. 그런데도 그 당시까지는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비결이 궁금했고, 이 분의 조언이면 혹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걸었다. 선뜻 만날 수 있다는 대답이 왔다. 자정이 다된 시간에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질문과 대답이 여러 차례 오가는 와중에 ‘이 문제는 자료의 제출이나 설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민원인의 의도와 공무원의 처리방침이 중요하다’고 했다. 안방으로 들어가서 몇 사람과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방에서 나오는 그 분의 얼굴이 밝았다. 하지만 가타부타 설명 없이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돌아가 쉬라고 했다. ‘주민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시대이므로 자주 대화를 나누라’면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다음 날 오전, 담당 공무원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연락이 왔다. 민원을 제기한 사람도 사과한 후 돌아갔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에 전화를 드렸는데, 바쁘다고해서 금방 끊어야 했다.

여러 갈래로 분석해 보았다. 그러나 그 늦은 시간에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길래 고래 힘줄보다 더 질겼던 민원이 하룻밤 사이에 풀렸는지 알아낼 수는 없었다. 몇 년 후, 그분을 뜻밖의 장소에서 만났다. 다짜고짜 소매를 붙잡고 오래된 일이니 그 때의 과정을 설명해 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중후장대한 대답이 돌아왔다. ‘첫째는 사람을 돈보다 소중하게 여길 것, 둘째는 불리해도 정직할 것, 셋째는 한 번 믿으면 끝까지 품을 것, 넷째는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 것’을 역설했다. 그리곤 끝이었다. 몇 번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금언이었다. 오래전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공치사를 하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