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같은 K할머니께
매화 같은 K할머니께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2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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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같은 K할머니께

♫시와 함께 노래와 함께 살다간 매화같은 여자여~ ♫

그곳에선 아픈 다리 상관없이 마음껏 노래 부르실 수 있나요? 할머니가 매화와 함께 떠나간 지도 어느새 1년이 훌쩍 흘렀어요. 아직도 가끔 K할머니 어디 있느냐 찾는 어르신에게 지금도 병원에 계시다고 말씀드려요.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나신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하겠거든요.

매화꽃이 피었다고 남쪽에 살고 있는 지인이 SNS에 사진을 올렸어요. 예쁜 꽃이지만, 그래서 다들 꽃샘추위도 잊게 한다고들 하지만 저는 매화꽃이 너무 아파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일에 몰두하면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했지만 제대로 만져주지 않은 상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툭 터져 모두를 당황하게 하죠. 제가 지금 그래요.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릴까, 어딘가 뚜렷이 아픈 것도 아닌데 왜 몸이 축축 처질까. 아마도 그건 2월 끝무렵 매화가 피었기 때문일 거예요. 예쁜 매화꽃이 피었지만 그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정작 없기 때문인가 봐요.

작년 설 명절이 끝나고 센터 선생님은 늘 그렇듯 할머니를 모셔 오기 위해 아파트로 향했죠. 매일 가는 집, 매일 타는 엘리베이터, 매일 두드리는 문. 그러면 할머니가 여지없이 문을 열었고, 선생님은 속옷만 입고 있는 할머니를 챙기며 서로에 대한 잔소리가 수다처럼 이어졌지요. 그날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문이 열리지 않았대요. 선생님은 가지고 있던 비상키로 문을 열었지만 걸쇠 때문에 제대로 열리지 않았어요. 조그만 틈으로 누워있던 할머니가 보였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일어나지 않아 순간 얼음이 되었대요.

경찰과 구급 대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들어갔더니 할머니는 의식이 없고, 주변엔 대변과 소변이 뒤엉켜 있어 다들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지요. “죽었다고 단정 짓지 마세요!”라고 선생님이 소리 지르자 나 아직 안 죽었어라고 말하듯 몸이 까딱 움직였고,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어느샌가 달리는 구급차 안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코로나가 한창이던 그 시기, 모든 병원의 응급실은 아무리 애원을 해도 할머니를 받아주지 않았어요. 감염 우려가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는 거예요. 아니 그럼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도 그냥 내버려 두란 말이냐, 읍소해도 소리를 질러도 어쩔 수 없다는 말에 화가 났어요. 코로나 그 녀석은 우리에게 강제로 마스크를 쓰게 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의 마음까지 모두 할퀴어 놓았어요.

겨우겨우 한 병원이 응급실을 열어주었고, 이제 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응급실의 한 의사가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너무 늦게 오셨어요”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할머니를 두고 저는 또 다른 할머니들 앞에서 웃었어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함께 노래도 부르고, 수다도 떨고, 별로 웃기지 않는 이야기에도 크게 웃고. 웃는 제가 슬펐어요.

K할머니!

여기 노인주간보호센터라는 곳은 참 힘들어요. 어떤 날은 자식보다 낫다며 고마워하시지만 또 어떤 날은 망할 년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무너져요. 본마음이 아니다, 치매라는 질병이 그렇게 만든 거다고 다독여도 우리도 사람인지라 어르신들이 미울 때가 있어요. 그 때 K할머니를 생각해요. 내일 이 어르신을 K할머니처럼 갑자기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샌가 미운 마음이 사라져요. 그래서 우리 모두 속상하거나 힘든 마음이 들어 어르신들이 미워지려 할 때 이런 마음을 갖자고 약속했어요.

할머니 집을 정리하러 갔어요. 이런저런 짐을 챙기다 저는 다시 마음이 무너졌어요. 온통 벽에 제 이름이 적혀 있잖아요.

이혜주,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 010-****-****.

안방 벽에도, 마루 벽에도, 부엌 벽에도, 식탁 위 유리 속에도, 텔레비전 앞에도, 화장대에도. 눈에 띄는 곳에는 제 이름과 센터 이름, 핸드폰 번호가 있었어요.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할머니가 보였어요.

흑백 사진 속 뾰족구두에 미니스커트, 진한 화장의 할머니도 봤어요. 명동 멋쟁이셨다는 말씀이 농담이 아니셨더라구요. 할아버지와 팔짱 끼고 다정히 데이트하는 사진도 봤어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말씀도 사진이 증명해 주었어요.

할머니는 저를 항상 혜주 양~이라고 부르셨어요. 할아버지 마음을 녹이던 그 애교 많은 목소리는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았어요. 혜주 양~이라고 부르시면 저는 귀가 간지럽고 마음이 살랑거렸어요. 그 상냥한 목소리가 지금도 가끔 들리는 것 같아요.

여름이면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사주셨지요. 메로나, 바밤바, 돼지바, 우린 어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같냐며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웃음이 났지요.

얼마 전 한라산에 다녀왔어요. 올라갈 땐 아프지 않던 다리가 내려올 땐 정말 이게 내 다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아팠어요. 마치 무릎 속에 연골은 사라지고 유리조각이 성글성글 굴러다니는 것 같았지요. 어기적어기적, 뒤뚱뒤뚱 내려오며 할머니가 떠올랐어요. 아... 이렇게 아프셨겠구나. 병원에서도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는 관절염, 진통제로만 참았던 그 고통 너도 한번 느껴보라고, 얼마나 아픈지 너는 정말 몰랐을 거라고 그 날 호되게 배웠지요.

여자는 죽어서도 여자야 라는 말도 생각나요. 아흔을 바라보면서도 항상 화사하게 화장하고, 액세사리로 포인트를 주며, 세련되게 옷을 입으려고 노력하셨잖아요. 다른 할머니들이 아직도 일명 부라자를 하고 거들을 입는 할머니를 보며 놀라기도 했지요.

기초화장은 물론 파운데이션에 립스틱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저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저는 아예 화장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마스크를 벗게 되는 요즘, 할머니 생각하며 팩트를 꾹꾹 누르고, 핑크색 립스틱을 고르고 있어요.

저 솔직히, 할머니가 좋을 때가 많았지만 힘들고 미울 때도 있었어요. 미워했던 순간들 때문에 제가 많이 괴로웠나 봐요. 기억이 차츰 더 흐릿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데도 같은 얘기를 반복하실 때 지치기도, 진이 빠지기도 했어요. 차량운행 시간에 맞춰 빨리 움직여 주셔야 할 때도 있는데 그게 안되시니 제 기준에서 답답해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너무 죄송해요. 순간순간의 미움들이 할머니를 더욱 아프게 한 건 아닌지, 그래서 작별 인사도 없이 그리 서둘러 가신 건 아닌지 두려워요.

세상 제일 멋쟁이던 할머니가 화장은커녕 점점 씻는 것을 잊어갈 때 가슴이 덜컥했어요. 기억하는 시간대도 더 짧아지고, 걸을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소리가 잦아지면서 제 마음이 불안했어요. 신경과 의사가 보여 준 할머니의 뇌 사진도 슬펐어요. 자꾸 말라가고 엉성한, 텅 비어가는, 가뭄의 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 머릿 속 사진이라니. 그래 미워하지 말아야지, 너도 늙으면 장담 못 해라고 끊임없이 곱씹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시간은 흘러갔어요. 마음이 답답하면 책방에 갔어요. 그곳에서 글쓰기 모임을 소개받았어요. 모임의 리더분이 생각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자고 주제를 정해주셨어요. 생각한 것도, 준비한 것도 아닌데 K할머니가 떠올랐어요. 남들은 상대방에게 보내는 형식인데 저는 할머니가 저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써 보았어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 혹은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요. 소리 내어 읽어보라 해서 읽는데 꺼억꺼억 눈물이 났어요.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울었어요. 저는 할머니를 잊은 줄 알았는데 제 몸과 마음과 영혼에 할머니가 살아있었나 봐요.

“혜주 양~

난 이제 여기서 그 많은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좋아요. 내가 늘 약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기억을 잘 못했잖아요. 그 리고 나 이제 막 뛰어다녀요. 안 믿기죠? 수술도 어렵다는 그 지독한 관절염, 그거 이승에 두고 여기 왔잖아. 뒤뚱뒤뚱 걷는 대신 내가 젊었을 때 신던 뾰족구두 챙겨 온 그것 신고 다녀요. 아~여기 오기 전 혜주 양 준다던 스커트도 어쩌다 보니 내가 가져왔네. 혜주 양 멋쟁이로 만들어 줄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 이제 내가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어라고 늘 말할 때 혜주 양이 아직 멀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오게 될 줄 나도 미처 몰랐네. 그래도 오랜 인연이 있는데 말이지. 마지막 꼭 껴안고 인사도 제대로 하고 왔어야 했는데 정말 속상하고 미안해요. 우리 동무들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줘요. 하루하루 사그라드는 기억 속에 그래도 나를 붙잡고 있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신나게 ‘매화 같은 여자’를 함께 부르자고”

K할머니가 주무시는 그곳에 가서 저는 또 울 수밖에 없었어요. 왜 하필 봉안담 이름이 매화였는지. 늘 매화 같은 여자를 부르셨기에 이렇게 매화 곁에 주무시나 봐요. 할머니는 매화 같은 여자예요. 아니 매화 그 자체예요. 매년 매화가 피면 이제 울지 않으려고요. 힘들어하지 않으려고요. 혜주 양 힘내라고 K할머니가 응원하는 거라고 생각할께요.

고마워요 K할머니.

*2022년 2월 초, K할머니는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무연고자 장례를 치른 후 봉안담에 안치할 때 봉안담 이름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생전에 즐겨 부르시던 노래, 최영주 님의 '매화 같은 여자'처럼 매화라는 이름의 봉안담이었거든요. 매화 꽃 가득할 하늘나라에서 뾰족구두 신고, 그렇게 그리워하셨던 할아버지와 예쁘게 데이트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