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feat. 휴대폰, 연희동 그리고 막내딸 친구
너와 나의 연결고리 feat. 휴대폰, 연희동 그리고 막내딸 친구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12 0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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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재중 전화 57, 미확인 문자 135

도대체 전화가 왜 안되냐는 Y 어르신의 하소연에 휴대폰을 살펴보니 방전되어 있다.
충전 후 다시 켰을 때, 이쯤 되면 차라리 휴대폰이 없는 게 더 편하시지 않을까 싶었다. 청력이 약해져 벨소리를 잘 듣지 못하시고, 문자 확인 방법을 모르시니 괜히 버튼을 잘못 눌렀다가 보이스피싱성 문자에 낭패를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얼마 되지 않는다지만 월 요금도 아깝게 느껴진다.

그런 나의 마음을 눈치채셨을까? “우리 큰 아들이 전화한 것 같은데... 원장님이 다시 연결해 줄래요?” 말씀하신다.

우리 센터 어르신들 중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시는 절반 이상이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다. 주로 자녀들과 통화를 하기 위함인데 자주 사용하는 단축번호를 누르면(1번 큰아들, 2번 서울딸, 3번 막내사위 등등) 그립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딱 한 분, Y 어르신의 휴대폰은 제 역할을 못한다. 귀가 살짝 어두워서 벨이 울렸는지 모르신다. 언제 만지셨는지 진동이나 무음모드로 종종 변해있다. 이렇게 되면 전화가 온건 지 더 알 수가 없다. 글을 잘 모르시는 어르신에게 문자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그 이상 아니다. 제 역할을 못하는 휴대폰은 웬일인지 방전도 빨리 된다.

어르신, 휴대폰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집에 두고 오시면 어때요?”
“...
우리 아들이 언제 전화할지 모르잖아요...”

,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Y 어르신 손에서 떠난 적이 없는 휴대폰.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때도, 화장실에 가실 때도, 식사를 하실 때도, 누워 계실 때도, 담소를 나누실 때도 손에 진물이 날 것처럼 꼭 잡고 계셨다.

그렇다. 어르신에게 휴대폰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아들 손이고, 딸의 손이다. 휴대폰을 놓는 순간 자식들의 손을 놓는 것이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식들의 손은 여전히 어르신께 휴대폰으로 연결되어 있다.

2. 아직 어르신들에게 노인주간보호센터는 낯선 곳

혹시나 자녀들이 나를 버리는 건 아닌지 불안한 공간이다. 그래서 상담은 늘 힘들고 진이 빠진다. 그날 상담도 그랬다. 

주간보호센터에 보내고 싶은 자녀와 '내가 왜 그런데를 가느냐'며 마뜩잖은 표정의 어르신. 눈치게임 중간에서 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어르신의 마음 절반 이상이 내 쪽으로 기울어 졌다 싶지만 아직 부족하다(강력한 안정감, 그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행정 절차상 어르신의 신분증을 살피다 현재 거주하는 안성이 아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주소지가 돼 있는걸 보고 이거다 싶었다!

어머, 어르신 연희동 사셨네요. 저는 근처 홍은동 살았어요!” 어르신의 눈이 반짝인다.

"선생님이 연희동을 아시는구나!"

그럼요. 저 홍은동, 그리고 홍제동에서 오랫동안 살았어요. 정말 반갑네요 어르신!”

뭔가 확인이 더 필요하셨나?

거기 유명한 상가 있는데 그 이름 기억해요?”

아유 그럼요. 유진상가 말씀하시는 거죠? 저 어릴 때 엄마랑 항상 거기서 시장 봤어요상가 옆 가파른 고가도로도 유명하잖아요. 버스 타고 올라가면 마치 놀이동산 온 것 같은 그 고가도로요
한참 연희동과 그 주변 특징 이야기로 대화의 생기가 넘쳤다. 어르신이 드디어 자녀에게 한 마디 하신다.

나 이 원장 따라가련다

그렇게 나와 연희동으로 연결된 어르신은 신이 나서 내일 아침 센터에 가져가실 가방을 벌써 챙기신다.

3. “저기~선생님, 우리 집 알아요? 나 지금 우리 집에 데려다줄 수 있어요?”

K어르신은 혼자 잘 지내셨지만 치매 진단 이후 급격히 인지기능이 약화되면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시고, 밥을 드셨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신다. 지금은 딸과 함께 지내시는데 딸 외에 다른 자녀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신다.  우리 센터에 다니신 지 2년이 되어가지만 항상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나를 대하신다. K어르신에게 매일 아침은 항상 새롭고 낯설다. 불안한 K 어르신은 오후가 되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

그럼요~당연히 알지요. 어르신 막내딸 영희와 제가 제일 친한 친구잖아요. 안 그래도 아까 영희와 통화했어요. 영희가 우리 엄마 재밌게 잘 놀다가 이따 집에 꼭 좀 모셔다 줘라고 부탁했어요. 그러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나, 내 딸과 가장 친한 친구인데 내가 몰라봐서 미안해요

세상 모든 근심을 혼자 짊어지신 것처럼 무거웠던 어르신의 표정이 금세 환해지면서 딸 자랑으로 이어진다. 딸의 친구가 옆에 있다는 든든함은 마치 딸이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시나 보다. 그렇게 우리 셋은 하나로 연결된다.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 어떤 끈은 철사처럼 강력하게, 또 어떤 끈은 거미줄처럼 희미한 듯 보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물건이든, 동네이든, 사람이든 상관없다. 특히 우리 어르신들처럼 가족과 떨어져 있거나 기억이 흐릿해져 불안할 때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은 그 어떤 약보다 치료 효과가 뛰어나며, 그 어떤 재활 프로그램보다 일상의 활력이 되고, 그 어떤 심리상담보다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연결은 이렇게 강력하며, 생기 있고, 다정하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과 더욱 연결되기 위해 다양한 기종의 휴대폰을 상시 충전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충전기를 준비한다어르신들의 고향, 예전 직업, 좋아하는 음식, 습관, 18번 노래를 파악한다삼 남매든 오 남매든 칠 남매든 자녀들의 이름을 모조리 외운다. 그리고 그들의 제일 친한 친구가 된다.

이렇게 어르신과 나의 연결고리는 계속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