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무섭다...?
세상살이가 무섭다...?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3.06.2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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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요즘 세상사는 것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힘든 세상살이야 어떻게든 견딜 수 있겠는데, 품속 깊이 파고드는 두려움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사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흔하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세상사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조금 낯설었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친구다. 남들이 학생운동이랍시고 떠들면서 머리띠를 두르고 전두환 퇴진을 외치던 시절에도 도서관에서 책이나 보던 친구였다. 그가 어렵게 내놓은 말 속에는 요즘 현실에 대한 낙담과 무력감이 한보따리 넘게 담겨 있었다. 그는 희망 없는 현실이 두렵다고 했다.

지금 온 나라에 막연한 두려움이 편만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문제나 기후위기에 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원치 않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당장이라도 자신의 생활공간에 국가권력의 강제력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꼭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든 것이다. 물론 지난 시절의 강압적인 정치세력이 주도했던 공포정치가 재현될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도 일반국민들이 비슷한 두려움의 정서를 느끼고 있다면, 이는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현재의 정치와 사회현상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대전신학교대학교 임채광 교수의 추천으로 다시 읽게 된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라는 책을 보면, 일반백성들이 가지게 되는 두려움에 대해 ‘지배 엘리트의 정치활동은 은행저금식 기법을 이용하여 피억압자를 침잠된 의식상태에 머물게 함으로써 수동성을 조장하고 그 수동성을 악용하여 그들의 의식 속에 자유의 공포를 증폭시키는 구호들을 주입하려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지배 엘리트들은 국민의 의식 속에 다양한 방법으로 두려움을 주입시켜서 스스로 조심하게 할 뿐만이 아니라 지배 엘리트를 향한 저항감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50년 전의 책 내용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두려움의 사전적 의미는 ‘위협이나 위험을 느껴 마음이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느낌’이라고 했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국민들이 생활한다면 더없는 비극이다. 집권여당과 담당기관은 범죄혐의가 있어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조사나 수사를 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그동안 권력기관들이 보여 준 미심쩍은 행태 때문이다.

국민의 안정보다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모습을 국민들은 숱하게 보았다.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정치가 무엇보다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