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회 중인 치매 어르신, "당신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배회 중인 치매 어르신, "당신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17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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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르신은 왜 집을 나가셨을까
출처 : 픽사베이
출처 : 픽사베이

충성
큰 목소리로 거수경례를 하시는 L어르신의 얼굴이 해맑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센터 전체를 훑어보신다. 뒷짐을 지신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생활실 주변을 걷는다. 한 바퀴, 두 바퀴,,, 벌써 열 바퀴.

그렇다. 당신이 치매 어르신에게 아무 목적도 없이 어슬렁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말하는 그 배회가 시작된다. 센터를 빙빙 도는 모습을 보면 내 머리도 어지럽다. 다른 어르신들의 핀잔도 들린다. 정신 사나우니 가만 좀 앉아 있으라고.

돌봄 현장에서 보호자(가족)들과 종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이 바로 어르신이 배회하실 때다.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자꾸 집 밖으로 나가신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지남력이 약화된 어르신은 길을 헤맨다. 간혹 넘어지고,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가 된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어 온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한다.

A어르신은 매서운 추위 속에 내복 차림으로 집을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르신이 내복 차림이었다는 것이다. 당신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다행이라고 말하냐고 할 것이다. 내복만 입고 나가셨기에 이를 이상하게 살핀 사람들이 안전하게 보호해 주었다. 만약 제대로 옷을 갖춰 입었다면 가끔 울리는 ‘00 어르신을 찾습니다문자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K어르신은 밤과 새벽 사이 집을 나가려고 해서 가족들이 잠금장치를 여러 개 해두었다. 복잡한 잠금장치를 풀지 못한 어르신은 창문을 선택했다. 아파트 2층에서 뛰어내린 어르신은 온몸이 부서졌다. 더 이상 걷기 어렵게 되어 요양원에 입소했다.

H어르신은 센터 문 주변에서 매일 서성인다. 함께 활동에 참여하자고 권유하는 요양보호사에게 차마 글로 적지 못할 온갖 욕설을 퍼부으신다. 한순간에 센터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치매 어르신들은 왜 배회를 할까? 정말 그 뜻처럼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움직임일까?
하지만 필자가 5년 동안 만난 어르신들의 움직임에는 목적도 있고 의미도 있었다. 그러니 단순한 배회가 아니다.

L어르신은 센터에 나오는 것을 출근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치매 진단을 받기 전까지 작은 공장에서 일하셨고, 여전히 자신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야 하는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냥 걸으시는 게 아니라 비뚤어진 의자를 바로 하고,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셨고, 자신이 뭔가 해야 할 게 없나 두리번 두리번 거리셨다

목적이 있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르신은 일하는 중이셨다. 그래서 우리는 어르신을 반장님이라고 호칭했다(예전 직장의 직책이었다). ‘일하실 때마다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일'이 길어지만 이제 휴식시간이라고 말씀드렸다.

통했다. 어르신의 배회가 줄어들었고, 다른 분들과의 상호작용이 늘었다.

내복 차림으로 집을 나갔던 A어르신은 강원도에 있는 고향으로 가야 했고, 창문으로 뛰어내린 K어르신은 보고 싶은 막내아들을 만나야 했다. 센터 문 주변을 서성이던 H어르신은 예전에 자신이 살던 집에 우편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르신들의 배회 목적은 알게 되었지만 아직 우리는 A어르신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른다. 가족과 상의 후, 집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복잡하게 해 둔 상태에서 일단 배회가 멈추었다. 그러나 언제 다시 시작될지 가족들은 두렵다. K어르신은 실마리를 찾기 전 요양원에 가셨다. 제일 아쉽다. H어르신은 나와 함께 직접 예전에 사시던 집에 다녀왔다. 진작 이유를 살폈더라면 우리 선생님들이 욕을 좀 덜 먹었을 텐데 말이다. 눈으로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우편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어르신은 그 뒤 배회가 사라졌다. 오히려 나에게 한풀이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찬찬히 살피고, 관찰하고, 보호자와 이야기하며 실마리를 찾는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치매 어르신의 두서없는 말속에서, 한숨과 스트레스로 응어리진 보호자의 자조 섞인 이야기 속에서 말이다. 실마리를 찾으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어르신 마음을 알아가야 한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여러 방법을 찾다 보면 반짝하고 길이 보인다.

출처 : EBS 지식채널e
출처 : EBS 지식채널e

독일의 한 요양원에서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 치매 어르신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치매 어르신들의 실종을 막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요양원 앞에 버스가 오지 않는 버스 정류장을 설치한다. 어르신들은 본능적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나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어 했는데 이 정류장으로 안내하여 버스를 기다리게 하고, 시간이 흘러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올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히라마쓰 루이라는 의사는 그의 저서 '치매 부모를 이해하는 14가지 방법'에서 치매로 인한 배회에는 대부분 목적이 있다면서 가장 먼저 배회하는 사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데 이유가 없을 수 없다.자신만의 목소리로, 행동으로, 온몸으로 표출하지만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을 계속 알아가려고 한다. 내가 듣지 못한 말은 없는지, 절박한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꿈틀거리는 본심을 지나치진 않았는지.

찬찬히 알아가면 언젠가 우리 어르신만의 버스 정류장을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이다.

! 배회라는 말부터 바꿔야겠다.
어르신의 움직임에는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다가갈 때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