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나에게 주신 선물
신(神)이 나에게 주신 선물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3.07.2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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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나에게 주신 선물 중의 으뜸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다닐 때부터다. 검정고시를 통해 늦은 나이에 들어간 대학에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좋은 교수님과 벗들이 많았다. 세상 보는 눈을 새롭게 열어준 동아리 식구들과 헌법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눈물로 가르쳐주신 교수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신학대학에 편입해서 공부할 때도 ‘사람을 중심에 세워야 한다’는 교수님과 그 가르침을 오늘의 현실에 구현해보려고 애쓰는 동료들이 있었다. 복지관의 책임자가 되고 이런저런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을 때는 함께 일한 직원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큰 은혜요,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선물은 ‘기회’다. 대전으로 올라와 신학대학에 편입한 것을 시작으로 교계와 사회복지계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된 배경에는 ‘기회의 문’ 앞에 세워주신 신의 은혜가 있었다. 원래 나는 남 앞에 나서는 일을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전개되는 상황이 내가 나설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회복지계에서 분에 넘치는 역할을 맡게 된 것도, 그 과정에서 집중해야 할 과제를 볼 수 있었던 것도, 해법의 대강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내 능력이 아니라 신의 은혜요 선물이었다고 믿는다. 돌이켜보면 다양한 기회를 만날 수 있도록 단계별로 탄탄하게 훈련시켜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 번째 선물은 ‘용기’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원래 적극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시골사람이라서 뒤에 서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대학 이후,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이 서면 두려운 마음이 없어졌다. 가끔은 앞뒤를 가리지 않은 적도 있다. 내게는 절대적인 뒷배가 있다는 묘한 자신감이 동력이었다. 실제로 고비마다 신이 용기의 근원이 되어 주셨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숙제가 아니라 ‘소명(召命)’으로 보이게 했다. 물론 결심에 이르기까지는 번민이 많았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하면 일을 마칠 때까지 뒤돌아보질 않았다. 무리한 적도 있지만 성공적인 경우가 더 많았다. 신이 선물로 주신 용기의 결과들이다.

신이 주신 선물인데도 시건방을 떨다가 꼬꾸라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다시 설 수 있도록 곁을 지켜준 고마운 친구들이 있었다. 신이 주신 기회로 보여서 능력 밖의 일을 덥석 물었던 일도 있다. 그때는 내 기회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빨리 주셔서 어렵지 않게 털어낼 수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욕심을 용기라고 에두른 적도 있었는데, 이 과정도 하루이틀사이에 일이 어그러져서 힘의 낭비가 크진 않았다. 은퇴 이후에는 다른 차원의 선물을 주셨다. 감사한 일들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살피면서 생활하는 방식인데, ‘천천히’와 ‘덕분에’를 생각과 행동의 앞자리에 두는 것이다. 잊지 않고, 따박따박 걸어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