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인사해 주세요 "안녕"
말씀으로 인사해 주세요 "안녕"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31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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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어르신과 어떻게 대화를 나눌까?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 중 몇몇 분들의 치매 증상이 조금씩 악화되는 모습이 보인다. 그중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두 분(C할머니, L할머니)이 계신데, 모두 어느 순간부터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C할머니는 청력이 매우 약하다. 보청기를 사용해도 잘 듣지 못하셔서 아예 착용하지 않으신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입모양을 크게 벌리면 가까스로 몇 마디 알아들으신다. 그래도 오랜 신앙생활을 하셨던 이야기, 양장점을 운영했던 이야기, 미국에 사는 자녀 이야기 등 매일매일 다른 분들과 말씀을 나누셨었는데 요즘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L할머니는 내향적이어도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 옛날 옛적 이야기가 쏟아졌었다. 요리를 맛있게 하는 방법, 순대 장사를 했던 고된 시절 이야기, 함께 사는 아들 내외 자랑 등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는 분이셨나 싶을 정도였었다그런데 이제 두 분 모두,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매일 아침 어르신들 한분 한분께 무릎을 낮추고,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드린다그러면 우리 원장 밤새 안녕하셨냐”, “오늘따라 더 이뻐 보인다”, “밥은 먹고 다니냐등 다정한 말씀을 해주신다. 그러나 그 두 분 어르신만 화답이 없다.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절절히 느껴진다. 입술이 움찔움찔 하지만 터지지 않고, 인사를 드릴 때 반가운 표정이지만 동공이 흔들리며,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적절한 단어나 표현 방법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치매 악화 증상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잠이 늘거나, 망상이 생기거나, 식사량이 줄거나, 우울감이 깊어지거나, 갑자기 화를 내거나. 그중 인지저하가 더욱 심해지면서 기억력이 약화되고 언어표현도 현저히 줄어든다.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초기에는 주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에서 어려움을 보이다가 점진적으로 언어기능과 판단력 등 다른 여러 인지기능의 이상을 동반하게 되고 결국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가장 힘들면서 쉬운 방법은 바로 대화이다. 쉽다고 말한 것은 대화가 특별한 기술이나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다고 표현한 것은 나만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도 말을 하는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지난한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르신의 단 한마디를 듣기 위해 수차례 대화를 시도한다.

어젯밤 어떤 꿈꾸셨어요?”, “오늘 아침 드신 반찬이 뭐예요?”, “파란 하늘을 보니 어떤 마음이세요?”, “저 오늘 달라진 것 보이시나요?”, “일요일인 어제 무엇하며 보내셨어요?”

대답을 기다린다. 물론 쉽게 나올 리 없다.

 

C할머니와 대화하기 위해 부탁드린 글
C할머니와 대화하기 위해 부탁드린 글

 

더 쉬운 질문으로 바꿔야겠다안녕하세요?” 크게 인사드린다. 청력이 약한 C할머니가 이해하셨는지 빙그레 웃으신다. 웃음으로 끝나게 할 수 없다. [말씀으로 인사해 주세요 안녕’]이라고 쓴 종이를 들었다아하~우리 원장이 내가 말로 인사하길 기다리는구나 싶으셨는지 안녕하고 말씀하신다. 이 말을 듣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목에 걸린 가시가 쑥 내려간 기분, 변비가 해결된 기분이랄까. 함께 있던 직원들이 ~”하고 감탄한다. '저에게도 인사해 주세요' 애교 섞인 부탁이 이어진다. 안녕 안녕 안녕. C할머니의 안녕이 쏟아진다.

자 이제 L할머니 차례이다. 박수를 받고, 애교를 부리는 직원들을 보셨으니 나에게 어떤 말을 하셔야 하는지 눈치채셨을 거다. 다시 크게 안녕하세요?” 인사드리니 바로 안녕하세요?” 화답해 주신다. L할머니 목소리를 얼마 만에 듣는 건지 모르겠다. 이분께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안녕하는 순간 다른 어르신들이 크게 박수를 쳐주신다. 모두 표현은 안 하셨지만 L할머니를 안타깝게 여기고 응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비록 어젯밤 꿈 이야기를 듣지 못해도, 오늘 아침 드신 반찬이 무엇인지 여전히 미궁 속이여도, 파마한 내 머리를 못 알아 봐주셔도 괜찮다. '안녕'이라고 인사해 주셨으니 언젠가 나와 같이 신나게 수다를 떨어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탁드린다.

말씀으로 인사해 주세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