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가 공격받고 성평등 예산이 삭감되는 나
페미니스트가 공격받고 성평등 예산이 삭감되는 나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3.11.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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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에 부쳐

11월 25일은 1999년 유엔총회에서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이다. 그러나 여성폭력은 24년간 추방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지난 4일 경남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이 2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스스로 ‘남성연대’ 소속이라고 밝힌 이 남성은 “머리가 짧은 것을 보니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며 폭력을 행사했다. 숏컷을 한 여성은 모두 페미니스트일 것이라는 넘겨짚기와, 페미니스트인 여성은 때려도 된다는 위험한 인식이 드러난 증오범죄였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여성 유명인에게 특정한 헤어스타일을 두고 페미니스트라며 공격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 폭행 사건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다수의 여성들이 #여성_숏컷_캠페인 해시태그를 통해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일 뿐’이라며 자신의 짧은 머리를 인증하는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긴 머리도 짧은 머리도 죄가 없다. 동시에, 페미니스트든 아니든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정치는 페미니즘의 의미와 성평등의 내용을 합의하기는커녕 정책과 공언으로 혐오를 양산하고 그 논의과정과 결과를 일정한 세대와 커뮤니티 안에 방치해왔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성평등이라는 가치는 ‘논란’과 ‘갈등’의 대상이 되었고, 페미니스트는 ‘사상범’으로 악마화되었으며, 여성은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특정 성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납작해졌다. “여성혐오나 차별은 망상에 가까운 근거 없는 피해의식”이라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나 “구조적 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무책임한 혐오 정치가 여성폭력을 부추기고 재생산했다.
 
그런데 이제라도 잘못을 주워 담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바빠야 할 정부는 오히려 2024년도 예산안에서 여성폭력 방지·피해자 지원 예산 142억 원을 삭감했다. 전문 상담소를 대폭 줄이고 통합상담소를 만들어 실적과 효율을 높이겠다는 계획 속에 여성폭력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여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방조하며 예방과 근절의 기회를 내팽개쳐온 정치가 사후적인 지원에 대한 의지조차 저버린 것이다. 유엔 가입국으로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기념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여가부 예산안을 완전히 새로 쓰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여성폭력 추방은 불가능할 것이다. 모든 피해자에게 연대의 인사를 보내며, 여가부 예산안 전면 백지화를 촉구한다.


2023년 11월 21일
기본소득당 여성위원장 노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