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말’만 하는 사람
‘자기 말’만 하는 사람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3.11.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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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집에서 TV를 보다가 빵 떠진 일이 있었다.

LA에도 한국어 유선채널이 있어서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무심결에 기독교채널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화면에 나타난 어떤 교회 목사의 설교내용과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줄곧 기쁨을 강조했다. 신앙인이 누려야 할 다양한 기쁨이 있다면서 기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기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가 읽힐 정도로 표정이 어둡고 딱딱했다. 게다가 목소리에는 쇳소리가 섞여 있어서 듣는 것마저 힘들고 거북했다. 기쁨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기쁨하고는 도대체 동떨어져 있었다. 채널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문득 한 인물이 떠올랐다.
사회복지계에서 일하다가 만난 인물인데, 현안마다 해괴한 논리로 대안들의 발목을 잡은 특이한 인물이다. 그도 현장에 있기는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항상 진지하고, 표정에는 결연한 의지가 넘친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것 같은 공허함이 묻어있었다.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이해하고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았다. 뭐라고 답변하기도 민망한 질문들이었다. 그 친구를 보면서 기괴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주변의 평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말만 지껄이는 ‘지겨운 인물’이라는 게 중평이었다.

유난히 ‘자유’를 강조하는 한 인물도 생각난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는 독특한 몸짓으로 자주 웃음꺼리가 되기도 한다. 그가 강조하는 자유라는 것도 자기와 주변사람들만의 자유를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사실 그가 자유를 입에 달고 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유를 보장하고 권리를 옹호하는 일과는 한참 떨어진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멀쩡한 자유를 난데없는 방향으로 언급해서 나라를 뜨악하게 만들고 있다.

원래 그와 한통속인 사람들은 자유를 싫어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오만과 독선과 잇속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 때문에 온 세상이 버벅대고 있다. 입으로는 평화를 내세우면서 평화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그 핵심가치들을 모조리 둘러엎는 무리들도 많다.

회의를 한다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염없이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한 시간 동안의 회의시간에 59분을 자기 말만 해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미국의회에서 예산을 둘러싸고 벌이고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말 같지도 않은 싸움을 보면, 벽창호들은 나라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말이 많으면 언행의 불일치는 필연적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말을 조금만 줄이면 좋겠다. 그러면 탈도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