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이 다른 인어공주라 문제가 아니다
피부색이 다른 인어공주라 문제가 아니다
  • 백수정(대중문화 비평 활동가)
  • 승인 2023.12.04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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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2023)
감독 - 롭 마셜
미국 | 어드벤처 외 | 2023.05.24 개봉 | 전체관람가 | 135분

 

디즈니가 실사로 리메이크 한 2023 <인어공주>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한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서 흥행하지 못했고, 평가도 그리 좋지 않다.

디즈니에서는 인종차별을 그 이유로 들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주인공의 피부색이 이 영화에 대한 평가와 흥행을 좌지우지할 만큼 그렇게 결정적인 것이었을까?

주인공의 피부색이 문제였다면 디즈니의 <포카혼타스>, <알라딘>, <모아나>, <코코>, <뮬란>, <개구리 왕자>, <엔칸토>, <라야와 마지막 드레곤> 등 유색인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의 좋은 평가와 흥행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어공주>를 비롯한 디즈니 초기의 작품들은 다양한 나라의 구전설화들을 각색해 영상으로 옮긴 애니메이션들이다. 프랑스의 <신데렐라>와 <미녀와 야수>, 독일의 <백설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 <라푼첼> 스코틀랜드의 <메리다와 마법의 숲> 등이 그것이며, <인어공주>는 덴마크의 구전설화를 모티브로 안데르센이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더해 쓴 동화가 원작이다.

이 원작들이 18세기 전·후에 쓰인 고전들이다보니 아무리 각색을 해도 현재의 정치, 사상, 가치관과의 온도 차는 당연하며 그래서 공감보다는 이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왕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시대, 계급뿐 아니라, 남녀, 인종 등의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대의 서사와 캐릭터가 과연 요즘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어떤 공감을 주고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살고 있고 살아갈 세상, 평등과 다양성의 존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과의 접점이 없는 메시지에서 어떤 꿈과 희망을 품으라고 말할 수 있을지.

디즈니도 이런 작품들을 리메이크 할 때마다 시대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변화를 시도했다. 그 중 하나가 ‘젠더리스’, 특히 남성에 의해, 남성을 위해, 남성만을 바라보는 의존적이고 소극적이며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 캐릭터, 주인공인 공주 캐릭터를 현실과 밀착시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지만 번번이 원작의 중요 지점들에서 원형그대로 복원된다.

 

2023 <인어공주> 역시 원작과 달리 에리얼은 아버지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하고, 바다 위 세상을 동경하고 모험을 즐기는 소녀캐릭터로 시작한다.

무엇보다 원작의 에리얼이 스커터(갈매기)와 세바스찬(게)이 마녀와 싸워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올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여성이었다면, 2023의 에리얼은 직접 마녀와 싸워 자신의 목소리를 쟁취하고 난파선을 이용해 마녀를 소멸시키는 투사 에리얼로 변신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작의 에리얼이 겹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건 행동의 동기와 목적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에 빠져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주고, 인어 자신의 정체성이자 일부인 지느러미를 없애는 데 별 반기나 저항 없이 동의하는 에리얼. 원작과 동일한 갈등요소와 동일한 선택을 하는 여주인공에서 원작과 다른 여성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상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당연히 자유를 갈망하고 불의에 맞서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투사 에리얼을 구현하려는 야심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사랑밖엔 난 몰라 캐릭터, 사랑하는 남자를 얻기 위해 자신을 잃는 것쯤은 당연하고 감수하는 것이 여성의 숙명인 양 남성의 세계로 편입되는 것을 당연시했던 희생을 강요당한 전통의 여성상이 투영된 에리얼에 안착한다.

 

종이 다른 둘의 결합인데, 왕자인 남성은 원작에서도 그렇듯 2023년에도 아무런 대가나 희생을 치루지 않는데 말이다.

무엇보다도 왕자와 함께 바다 위 세상에서 살고 싶지만, 자신은 인어이고 지느러미로는 함께 산책도 할 수 없고 돌아다닐 수도 없으며 춤출 수도 없다고 절망하며 부르는 에리얼의 노래에서 디즈니의 정체됨을 다시 실감했다. 원작으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다수와 다른 모두는 결함이고 비정상으로 보는 사고가 저 밑바닥 이니 디즈니 왕국 전체에 서식하고 있다면 더 이상 기대할 가치와 희망이 있을까?

다리로만 산책하고 돌아다니며 뛸 수 있고 춤출 수 있다는 인식은 어느 시대나 편협한 사고와 차별을 부추기는 아주 잘못된 인식이다.

다수 중심의 세상으로 통치하고 유지하기 위해 이 잘못된 인식을 보편성으로 정상성으로 포장하고 교육한 것이다. 학습된 우리가 의식해야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주어서는 안 될 오물이다. 그러나 이렇게 또렷이 버젓이 재연되고 있다. 그것도 어린이가 동경하는 디즈니 왕국에서.

 

함께 보던 꼬마친구와 나눈 대화를 적어본다.

아이는 인어공주의 다리가 없어서 산책도 할 수 없고, 뛸 수도 돌아다닐 수도 없냐고, 왕자와 춤출 수도 없냐며 울먹였다. 불쌍하다고도 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산책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돌아다니면서 쇼핑도 할 수 있지. 또 춤은 휠체어를 타고도 출 수 있고, 앉아서도, 또 누워서도 출 수 있는 거야. 이 세상에 다리로만 손으로만, 예쁜 얼굴로만, 건강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라고 말해주면서 휠체어를 탄 댄서가 멋지게 춤추는 장면을 보여줬다.

그리고 덧붙였다.
누구나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과 방식이 있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세상과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로 전하려 했지만 아이가 어떻게 이해하고 얼마나 공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던 아이의 눈가가 반달이 되어 환해지는 것에 안도했을 뿐.

최근 들어 디즈니는 인종의 다양성과 젠더리스를 선언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맥락에서 흑인 인어공주가 탄생했고 다양한 인종이 등장했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디즈니의 홍보만큼 새롭거나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에 살고 있고, 공주의 피부색만 바뀌었을 뿐,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성과 젠더리스의 지향점이 캐릭터나 서사, 메시지에서 체감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디즈니의 과거에 머문 원작들을 그저 따라가는 리메이크를 이젠 좀 그만 보고 싶다는 관객의 쓴 소리와 외면을 인종차별로 몰아가는 것은 오만이고 관객을 기만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