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리석지 않다
나는 어리석지 않다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02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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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라는 단어를 넘어서기

2024년부터 정부와 공공기관의 공문서에서 치매라는 단어가 사라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926,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히며 앞으로 치매를 대체하는 용어로 인지증’, ‘인지저하증’, ‘인지병중에 최종 확정하겠다고 했다.

수년 전부터 학계와 노인돌봄현장에서는 치매라는 단어를 바꿔야 한다고 제기했다. 치매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사람에 대해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치매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당사자와 가족에게 모멸감을 주고,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는데 치매라는 단어 자체가 큰 몫을 차지했다고 부정하기 어렵다.

이미 같은 한자권인 대만과 중국, 홍콩은 2000년대에 치매라는 병명 대신 실지증(失智症)’, ‘뇌퇴화증(腦退化症)’ 으로, 일본 역시 2004인지증(認知症)으로 개정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가했다.

사실 필자도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이지만 치매라는 용어에 대해 이런 뜻이 있다는 것을 몇 년 전에야 알았다. 특히 치매정명(痴呆正名)」 (양현덕 외, 디멘시아북스, 2020) 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대체 용어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오랫동안 있어 왔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정명(正名). 바른 이름을 가져야 이름과 그 이름이 지시하는 사태가 합치될 수 있다. 하나의 병증으로 나타난 치매 어르신의 모습을 그 사람이 어리석다로 덮어버릴 수는 없다.

단어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은 우리의 사고를 반영하고, 무의식을 형성해 나간다. 치매 노인은 그저 돌봄의 대상이며, 치매는 비극적 질병이기 때문에 나와 우리 가족과는 무관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2025년이 되면 노인 4명 중 1명은 치매환자가 될 거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나와 우리 가족과 무관할 수 없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인지증, 실지증, 뇌퇴화증 등이 완벽한 단어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최소한 사람에 대해 인격적으로 다가가고, 치매를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담겨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회가 치매라는 용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 우리는 함께 하는 치매 어르신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작년 초 고민했다.

대중매체에서는 치매 노인을 괴성을 지르고, 고집 불통에 매번 잊어버리고, 했던 말을 반복하며 배회를 하고, 심지어 벽에 똥 칠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이러한 모습은 퇴행성 뇌질환의 병증이지 어르신의 인격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말하고 싶어도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또는 표현이 어려워 큰소리가 나온 것이다. 무조건 보호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니 당신의 의견을 강조한다는 것이 고집불통으로 보인 것뿐이다. 내가 말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말을 하는 것이지 당신을 지겹게 만들려는 수가 아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는데 자꾸 막아서니 목적 없는 서성거림으로 보일 뿐이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변이 감당이 안 되었을 뿐이지 벽에 묻힐 생각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센터를 이용하시는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관찰했다.
당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 아가시는 한 인격으로 보고 어르신의 말씀, 행동, 눈빛, 표정, 손짓 모두를 관찰했다. 그랬더니 어르신의 강점, 삶의 지혜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정성스레 기록하고 어르신께 읽어 드린다. “우리 000 어르신은 이런 멋진 모습을 가진 분이세요. 제가 한 수 배웁니다. 인생의 선배님!” 이라고 말씀드리면 어르신들은 부끄러워하시거나 쑥스러워하시면서도 내가 그렇게 멋진 사람이야?” 라며 기뻐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적은 글에 대해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주십사 부탁드렸다. 처음에는 그림 그릴 줄 모른다고 손사래 치시던 분들도 일단 연필을 잡고 하나의 선과 원이 시작되면 기가 막힌 그림들로 완성되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글과 그림을 모아 2022년 12월에 비매품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 어르신과 가족들이 기뻐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지인들은 정식 출간하라며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2023년 121, 우리의 그림책 그럴 땐 말이지를 정식 출간하였다. 서른여섯 분 어르신의 삶의 지혜와 유머는 마치 법정 스님의 즉문즉답같고, 서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한 그림은 어느 유명 화가 못지 않다.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 어르신과 종사자들이 함께 만든 그림책 '그럴 땐 말이지'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 어르신과 종사자들이 함께 만든 그림책 '그럴 땐 말이지'
그림책 '그럴 땐 말이지'의 한 장면
그림책 '그럴 땐 말이지'의 한 장면

어르신의 말씀과 그림을 보면 치매라는 단어를 쓰기가 죄송해진다.

앞으로 정부가 어떤 대체 용어로 우리 어르신들을 명명할지 기다리고 있다. 그 단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서두에 말한 것처럼 치매 어르신을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되길,

그래서 우리 역시 우리 현장의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전하고, 또한 이 그림책을 통해 치매 어르신을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되는데 작게나마 도움 되고 싶다.

이 그림책을 통해 우리 어르신들은 세상에 말씀하신다.

"나는 어리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