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용(蠻勇)은 필벌(必罰)이 따른다
만용(蠻勇)은 필벌(必罰)이 따른다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4.02.0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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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武士)출신인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군자는 용기를 숭상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군자가 용기만 있고 정의가 없다면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또 소인이 용기만 있고 정의가 없다면 도둑질을 하게 될 것이다.’

용기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정의와 균형을 이루어야 바른 용기가 된다는 의미다.

요즘 값싼 용기만 출중하고, 정의는 온 데 간 데조차 없는 인물들이 많아서 걱정이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피눈물을 외면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잡아떼고 버티면 된다는 정부고위직 인사들도 많다.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나 누추하고 천박하다.

2022년 10월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보자는 취지로 입법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모두가 예상한 결과다.

이 법은 159명의 젊은이들이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압사 당한 참혹한 비극의 원인과 수습과정을 짚어보고, 잘못한 사람이나 시스템이 있으면 책임을 묻고 바로잡자는 내용이다. 여당과 대통령은 유가족들의 애타는 요구를 시종일관 외면하다가 야당의 발의로 법률안이 의결되자 ‘비루한 이유’들을 열거하면서 재의(再議)를 요구했다.

엄동설한에 차디찬 땅바닥에서 셀 수도 없는 절을 올리던 유가족들의 애절한 절규를 박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지도자의 제일덕목은 포용성과 책임감이다. ‘자기 확신’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 확신이 ‘자기 정당화’에 기초한 것이면 사회전반에 분열과 다툼만 키운다. 인화성 높은 오만에 빠지게 된다.

확증편향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민주사회에서는 지도자가 다른 의견도 수용해야 하고, 모든 일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석학들은 권면한다. 따라서 이태원 참사에 관해서도 자신들이 촉발한 일이 아니라서 책임이 없다거나 유가족들과 야당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식의 꾀죄죄한 논리만 앞세울 일이 아니다.

같이 고민해보자는 포용적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나 저들의 정치행태를 볼 때, 방어적인 결정 밖에는 다른 출구를 찾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이 코앞이라서 뭉개고 가자는 의견이 득세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결정은 정부여당이나 대통령의 지도력과 도덕성까지 의심하는 단초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도 두고두고 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국민들은 뭔가 켕기는 것이 있지 않느냐는 의심을 가질 것이고, 대통령을 미심쩍게 바라보던 국민들의 입에서는 ‘역시나’가 튀어나올 게 뻔하다.

정의를 둘러엎는 만용(蠻勇)은 필벌(必罰)이 따른다.

특별법은 부담이 아니다. 국민의사에 반하는 결정이 집권기간 내내 큰 부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