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장님은 매일 할머니들을 만져서 좋아!"
"여기 사장님은 매일 할머니들을 만져서 좋아!"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0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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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는 분들께 감사, 대화, 환대하고 있을까?

여기 사장님은 매일 할머니들을 만져. 그래서 좋아!

K할머니가 오늘 아침에도 하신 말씀이다.

매일 아침 10시. 어르신들이 센터에 오시면 한 분 한 분께 무릎을 낮추고 눈을 맞추며 손을 잡고 인사드린다.

잠은 잘 주무셨는지, 아침 진지는 무엇을 드셨는지, 여기 멍은 어쩌다 생겼는지, 병원은 잘 다녀오셨는지를 여쭙거나 "오늘 스카프가 잘 어울리시네요", "미용실 다녀오셨나 봐요", "따님이 온다더니 예쁜 옷도 선물 받으셨나 봐요" 등 어제와 달라진 모습을 재빨리 아는 척 해드린다.

이렇게 인사드리는 이유는

첫째, 여느 돌봄 현장이 다 마찬가지이듯 매일 안녕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직 살아있음에, 그래서 이렇게 얼굴 볼 수 있음에 소박하게 감사해하며 마음을 전한다.
작년 12월 말, 어르신들과 한 해 무엇이 제일 감사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제일 많이 나온 말씀은 지금 살아있어서 감사하다였다. 평소 이제 죽어야 하는데, 갈 곳은 한 곳 밖에 없는데 라고 하셔도 어르신들은 삶에 의지가 있다.

둘째, 치매 악화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중 언어적 표현이 점점 줄어드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하루종일 누군가 말을 시키지 않으면 먼저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

내향적인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지남력이 더욱 약화되었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며, 약 기운 탓에 정신이 희미해지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이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상황인지 인식하도록 열린 질문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이인아 교수는 그의 저서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에서 절차적 기억과 일화적 기억을 설명한다.
절차적 기억은 자전거 타기나 악기 연주, 젓가락질 등 반복 학습한 것이 오랫동안 저장돼 필요할 때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우리 몸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일화에 대한 기억은 날마다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태로 기억하는 것이며 우리의 뇌 중 해마가 이를 담당한다. 치매 환자는 바로 이 해마가 가장 먼저 손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금 있던 일을 기억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치매 환자도 절차에 대한 기억은 자극할 수 있다. 일화에 대한 기억처럼 새로운 기억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지라도 어르신이 평생 차곡차곡 쌓아온 절차에 대한 기억은 누군가 자극을 주면 마치 겨울 땅에 봄기운으로 움터진 새싹처럼 솟아난다.

셋째, 환대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그 어떤 인지 프로그램, 신체활동 프로그램보다 효과적이다.
김현경 인류학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환대의 의미를 '사회적 성원권'과 연결 짓는다. 그의 저서 '사람, 장소, 환대'에서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맞이하는 것을 넘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환대라고 말한다.

어르신께 인사하며 마음을 담은 눈빛, 밝은 목소리, 따뜻한 손길 속에 마음이 오고 간다.
우리의 환대로 내가 이곳(장소)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았다는 확신이 안정감과 안전감을 불러일으킨다. 치매 어르신을 위한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정성 담긴 환대가 더 힘이 세다.

한 분 한 분 인사드리다가 K어르신 순서가 되었다. 다정한 인사 후 K어르신께서 위의 내용처럼 말씀하셨다. 인사가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으면 그 기쁨을 타인에게도 전한다. K어르신은 나와 인사 후 옆의 어르신, 또는 직원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인사하신다. 감사와 대화와 환대가 퍼진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다양한 자원과 서비스를 연계하기도 하지만 사회복지사 자신을 도구(감사, 대화, 환대)로 하여 당사자를 만나기도 한다. 때론 후자가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더 강력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신은 기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