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장은 상호작용과 소통을 통해
인간의 성장은 상호작용과 소통을 통해
  • 백수정 (자유기고가)
  • 승인 2019.03.2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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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함께 보는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인생이 애니메이션처럼 단순한가? 그것도 전체가 등급의 디즈니애니메이션으로? 
이 영화를 보기 전 시놉시스에서 든 의문이었고, 이 의문에 회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실존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점은 어떤 이의 삶을 엿본다는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그리고 보는 내내 ‘인간의 발달은 개인마다 속도는 다르지만 순서는 같다’란 인간 발달학의 첫 구절을 되 뇌이게 했고, 주인공 오웬을 지지해주며 지켜보는 가족들을 보면서 성장을 돕는 것은  ‘개인의 성장속도와 표현방식을 인정해주는 환경과 성장을 돕는 매개체를 찾아주고 자신의 성장에 의미가 되도록 지지대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는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가 떠오르며 아이의 성장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된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인 오웬 서스킨드는 3살 때 말문을 닫고 행동이 조금씩 달라져 병원에 갔다가 자폐성 발달장애란 진단을 받게 된다. 그 후 가족들은 오웬과의 대화 단절은 물론이고 상호작용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형과 함께 보던 오웬이 대사 한마디를 따라한다. 의사는 반향언어, 그냥 들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라는 소견을 보이지만 가족들은 희망을 놓을 수가 없다. 눈을 맞추며 첫 마디를 하고 4년이 지날 동안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오웬이 <피터팬>이야기를 하면서 복잡한 생각이 담긴 복잡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 순간은 가족에겐 기적 같은 순간이자 오웬이 세상을 이해하는 매개체를 발견하게 된 순간이리라. 
그 후, 가족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대사들로, 오웬이 좋아하는 캐릭터인 <알라딘>의 ‘이아고’ 손인형과 함께 역할극을 하며 대화를 시도하고, 캐릭터들의 감정표현을 따라하면서 오웬의 감정과 기분, 느낌 등을 표출하도록 유도한다. 
조금은 서툴지만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소통을 시작하는 오웬. 따돌림을 당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동화로 승화시키며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이겨내는 장면들이나, 독립생활과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현재의 삶에 도전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느리지만 한 단계 한 단계씩 성장해가는 오웬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게 되고, 가족들이 보여준 인내와 오웬에 대한 믿음에 나도 모르게 고마움과 대리적 성취감을 맞보았던 것 같다.

그렇다. 오웬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것, 좋아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찾아 발달을 돕는 매개체로 승화시키는 것, 이를 통해 타인이나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이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 결국 성장은 다른 것들과의 상호작용과 소통으로 이뤄진다는 교육의 기본 개념과 장애가 있건 없건 성장을 돕는 요소들과 관계성은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오웬과 그의 가족들의 일상에 카메라가 집중하면서 가족들의 인터뷰와 오웬의 감정, 느낌, 내면세계 등을 애니메이션으로 형상화하여 전하는 매 장면들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오웬과 가족들의 인터뷰에서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장면들은 자폐성 발달장애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이로 인한 오해와 편견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으며, 이런 세상에 오웬을 남겨 두고 먼저 사라져야 하는 부모들의 걱정과 두려움, 또 다른 입장에서의 형의 두려움과 부담감, 독립생활을 앞둔 오웬의 두려움과 설렘 등을 담은 영상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하면서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된 깊은 연대감을 형성시킨다. 

그러나 오웬과 가족들은 미래의 걱정과 두려움에 얽매어 현재를 놓치기보다는 오웬이 좋아하는 이들과 원하는 일을 하며 사랑도 하고 평범하게 행복한 현재를 살아가도록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쪽을 선택한다. 역시 멋진 오웬과 그의 가족이다.

아울러 졸업과 동시에 독립생활을 해야 하는 오웬의 일상을 상세히 담은 장면들. 예컨대 오웬의 의견을 경청하고 최대한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여러 번의 미팅과 실습, 그리고 독립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나 부를 수 있는 헬퍼 등의 지원체계 등 최대한 안정적으로 독립생활을 시작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담사와 시스템을 자세히 담아낸 장면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다름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지향점은 역시 우리나라 보다는 성숙한 나라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특히 상담사가 “오웬이 지역사회나 가족에게 기여하는 게 뭐라고 보세요?”라고 어머니에게 묻는 장면은 미국이란 나라의 인간에 대한 개념과 가치관은 우리나라와 조금은 달라 보이고, 사회의 성숙도는 훨씬 영글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이 물음 하나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떻게 물었을까? 싶기도 하면서.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다. 5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하루 종일을 다녀 봐도 눈, 코, 입, 손, 발이 똑같은 사람을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다름은 보편적이고 상식적이다. 이를 인정하면 나와 조금 다른 행동과 어눌한 말, 성장속도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그리고 개인이 보이고 개인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생각하는 정서와 가치가 중요해진다. 

개인적 취향과 성향을 중시하는 인식들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게 되면 다르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편견과 고정관념의 시선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며, 불평등과 불합리의 사회구조도, 이 안에서 경험하는 배제와 무시 등 차별의 부정적인 관습들도 소멸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과장된 표현과 과장된 감정을 담고 있어서 내용과 언어, 행동의 의미들을 이해하기 쉽고 특히 흑백이 명확한 대본대로 전개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유아들이 이해하기 쉽고 좋아하는 캐릭터와 유머러스한 몸짓 등 매력을 고루 갖춘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 어린 시절 오웬의 경험치는 물론이고, 일상의 끊임없는 자극들과 돌발적인 것들에 과잉자극을 받기 쉽고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오웬과 같은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에게는 세상을 배우기에는 최적화 된 매개체로써 그동안 오웬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생을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웬은 늘 주문을 외우듯 말한다. 포기하지 않아야 할 땐, <헤라클라스>, 친구를 원할 땐 <정글북>, 진짜 소년이 된 기분을 배울 땐 <피노키오>라고. 
이처럼 지난 23년간 오웬에게 있어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벗이자 세상을 가르친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이미 따돌림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영웅이 아닌 들러리가 된 기분도 경험했고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의 아픔도 겪은 오웬에게는 더 이상 키스신만으로 끝나버리는 전체가 등급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세계만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한계에 부딪쳤고 전체가 애니메이션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19금의 복잡한 인생이 진행 중이다. 

이제는 독립된 성인으로써 ‘인생을 오웬답게’ 살아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잘 살아낼 수 있도록 지지, 그리고 행복하길 응원한다. 홧팅!!,

한마디 꼭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 복지선진국에 비해 장애인의 독립과 자립생활을 인정하고 이를 위한 시스템이나 지원체계를 갖추고자 하는 움직임과 현실적으로 실행된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은 지금도 오웬보다 더 치열한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독립해 자립생활을 꿈꾸는 것은 성인이 되면 자연스러운 욕구이고 권리이자 의무이다. 장애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독립과 자립의 문제도 자연스런 욕구와 권리 그리고 의무로 인식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시스템과 지원체계가 시급한데,정부의 인식수준은 매우 약해 자립 생활을 시작해 볼 엄두도 못 내거나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 심지어 생명을 담보로 생활해야 하는 경우까지 감수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도 밖에서 추위를 견디며 장애로 인한 편견과 고정관념 때문에 독립과 자립생활을 존중받지 못해 빚어지는 불평등의 문제들과 싸우며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일상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영화보기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은 디즈니애니메이션 <알라딘>, <노틀담의 꼽추>, <헤라클라스>, <라이온 킹>, <인어공주> 등의 장면들이 편집돼 오웬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의미 있게 등장해 유아들의 시선을 끌 수는 있으나,어린이나 성인에 비해 타인이나 주변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는 시기어서 유아 대상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지루해 할 것입니다. 

내용 역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요. 특히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청년이 장애나 인생에서 겪는 아픔과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좌절 등도 보여주다 보니 어린 유아들이 혼자 시청할 경우 전후 사정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걸러지지 않아 오히려 장면만으로 판단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중에는 자폐성 발달장애나 지적 장애가 있는 성인을 유아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외형만으로 판단한 아주 심각한 편견이며 잘못된 인식입니다. 
이 영화에서만 보더라도 성인이 된 오웬에게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더 이상 흑백이 분명하고 대본대로만 전개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하다못해 디즈니애니메이션의 연인들처럼 키스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성인이니까요. 유아 시기에는 장애가 있건 없건 또래 친구들과 몸을 부딪치며 놀면서 감각적으로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에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이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고정관념이 형성되는 시기인 만 7세 이상의 어린이들이 어른과 함께 보면서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에 대한 이해와 다름에 대한 존중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대화를 나누어야 할 때 아주 좋은 영화로 강추합니다.

감상 포인트 : ‘인생을 애니이메션처럼’에서 제2막의 인생은 ‘인생을 오웬답게’로. 오웬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응원할게요.
감독-로저 로스 윌리엄스, 출연-웬 서스킨드 외. | 미국 | 다큐멘터리 | 2017.09.27 개봉 | 전체관람가 | 92분 |추천연령: 만 7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