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구별, 차별
구분, 구별, 차별
  • 승근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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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하고 구별하며 차별이 있는 집단은 행복하지 않아
행복하지 않은 조직은 목표를 이룰 수 없어
조직민주주의란 조직 내의 격차와 차별과 싸울 수 있는 조직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관계는 틀어진다. ‘나와 너’, ‘나와 조직’을 여러 개로 ‘구분(區分)’함으로써 벽을 만드는 이유는 이러하다. 벽을 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행복감이 낮은 이유를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복이, 조직의 성장이 자신의 행복과는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관계를 배타적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나는 너와 달라’ ‘나는 이 조직에 있는 내가 아까워’라고 단언한다. 그것은 나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행복이 마치 자신의 것을 강탈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감이 낮은 이유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가져간 것으로 최면을 건다. 구분하는 사람들이 많은 조직의 특징은 냉소적이다. 참여가 활발하지 않다. 그리고 자원의 교환이 더디다. 내 자원이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구분을 하는 대상은 누군가를 특정하지 아니하고 전체적이다.

‘구분’은 ‘구별(區別)’이 된다. 단순히 나와 너를 구분하는 것으로는 행복감이 낮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으면 구별이 시작된다. 구별은 나와 너를 구분하는데서 나아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갈라 놓는 것이다.

‘이 조직은 비윤리적이고 나는 윤리적이야’라고 인식한다.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의 구별이 시작되고 철저하게 자신은 정의롭고 옳다. 그러한 인식 틀 안에서 정의롭고 옳은 사람들을 구별해 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실질적인 대립적 관계가 형성되며 선의의 경쟁보다는 자신이 옳고 정의로운 것을 증명하는 것에 몰두한다. 구별 역시도 행복감이 낮은 상태이며 그러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됨으로 발생한다. 자신이 강탈당한 행복을 되찾을 수 없기에 그것을 지키기 위한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구별하는 사람이 많은 조직은 뒷담화가 무성하다. 꼬리 없는 소문이 조직을 힘들게 만들고 자원의 교환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별을 하는 대상은 전체 안에서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특정한다. 사람들을 서로 갈라치기 시작한다.

구별은 차별(差別)이 된다. 되찾을 수 없는 자신의 행복감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차별이 시작된다. 차별은 나 아닌 다른 타자들, 특히 자신이 구분하고 구별했던 사람들을 열등하다고 인식해 버린다. 나와 완전히 다르고 그 다름이 자신의 낮은 행복감에 영향을 준다는 인식의 오류가 작동하여 사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다. ‘너 때문에 일이 잘 안 돼, 너는 나에게 아무 것도 도움이 안 돼, 이 집단은 망해야 돼’고 단언한다. 당연히 관계는 적대적이다.

배타적 관계, 그리고 대립적 관계를 넘어서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배제가 일어난다. 조직과 사회 속에서의 차별은 그렇게 존재한다. 자그마한 ‘구분’이, 그렇게 만들어 낸 ‘구별’이 결국 사람을 무시해 버리고 쓸모가 없는 존재로 치부해 버리는 ‘차별’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상은 전체 안에서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며 특히, 약한 사람을 특정한다.

여성과 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에 가하는 차별은 구분과 구별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차별은 처음부터 사회적 약자를 특정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조직이나 사회에서 경험되는 낮은 행복감으로 인해 나와 전체를 구분해 버리고 또 전체 안에서 집단을 특정하여 구별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불똥이 가장 사회적으로 약한 이들에게로 옮겨 붙여 만들어진 것이 차별이다. 즉, 차별은 낮은 행복감이 원인인 것이고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어기제가 결국 차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의 최종적 사회 현상이 바로 격차이다. 격차는 차별을 먹고산다. 약자에 대한 차별을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순간 격차는 고착화 된다. 그 격차가 자신의 행복감을 복구해 줄 것이라는 가정 속에서 사는 것이다. 구분과 구별 속에서 만들어진 차별이 격차를 만들어 낸 것이고 그 희생은 오로지 더 많은 사회적 약자에게 특정된다. 차별이 많을수록 격차는 심화되고 확장된다. 그럼으로 사회의 고착화된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차별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구별과 구분을 만들어내는 구조와 시스템을 개선하여야 할 것이고 결국 개인의 행복감을 높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낮은 행복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국 격차와 차별의 시작인 구분으로 되돌아 간다. 구분은 ‘나와 너’, 그리고 ‘나와 조직’에 벽을 치는 것이다. 사람이 왜 ‘나와 너’, ‘나와 조직’을 구분하게 될까? 해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지 아니하고 기계적으로 대우받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만 취급받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대우받지 아니하고 기계와 도구로만 취급된다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조직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대우받지 못하니 스스로를 보호하고 대우하기 위하여 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업경영에 있어서 구성원들에게 존중과 인정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람으로 대우받은 구성원은 존중감과 소속감으로 자신의 열정을 끌어낸다. 몰입과 헌신의 작동하여 사람을 자발적, 창의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실현된다. 그러나 그것만이 끝이 아니다. 이렇게 행복해진 구성원들로 인해 구분과 구별이 없어지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감소하게 된다. 격차를 줄이기 위해, 차별을 줄이기 위한 수많은 사회정책들이 작동하지만 결국 차별과 격차는 대중사회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행복하지 아니한 구성원들을 계속해서 조직에서 만들어내면 사회정책은 실효적이지 않다. 성평등, 장애인인권, 노인인권 등의 차별을 줄이기 위한 사회정책과 사회복지사들이 노고가 빛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조직이 구성원들은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구분과 구별이 없어진 구성원들이 차별과 격차에 대한 민감성으로 그것에 호응할 것이다.

자, 이제 사회복지조직으로 들어가 보자. 건강한 조직은 구분과 구별이 없다.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나와 조직 간의 벽이 없다. 정서적으로 서로가 인정되고 존중되어 받아들여지면 긍정적 행동이 일어난다. 그것이 벽을 허무는 것이다.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인정받으면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너와 나가 아닌 전체로 이해하게 된다.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용적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협업하게 된다.

건강하지 않은 조직은 구분과 구별이 있다. 리더와 구성원간, 직급간의 구분이 있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구분이다. 자 이제 구별이 들어간다. 사회복지사 1급, 2급, 간호사, 간호조무사 직종간의 구별, 사이버대학출신, 학부출신, 전문학사 출신 간의 구별, 이용시설 경력자, 거주시설 경력자간의 구별, 공무원 출신, 학교출신, 시설출신의 구별, 경력 20년 이상, 15년 이상, 10년 이하의 구별이 있다. 일을 하는 것에 있어 그렇게 중요한 인적조건들이 아니다. 역량과 성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아니하고 구분을 짓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갈라치기 한 구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정의와 불의의 문제로 구별시킨다. 결국엔 스스로 만들어낸 구분과 구별로 구성원 들 중에 약자를 만들어 내어 특정해 버린다. 그리고 차별한다. 이렇게 건강하지 않은 조직이 사회복지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사회복지조직에서 인권보호 교육,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 직장 내 따돌림 예방을 교육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문화자체에서는 아무런 실효가 없는 이유이다.

사회복지조직은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조직이 생존하는 이유가 그것을 줄이기 위해 인간존엄과 배분적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복지조직 안의 구성원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차별과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다. 조직에서 사회복지사들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는 그런 것이다. 단순히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써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격차와 차별을 해소하는 본질적 행위인 것이다. 그러하니 사회의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고 싶은 사회복지조직이라면 우선 내부의 차별과 격차부터 해소하여야 한다.

‘사람은 언제 행복해질까?’ ‘사람으로서 인정과 존중을 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원하는 것일까?’ 억압과 통제의 방법으로 긴장감, 위기감, 위화감으로 조직을 작동시키지 않을 때이다. 문제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 기회를 통해 내려진 결정권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실패해도 다시 선택과 기회와 결정의 권한을 부여받을 때 사람은 조직에서 행복하다. 그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조직민주주의이다.

조직민주주의는 조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격차에 관한 것이다. ‘구성원이 중심이 되어 구성원을 위한 경영을 한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해결하여야 될 격차와 차별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조직이 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