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협 임소연 사무총장, 제18회 정태수상 수상자 선정
한자협 임소연 사무총장, 제18회 정태수상 수상자 선정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3.03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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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정태수상 수상자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임소연 사무총장이 선정됐다.

정태수상 심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올해의 정태수상 수상자로 임소연 활동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2000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활동을 시작한 임 사무총장은  2005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활동하며 시설 민주화 투쟁, 장애인 학대 및 인권침해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으며, 2006년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에서 활동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앞장서 활동했다.   

2015년부터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지역 센터들과 활동가들을 조직했으며, 6년여의 활동을 통해 한자협이 재정적으로 안정화되고, 조직과 실무에 있어서 운영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며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정태수상 심사위원회는 “임소연 활동가는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에 어느 활동가들보다 열심히 앞장서서 활동해왔다.”라면서 “특히 임소연 활동가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총장으로서 조직의 안정적 기반 마련과 현장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정태수 열사의 정신을 현장에서 계승하고 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다음은 임소연 총장의 수상소감이다.  

저를 소개하는 글을 너무 제가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장애운동을 왜 시작하게 됐느냐’라는 것들을 그리고 ‘여태까지 지속하는 게 뭐냐’라는 거를 저를 소개하는 글에서 제가 마음깊이 울림을 가지면서 읽었어요. 왜 장애운동을 계속 하느냐, 어떻게 시작했냐라고 했을 때 저의 근간이 되는 거는 탈시설운동이라고 명확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05년도에 시설에 들어가서 시설조사를 공식적으로 처음하게 됐는데, 미인가시설도 갔었고 그다음에 개인운영시설도 갔었어요. 거기는 성폭력도 있었고, 한 자매를 시설장이 돌아가면서 하는 경우도 있었고, 감금도 있었고, 착취도 있었고, 어마어마한 일들이 되게 많았었는데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제가 정말 충격적이었던 건 저희가 이런 질문을 했었어요.

‘시설에서 당신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했었어요. 그 질문을 했을 때 우리의 예상은 반말을 한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이런 거를 기대했었는데 그 사람이 저에게 20년 동안 시설에 있었는데 그분이 저에게 했던 말은 ‘나는 시설에서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려본 적이 없다.’였어요.

사람이 사는데 자기 존재를 가장 명확히 할 수 있는 게 ‘임소연, 임소연, 소연아, 소연아’ 그것으로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건데, 시설 내에서는 아주 철저하게 장애인이라고 불려지면서 시설생활인이라 불려지면서 자기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내 이름을 불려보지 못했다, 한 번도 누군가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상황인가.

그래서 탈시설은 인간 존엄의 존재의 투쟁이다라는 것을 하게 됐어요. 우리가 왜 시설에서 나와서 지역사회에 살아야 되는 건지 저는 그 얘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설에서 아직까지 그러고 있을 거고, 청도 대남병원도 마찬가지고, 지금 코로나로 벌어지고 있는 시설격리를 통해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재난은 예견된 죽음이다, 사회가 만들어온 구조속의 죽음이라 생각해요.

그 운동의 시작으로 저를 단련하고 올 수 있었고 그 운동을 확대했던 동지들이 여기 많이 계셔서 저는 정말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이동권투쟁에는 같이 할 수 없었지만 탈시설운동 그다음에 장애등급제 폐지운동, 부양의무제 폐지 운동, 노동권투쟁, 활보투쟁, 저희가 안한 것이 없어요. 그거는 저는 정말 한자협이고 전장연이고, 정말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장애인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 자리에서 그냥 멈춘 것이 아니라 저항했었고 그것에 대해서 투쟁해서 만들어냈고 그 운동에 제가 함께 하고 있었고 함께 했다는 것이 제게는 역사에 정말.. (울먹) 저를 계속 지탱해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가야 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함께 늙어가면서 머리카락이 희어진 동지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나이가 들어가니까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근데 제가 그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아 정말 우리 최용기회장님은 아침에 일어날 때 얼마나 힘들까, 아 그리고 정말 나와서 기자회견 하고 싶을까? 장콜 잡히는 것도 2시간 3시간 걸리는데 나왔다가 들어가는 게 그게 될까? 우리 이형숙 대표님은 그렇게 새벽부터 쫓아다니면서 장관 쫓아다니고 누구누구 쫓아다니고, 근데 아침 7시까지 나오려면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건가. 박경석 대표는 이리 번쩍 저리 번쩍 뭐하라 저하라 하는데 얼마나 부지런한지 새벽 5시부터 문자가 오는데 이 사람이 그 문자를 보내려고 하면 밤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제 주변에는 저를 단련시켜주는 장애인동지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 동지들이 애쓰면서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과제와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혁시키겠다는 그 의지로 정말 다녀가면서 오늘을 넘기고 내일을 넘기고 그런 마음 마음 하나가 모여서 우리가 이렇게까지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정태수열사가 20년 전에 이루고자 했었던 노동권투쟁, 20년을 지금 우리가 얼마나 빡세게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걸 봤을 때 우리의 투쟁은 어느 순간 이미 없었던 것이 없다. 그리고 할만하다. 그리고 해야 된다. 50세가 넘은, 아까 중반이라고 했는데 50대 초반이에요. (웃음) 50세가 넘은 저에게 이런 상을 주는 거는, 저는 50살 넘으면 이런 상 준다. 그러니까 많은 젊은 활동가들이 그리고 이걸 선택하려고 하는 젊은 운동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해볼만하다, 그리고 해볼만하니까 여기 같이 해보자 이런 거를 저에게 상을 주면서 20년 투쟁하면 요 상 하나 준다, 그러는 걸로 격려와 지지해주면서 의미있는 상을 저에게 줬다고 생각해요.

저는 많은 선배활동가중에서 다 있는 것만으로 너무 가슴 벅차고 그 존재의 고마움을 느끼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저의 바람은, 제가 언제까지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 하나는 약속드릴 수 있어요.

많은 후배들이 문득 나도 임소연처럼 50넘어서까지 활동하고 싶다 이런 후배활동가들이 1명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저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현영 손들었어요. 흐흐흐. 그런 각오로 많은 선배들이 그렇게 활동했고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런 역할을 계속 해나갈 거고 그거를 해나갈 수 있는 거는 우리 동지들 내 옆에 있는 우리 동지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그거를 잊지 말고 내 동지를 챙기면서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운동을 하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저에게 주는 이 상은 한편으로 저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발바닥에서는 내가 왜 운동을 해야 되는지를 알겠다고 하면, 협의회에서는 내가 어떻게 조직하고 지역사회 거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센터를 중심으로 투쟁을 어떻게 만들어내가고 이 센터가 무슨 역할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의식을 저에게 갖게 해줬거든요.

저에게는 발바닥과 협의회가 정말 아주 중요한 자산이고, 앞으로도 발바닥과 협의회 그걸 근거로 해서 운동을 계속 열심히 할 거라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협의회를 통해서 지역사회 거점 센터가 정말 계속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저는 마지막으로 남은 장애운동의 거점으로서 협의회가 진짜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죄송해요. 저보고 계속 끊으라고 그러는데. 아까 살짝 자기는 7번을 넣었는데 떨어졌다고 하는 우리 최강민 동지, 김수원동지, 그다음에 김수경 동지, 김태훈, 사무국을 이뤄준 동지들, 어려운 시절에 한자협을 지켜줬던 이 동지들에게 마지막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