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시청자만 존중하는 우리나라 방송사
비장애 시청자만 존중하는 우리나라 방송사
  • 백수정 (자유기고가)
  • 승인 2019.04.22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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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정보를 제공받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보편적 시청권을 갖는 매체인 방송. 그러나 이마저도 무시와 배제로 존중받지 못하는 시청자들이 있다.

@김철환

“비장애들의 시청권 조화를 위해 수화방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4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을 비롯해 장애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 13개 단체가 KBS 정문 앞에서 KBS 종합뉴스 <뉴스9>에 ‘수어통역’방송의 의무 편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기자회견의 배경에는 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이 지난 2월 KBS<뉴스9>에 수어방송이 제공되지 않아 퇴근 후 편하게 뉴스를 보려 해도 시청이 어렵다(자막이 너무 빠르고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아서 정보의 한계성과 흐름을 놓친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수어방송’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KBS <뉴스9> 측은 “비장애인들의 시청권 조화를 위해 수어방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는 답변과 함께 유료방송을 가입해 스마트수어방송을 시청하거나, UHD 방송이 안착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답변만을 보내왔다.

이는 분명 공영방송으로써 시청자의 시청권과 알권리를 존중하고 시청에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액면그대로 해석하면 장애를 가진 시청자는 시청자로써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 답변이다. 

이 말인즉슨 대부분의 시청자는 무료로 시청하며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전 세계의 온갖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데 장애로 인한 소수성 때문에 유료로 시청해라는걸 의미한다.
방송디지털 기술이 안착될 때까지 기다려라 등의 무책임한 발언을 시청자에게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방송사가 과연 전 세계에 몇 개나 될까? 이 얼마나 오만망자 하고 시청자를 아래로 보는 발언인가. 

일말의 미안함이나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유감스럽고, 이런 인식으로는 <뉴스9>의 ‘수어방송’은 앞으로도 쭉 제공되지 않을 것 같아 더욱 분노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방송사의 인식이 이럴진대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에게 무얼 기대할까.
KBS <뉴스9>측에서는 기자회견 후, 그 어떤 답변도 없이 아직까지도 ‘수어방송’을 편성해주지 않고 있다.

@김철환

지난 4일 강원도 고성 산불과 관련한 재난 방송에서도 시‧청각 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은 시청자로써 알권리도,생명권도 존중 받지 못했다.

재난방송에서 방송 접근성은 시청자의 알권리를 넘어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라 나의 안전과 생명권을 보장받는 최소한의 연결고리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해외 방송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방송사들도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매뉴얼과 특보 체제의 제작가이드라인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 등 해외 방송사들은 안전에 취약한 노인, 어린이, 장애인, 환자 등이 안전하도록 정보를 충실히 제공해야 하고 피해 당사자 관점의 정보들을 중점적으로 전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사인 KBS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방송사들도 이런 매뉴얼에 따라 움직일 것이며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보전달에 최선의 노력을 해야한다. 그러나 지난 경주 지진과 포항 지진 때도 그랬지만 4일 발생한 강원도 고성 산불 재난특보에서도 주관방송사인 KBS는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사인 MBC, SBS 모두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의 정보 전달 수단인 ‘수어 방송’의 편성은 한참 늦었고 화면해설 방송은 아예 편성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장애를 가진 주민들의 안전은 방송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인식 수준에서 장애를 가진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대처와 대피 요령, 지원 등의 정보 제공, 예를 들어 장애별 특성을 고려한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 대피할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정보제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위 표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강원도 고성 산불 수어통역방송 시점을 모니터해 정리한 표다. 

민언련의 모니터결과 KBS‧MBC‧SBS‧JTBC‧YTN‧연합뉴스TV는 4일 밤~5일 새벽까지 밤새 산불 관련 특보를 편성하여 진행했음에도 수어 방송은 하지 않았으며, 가장 먼저 수어 방송을 시작한 방송사는 JTBC‧TV조선‧MBN으로, 이도 5일 오전 7시다. 이어 KBS 오전 8시, 채널A 오전 9시 20분, SBS 오전 9시 50분, YTN 오전 11시, MBC 오전 11시 30분, 연합뉴스TV 오전 11시 44분 순으로 ‘수어방송’이 편성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4일 저녁 7시 17분경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급속하게 속초까지 번지며 불은 밤새 강원도를 뒤덮었는데, 오전 7시에야 ‘수어방송’을 편성했다. 그것도 재난방송 주관사도 지상파 방송사도 아닌 유료방송인 종합편성채널들과 전문뉴스채널에서 가장 먼저 수어방송이 편성됐다. 

이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은 방송사들이 소임을 다하지 못한 문제와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장애를 가진 시청자를 외면해 재난으로부터 생명을 위협받을 여지를 줬다는 문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어떤 이유로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위반사항이라는 점이다.

우선 방송법을 살펴보자. 방송법 시행령 제52조 제2항은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방송, 보도전문채널 등에 장애인 방송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법 제 69조 (방송로그램의 편성 등) ⑧항에서는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시청을 도울 수 있도록 한국수어ㆍ폐쇄자막ㆍ화면해설 등을 이용한 방송(이하 "장애인방송"이라 한다)을 하여야 한다. 이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업자가 장애인방송을 하는 데 필요한 경비 및 장애인방송을 시청하기 위한 수신기의 보급에 필요한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24조에 따른 방송통신발전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필요한 경비를 지원해 주겠으니 ‘장애인 방송’을 제대로 하라는 의미이다. 

이 외에도 장애인방송을 반드시 해야 하는 예외 조항들을 두고 있는데, 첫째.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에 따른 재난방송 또는 민방위경보방송 프로그램, 둘째.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14조 각 호에 따른 방송프로그램, 셋째. 장애인의 방송시청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방송통신위원회규칙으로 정한 방송프로그램, 넷째. 기타 장애인의 복지를 목적으로 편성된 방송프로그램”이라고 적시해두고 있다. 그렇다. 안전은 장애가 있건 없건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고 이에 따른 정보 또한 동등하게 제공받을 권리를 누려야 한다. 따라서 지난 4일 가발생한 고성 산불과 관련한 KBS, MBC, SBS 외 뉴스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의 재난특보방송은 방송법과 장애인복지법 등을 명백히 위반한 것임을 재차 인지시켜야 한다.

굳이 이렇게 법조항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이미 대피해 안전을 확보한 시점에서야 뒤늦게 ‘수어방송’이 편성되었고, ‘화면해설방송’은 편성하지 않은 점, 그리고 불이 번지고 솟구치고 있다, 냄새와 연기가 가득하다는 등의 그림 읽기 수준의 멘트만으로 중계방송 하듯 전하는 과정에서, 이를 옮기는 것에만 급급한 자막으로 인해 제대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점 등은 누가 봐도, 문제라는 인식을 할 것이며 특보 제작진의 뇌리 속에는 장애를 가진 주민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재난 방송의 주관방송사로써 KBS가 평상시에도 ‘재난 예방’과 ‘재난 시 대처와 대피요령’ 등을 제작해 의무 편성해야만 하는 재난예방프로그램에서도 무시와 배제가 이뤄지고 있어서 보편적 서비스로써는 장애인들의 안전을 위한 정보들은 거의 얻을 수 없다는 사실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 산불로 장애를 가진 주민들의 인명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의 신뢰는 다시금 땅 밑으로 곤두박질쳤고,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조차도 장애를 가진 시청자에 대한 무시와 배제가 이뤄지고 이런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이것이 차별이라는 인식조차 못하는 지경까지 와 있음을 재삼 확인하게 된 이날의 재난 특보 방송들이었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가적인 빅 이벤트를 향유하고, 국민이 정치참여권을 행사하기 위한 정보를 보편적 서비스로써 제공해야 하는 방송. 이마저도 번번이 열외가 되는 시청자들도 있다.  

지난해 겨울 강원도 평창에서는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이 열렸다. 전 세계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이어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국가적인 빅 이벤트였다. 평생 한번 직접 볼까 말까하다는 올림픽의 현장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직접 강원도 경기장을 찾았지만 대부분은 집에서 TV로 올림픽의 개‧폐회식뿐만 아니라, 경기중계방송을 시청하며 올림픽을 즐겼을 것이다. 

특히 올림픽 개‧폐회식은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의 한계와 비싼 입장료 등으로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방송이 생중계해주는 장면들로 가정에서 편히 국가적 행사에 동참하며 국민으로써, 시청자로써의 권리를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 방송사들이 의무를 지키지 않아 방송을 볼 수 없었던 시청자도 있었다는 사실과 이것이 시청자로써 권리를 침해당하는 심각한 차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시청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번 동계올림픽 방송은 KBS, MBC, SBS 지상파 3사가 방송중계를 독점하여 개막식과 폐막식을 비롯해 경기 등을 중계했다. 개회식 때는 수어방송을 제공했지만, 이마저도 중간 중간에 끊여 내용을 제대로 전달받기 어려울 정도였거나, 아예 제공하지 않았던 방송사도 있어서 시‧청각 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은 개회식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시청환경이었다. 

이에 게시판에 시청자들의 항의 글이 올라왔고, 장애인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과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의 권고 후 변화를 기대했지만, 경기 중계방송에서는 아예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을 위한 화면해설방송이나 수어방송은 편성되지 않았고, 심지어 폐막식 중계방송에서도 개막식과 달라진 점이 없었다. 

패럴림픽 때는 10일 동안 지상파 3사의 중계방송시간이 평균 24시간으로 하루에 2.4시간이었으며, 이는 불과 며칠 전 끝난 올림픽 때 하루 9시간 중계방송을 편성했던 것과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시간이어서 장애를 가진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지지 않은 시청자들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으며, 심지어는 청와대에 패럴림픽 경기를 편성해달라는 청원이 51건이나 올라왔을 정도였다. 

이는 일본 NHK 62시간, 미국 NBC 94시간, 프랑스 프랑스텔레비전 100시간, 중국도 50시간을 편성한 것과도 비교되며 개최국으로써 전 세계인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인식수준과 그 나라 방송사들의 인식과 시청자들에 대한 예우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준 셈이다. 아울러 개막식 중계방송에서도 역시 수어방송을 하지 않아 질타를 받았다.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이 시청자로써 시청권과 알권리, 대중문화 향유권 등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는 이뿐만이 아니다. 선거 전 후보자들의 자질과 도덕성 등을 지면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해 입후보자 개인의 연설과 토론회 등을 제작해 선거방송을 편성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시‧청각 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이 보고 듣고 하면서 정확한 판단을 도울 수 있도록 수어, 화면해설, 폐쇄자막 방송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투표권을 가진 민주시민으로써, 시청자로써 당연히 제공받아야 할 권리인 것이다. 그러나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은 시청지원을 해주지 않거나 해주어도 수어통역사 수의 부족, 시청하기 불편한 화면의 위치와 크기 등 오히려 정보전달의 혼란을 주는 문제가 번번이 지적되고 있어서 매번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규정 자체는 지켜지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나, 매번 시‧청각 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이 정보전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똑같은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무얼 의미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이처럼 번번이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은 열외로 젖혀지는 심각한 차별을 당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우리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며 동등하게 누릴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거리로, 방송사로 국가인권위원회로 나가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매번 ‘권고’로 밖에 처리되지 않는 법 앞에, 과연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할까? 법이 약자의 편일까라는 회의와 의문, 이 후 방송사의 처분만을 기다려야하는 현실적 모순과 맞닥뜨리게 된다. 

방송사가 무시하면 그만이고 영혼 없는 형식적인 사과와 ‘기다려라.’, ‘유료방송을 시청하라.’라는 무책임하고 오만하며 우월감에 절은 답변까지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소수 시청자의 현실에서, 공중파를 사용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방송사들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 되묻게 되는 것은 나만의 물음일까?  

보고 듣는 매체인 방송이, 의무조항인 ‘누구나 배제되지 않는 동등한 시청환경’을 실현하려면 최소한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의 시청지원은 100%를 목표로 삼아야 가능하다?

현재, 방송법에서 정하고 있는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의 시청 지원 비울규정을 보면, 폐쇄자막 100%, 화면해설 10%, 수어통역 5%로 편성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으며,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시‧청각장애인의 방송시청지원 의무화 제도가 양호하게 안착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루하루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와 정보들을 누구나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각 방송사의 저녁 메인뉴스 프로그램을 비롯한 긴급 뉴스 특보, 선거 방송, 국가적인 행사의 중계방송 등에 장애인을 위한 시청지원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조항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쉽게 제공되는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제공을 거의 받을 수 없는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은 ‘시청지원 제도가 안착되고 있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발표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이 당연하며,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규정들이 지켜지지 않고 문제들은 매번 반복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선,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의 시청지원과 관련한 법 조항들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방송법 시행령 제52조(장애인의 시청지원) 제1항은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시청을 돕기 위하여 방송프로그램에 대하여 한국수어·폐쇄자막·화면해설 등을 이용한 방송을 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방송프로그램을 제외한 방송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사업자의 제작여건과 시청자의 수요를 고려하여 장애인방송을 하여야 하는 비율을 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복지법 제22조(정보에의 접근) 제2항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방송국의 장 등 민간 사업자에게 뉴스와 국가적 주요 사항의 중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수어 또는 폐쇄자막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또는 자막해설 등을 방영하도록 요청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제4항에서는 “요청을 받은 방송국의 장 등 민간 사업자와 민간 행사 주최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같은 조항들은 어찌됐든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의 시청권을 법령으로써 보장해주려는 규정으로써 의미가 있고, 이런 조항들로 인해 형식적이나마 최소한의 시청지원 비율이 지켜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문제를 졔기할 수 있는 근거 법들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방송사업자의 제작여건과 시청자의 수요를 고려하여’와 같은 단서를 붙여 의무비율을 제시하고 또는 비율과는 상관없이 반드시 시청지원을 해야 할 예외프로그램에서조차도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과 같은 단서 조항을 붙여 방송사업자들에게 빠져나갈 명분을 제공까지 해두고 있어서 이번 고성 산불 재난 특보와 같은 경우에도 법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고 “수어통역사와 연락이 안 돼서.”와 같은 변명과 사과 한마디로 끝나버리는 해프닝정도의 인식을 보여주어도 용인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엄밀히 말하면 의무규정이라기보다는 권고 규정들에 가깝다고 꼬집을 수밖에 없으며, 방송사업자와 장애를 가지지 않은 시청자들의 시청권을 우선 시 한 조항들이라고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로써는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의 시청지원 법은 의무규정이긴 하지만, 방송사의 인식과 의지, 무엇보다 방송제작진의 의지에 의해, 또 장애를 가지지 않은 시청자의 시청권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한정적이고 불편등한 시청권을 용인해주는 차별적인 법인 것이다. 이러한 법의 애매모호함이 가져온 것은 동등한 시청권이라는 방송의 태생적 책무를 소수의 시청자라는 이유로 등한시해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싶다.

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은 30년이 가까운 세월을 이 문제를 거리에서, 방송사 앞에서 시위하며 대중에게 알리고 시정을 요구해 오고 있다. 아울러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동등한 시청자의 권리를 존중받기 위해 국자인권위원회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열고 목소리를 높이며 싸워 오고 있다. 

이 세월동안 정작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각 방송국 내 장애인 시청지원과 관련한 전담 부서 하나 없고, 장애인 시청지원 가이드라인도 전무하며, 스마트 수어방송의 인프라는 구축도 안 되었는데, 그것만 기다리라고 하는 형국이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사들 아무도 관심 없고 형식적으로, 방송사와 시‧청각장애를 가지지 않은 시청자들의 편의만을 고려한 법들 사이에서 묵인과 외면, 변명, 떠넘기기 등으로 일관. 이런 인식이 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이 시청자로써 당연한 권리인 방송 접근권과 알권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현실의 장벽을 만들었다. 

이처럼 막히는 장벽을 매번 깨 부셔야 하는 순간들을 목도할 때마다 우리사회, 특히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방송이 아직까지도 개인보다는 다수가 우선되고, 다름이나 다양성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을 절실히 실감하며 인권과 인식의 후진국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도 시‧청각 장애를 가진 시청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자신의 권리인 방송 접근을 온전히 보장받는 그날까지 대중에게, 또 방송정책의 결정권을 가진 이들과 방송사업자들에게 알리고 시정을 요구하는 행동들을 해나 갈 것이다. 활동가들은 이미 해결 방법들을 알고 있을 것이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요구한 내용들이겠지만, 다시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청각 장애를 가진 시청자의 시청을 위한 현재의 수어통역, 화면해설. 폐쇄자막 각각의 의무비율은 현실성이 없으며, 당사자들이 요구한 30% 선은 최대한 양보한 요구사항일 뿐이라는 점이다. 

‘동등한 시청권’이라는 것은 모든 시청자가 시청할 수 있는, 방송사가 제작하고 편성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들도 제약 없이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시청지원 비율의 최종 목표는 100%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방송사에 시‧청각장애를 가진 시청자의 시청지원 전담부서를 두어야 하고, 수어통역과 폐쇄자막, 화면해설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을 각각 연구해 개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질 좋은 전달력과 소통의 원활한 시청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시청 당사자들의 모니터링을 통한 피드백을 당연시 여기는 정서가 자리잡도록 장애인식교욱의 의무화와 이를 방송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방송사 재허가 심사 시 인센티브나 불이익을 주는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의식이 아직 선진화 되지 못한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인식을 고려해보면, 의무적으로라도 ‘누구에게나 동등한 시청권 보장’이라는 방송의 태생적 책무를 중요하게 인식하게 유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이미 상업적 논리가 팽배해질 대로 팽배해진 방송환경에서 방송사들이 그래도 시청자를 의식하고, 소비성이 없다거나 소수라는 이유가 방송에서 소외시키고 열 외시키는 일상적 차별을 묵인해주는 암묵적 합의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방송에 대한 신뢰가 아직까지는 쌓여있다.

P.S. 시청각 장애를 가진 시청자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시위와 기자회견을 했다는 기사들이나 현장에서 직접 보게 된 대중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물론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할 것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은 존중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들, 즉 모든 문제들에서 노약자나 취약계층을 최대한 고려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당연시 되는 권리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 정도는 형성되어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 맥락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것이라는 믿음 또한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