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조직과 개인의 철학은 상생할 수 없는가
사회복지, 조직과 개인의 철학은 상생할 수 없는가
  • 김대근 (마을예술복지연구소 더 창고 대표)
  • 승인 2019.04.2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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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회복지사입니다.
그런데 사회복지사라고 다 같은 사회복지사가 아니더군요. 출신성분을 따집니다. 사회시스템이 많이 바뀌어 조만간 ‘출신 성분’ 농담이 구시대 유물로 취급받는 시대가 올 것 같지만 여전히 저는 육두품에 해당하는 사회복지사인 것 같습니다.

특히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니 더욱 사회복지계 주류에서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번에 ‘웰페어 이슈’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런 사회복지사들이 우선 ‘벤처사회복지사’란 이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했듯 내부에서도 벤처사회복지사가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명칭이 맞느냐는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프리랜서인데 이런 명칭을 싫어하시는 분도 옹호하시는 분도 제법 많습니다. 어떤 명칭으로 소개하던지 완벽한 명칭이 나오기 어렵다 생각합니다.

어떤 말로 정해지든 반대와 논란은 나오기 마련이지요. 그냥 어떤 명칭이던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명칭이 빨리 정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솔직히 제 활동을 소개하는데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해 성가실 때가 가끔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기 소개의 어려움을 겪는 '벤처 사회복지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게 있습니다.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거죠.

가끔 회식이나 연수 가는 사진이 SNS를 통해 올라올 땐 그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철학 보다는 기관의 요구나 공무원 조직에서 지시사항으로 내려오는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조직의 업무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선 사회복지사들에게 ‘본인이 속한 조직이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조직인가’ 질문해보면 대부분 ‘아니다’고 답을 합니다. 사회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들이 모인 직군인 사회복지 현장이지만 사회복지사 노동자를 행복하게 하는 조직은 아닌듯 합니다. 대부분의 '벤처 사회복지사'들이 기관을 박차고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직보다 개인의 철학을 선택한거죠.

@김대근
골목대장터 마을축제 모습 @김대근

개인의 철학을 존중하는 조직, 조직의 가치에 따라야 하는 개인

저는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에서 푸드뱅크 업무를 시작으로 10년 근무 후 문화복지 전문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방아골복지관은 지역주민들과 적극적으로 호홉하고 연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관료적 상명하달 방식의 조직체계를 지양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수평적 의사소통 체계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 학습을 강조했습니다.

사회복지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역사, 법률, 철학 등 폭이 넓었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올 수 있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조직의 비전을 신뢰했기 때문에 저도 과감하다 못해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자회를 지역축제로 전환한 것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바자회는 복지관의 부족한 사업예산을 일시에 확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행사입니다. 모든 직원들이 바자회 물품을 확보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녀야 하고, 행사를 앞두고는 모든 업무를 중단한 채  행사에 전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이렇게 많은 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행사지만 사회 분위기에 따라 매출은 크게 널뜁니다. 바자회 매출이라도 적게 나오면 담당자는 그야말로 ‘대역죄인’이 됩니다.

입사 3년차, 비정규직 직원이던 제가 바자회 담당을 했을때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습니다.
처참한 매출을 기록한 바자회를 마친 후 평가를 갖는 자리에서 저는 ‘수평적 의사소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다’는 말만 믿고 “바자회는 우리 기관의 가치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의 가치를 담아내는 지역행사를 통해 주민들의 신뢰를 얻고 후원자를 늘리자.”는 당돌한 주장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기관은 이 당돌한 제안을 받아들였고, 파격적인 결단을 통해 골목대장터라는 마을축제가 탄생했습니다. 그때 탄생한 골목대장터는 지금까지 이어져 도봉구의 마을 축제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고, 2016년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철학을 포용한 기관의 결정으로 인해 성공적인 시너지를 이룬 사례인 셈입니다.

물론 바자회 폐지로 줄어든 기관의 수익은 모금함 200개를 제작해 도봉구 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이웃사랑가게’ 만들기를 통해 보충해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회성 행사를 폐지한 대가로 후원증액부담을 안아야 했지만 개인으로나 조직으로나 의미 있는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수평적 의사소통체계는 기관에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기관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은채 보직 이동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통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럴 때마다 복지관은 벌집을 쑤신 듯 온갖 논쟁이 벌어집니다. 다른 기관에선 당연한 결정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수평적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조직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갈등이 드러나는 것은 그 자체로 해결의 실마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개인의 불만이 조직의 입장에 묻혀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겪으며 벤처 사회복지사(프리랜서 또는 독립형, 그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간에)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시대변화가 개인과 기관 간 상호보완 관계 전환 가능성 열어

얼마 전 경기도 광명시의 하안복지관의 위수탁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흥미롭게 바라봤습니다.
조직보다 개인의 역량이 휠씬 힘있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특히 ‘벤처 사회복지사’의 아버지로 불릴만한 푸른복지사무소 양원석 소장의 활동은 놀라웠습니다.

많은 조직과 협회가 지자체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기자회견을 열고 심의조사표 공개를 요청했고, 결국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공개명령을 받아냈습니다.

조직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사회복지사 개인의 연합된 역량들이 더 효과 있게 해낼 수 있다는 선례가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갈등과 대립만 떠오르던 기관과 사회복지사 개인의 철학은 상호보완의 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알게 됐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하는 21세기의 융합시대는 철저하게 개인주의 사회로 흘러왔으며 앞으로는 더욱 더 공고하게 그 길로 갈 겁니다. 힘의 중심을 굳이 드러내자면 개인에 중심을 둔 행동과 선택에서 조직의 사활이 결정되는 시대로 이미 돌입됐습니다.

김대근 (마을예술복지연구소 더 창고 대표)

이 상황에서 전체주의 특성이 강한 사회복지 조직은 더 이상 기존의 행태로는 미래사회의 존립 기반을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린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보다 무거워 질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대해 조직은 이에 상응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까요.

조직과 개인 사회복지사의 균형은 기계적인 중립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감안한 선택과 집중에서 시작됩니다.

초침의 소리가 점점 커져가는 미래의 시계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