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전동 휠체어
비 오는 날에 전동 휠체어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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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내릴 땐 외출을 삼가라고 조언한다”라는 답변은 무책임하게 들렸다.
전동 휠체어의 모터에 물이 들어가 망가졌다는 소리를 듣고 올바른 관리법에 관해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것도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에서다. 7년 전 방문했던 독일을 떠올리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한국에 비해 적은 나라로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수동과 달리 전동 휠체어는 모터부터 배터리, 컨트롤 박스 등 다양한 부품들이 있다. 그래서 휠체어 자체만으로도 무겁다. 특히 모터와 배터리는 의자 아래에 설치되어 있어서 지표면과 가깝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위에서 내리는 물 폭탄을 막으려 우산을 쓰지만, 전동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바닥에 있는 빗물까지 조심해야 한다. 세찬 빗줄기가 지표면에 닿았다가 튀어 오르거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 휠체어 바퀴에 의한 물보라가 모터나 배터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조종하는 컨트롤 박스는 상시 빗줄기에 노출되는 상부에 설치되어 있지만 오히려 안전하다. 덮개가 있어서다. 게다가 휠체어에 앉은 이용자와 휠체어 모두를 덮어주는 우비를 제작해 주는 업체도 있다. 비가 오면 이용자들은 우비를 덮고 다니지만, 휠체어 밑 부분에 부착된 부품까지 보호하지는 못한다. 결국, 모터와 배터리는 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부품들은 전동 휠체어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게 문제다. 모터가 망가졌을 때 AS 직원이 “모터를 교체하는 것보다 조금 더 내고 새것을 사라”고 권할 만큼 비싸다. 비가 내릴 때 장애인들이 아무리 급해도 쉽게 외출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전동 휠체어는 수입품이 대부분이다. 독일과 대만, 그리고 일본에서 수입하는 제품들이 인기다. 물론 의자의 높낮이가 조절 가능한 스웨덴 제품이나 일어서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전동 휠체어도 있지만, 천만 원대의 고가여서 이용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들의 장애인들에게 조금 더 편한 휠체어를 제공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은 돋보인다. 부럽기까지 하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전동 휠체어를 만드는 회사는 없다. 수요가 없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게다가 장애인은 도와주면 된다는 인식이 강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도심지 인도에 턱을 없애기보단 들어서 올려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일반 사람들이 관계하는 장애인의 범주는 대부분 고령의 거동이 불편한 일가 친족일 개연성이 높다. 그들에게 이들은 그저 보호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시각이 다른 장애인들에게까지 자연스레 확장된 것이다. 하지만 자의적으로 그 무언가를 선택하고 행하는 행위가 인간다운 삶의 기본적인 전제라면, 장애인을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비가 올 때 외출을 삼가라는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널리스트
심지용

우리나라의 배터리 제작 기술은 세계 최고다. 전기자동차의 대량 생산과 수출 경쟁력도 이로 말미암아 가능한 일이다. 자동차 역시 모터나 배터리는 차체 밑 부분에 위치해 있다. 전동 휠체어와 비슷하다. 그러나 빗물로 인해 차가 고장 났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기술력을 가진 우리나라가 전동 휠체어 시장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아마 이 부문에서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으리라.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에도 걱정 없이 외출하고 싶은 것은 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