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떠난 시대...?
신(神)이 떠난 시대...?
  •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0.09.28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래 전에 읽은 글이라서 출처가 명확하게 떠오르지는 않는데, 이 시대를 ‘신이 떠난 시대’라고 한탄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비참한 일들이 지구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개탄했다.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서남아시아 지방에서는 한 끼 식사를 제때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오로지 가격의 조정 때문에 엄청난 양의 곡물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시대를 신이 떠난 시대라고 단언했다. 글을 읽고 가슴이 꽉 막혔던 기억이 난다.

굳이 앞의 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이 떠난 시대라고 할 만한 징후들은 많다. 인간을 능멸하는 일들이 이 나라 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널려있다. 전 세계적으로 참혹한 노동현장에 내몰린 아동이 2억 명이 넘는다고 ILO가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돌봄이 미치지 못하는 아동들이 숱하게 많다. 그 많은 법률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아동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입법은 별로 없다. 있어도 다 껍데기고, 형식적이다. 아동들의 안전한 세상을 위한 입법이나 정책이 아주 미흡한 현실은 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기 어렵게 한다.

국가를 움직이는 핵심거점인 정치판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투기꾼, 장사꾼들의 목소리가 높다. 한쪽에서는 자신의 가업을 늘리려는 대담한 활동들이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구름 잡는 이야기로 세월을 허송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절대로 진입할 수 없는 높디높은 장벽을 쌓아놓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방조(幇助)한다. 자신들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훼손되는 일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라들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은 겨우겨우 시늉만 낸다. 모든 나라가 오십보백보다. 이런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그러나 마음의 무릎을 꿇고 살펴보면, 신이 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떠났음을 알 수 있다. 신은 인간을 통해서 이 세상을 움직인다. 그 인간이 신을 떠나 탐욕과 위선으로 이 세상을 채웠다. 신의 얼굴인 아동과 장애인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돈을 발라버렸다. 인간이 신을 바꿔버린 거다. 그리고는 허위의식을 종교로, 자기편의를 정치로, 이익의 증식을 지고선으로 둔갑시켰다.

하지만 신은 여전히 우리 삶의 정중앙에 조용히 살아있다. 그 증거가 우리 양심이다.

추석을 앞둔 오늘, 그 신을 소박하게라도 다시 만나는 ‘거룩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